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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셀프 하자 보수하니 그제서야 보이는 것들

물 새는 데다 웃풍, 창틀 주위 곰팡이... 얼마나 많은 부실이 또 숨어 있을까

등록|2023.11.29 15:52 수정|2023.11.30 18:45

베란다 셀프 하자 보수&리모델링셀프 리모델링을 마치고 찍은 사진 ⓒ 서상일


비가 오면 물이 샌다. 겨울에는 창틀 주위에 곰팡이가 핀다. 때때로 쾨쾨한 냄새도 난다. 물론 웃풍도 세다. 내가 사는 신도시 아파트의 작은 방 이야기다.

저걸 고쳐야 하는데 하고 생각만 하다가, 마침내 큰 마음을 먹는다. 그래, 힘들더라도 겨울이 오기 전에 직접 고치자! 나아가 하자 보수를 하는 김에 아예 리모델링까지 하자. 아무렴, 내 인생 모든 재산을 털어서 산 집이니 직접 가꿔야지.

나름 비장한 결심으로 창고처럼 사용하는 작은 방 베란다의 온갖 짐을 옮긴다. 여름에 사용하고 집어넣는 선풍기처럼 특정 계절에만 이용하는 전자 제품을 비롯해 한꺼번에 많이 사서 쟁여놓는 세탁 세제·화장지 등의 생활용품, 세차 도구, 캐리어 가방, 몇 가지 공구 등등을 다 꺼내서 옮긴다.

다음은 텅 빈 베란다에서 곰팡이를 지울 차례. 걸레에 락스를 묻혀 열심히 창틀 주변의 곰팡이를 닦아낸다. 곰팡이를 지우니 속이 시원하다. 결로 때문에 페인트가 들뜬 부분도 헤라로 긁어낸다. 휴… 오랜만에 쓰는 팔 근육의 온도를 높이니 벌써 지친다. 자, 정신 차리자. 창틀, 바닥, 천장 조명 등이 지저분해지지 않게 마스킹 테이프를 붙인다.

단열 효과가 있는 기능성 페인트인 단열 텍스를 바르기 전에 바인더를 바른다. 바인더는 페인트가 잘 붙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스펀지 롤러에 바인더를 찍어 벽을 반복해서 오가며 굴린다.

셀프 리모델링하다 발견한 문제점들  
 

베란다 문제곰팡이(왼쪽)와 물 샌 자국(오른쪽) ⓒ 서상일


작업 중간중간 사진 찍는 일도 잊지 않는다. 셀프 리모델링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픈 마음에서다. 상상하니 벌써 신이 난다.

이제 물이 새고 곰팡이가 피는 문제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들뜬 실리콘을 들여다볼 차례다! 창틀과 실리콘 사이에 칼을 넣고 손에 힘을 줘서 주우욱 잘라낸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다.

헉, 안이 텅 비었다! 실리콘을 걷어내서 보니, 창틀과 콘크리트 벽 사이가 비어 있다. 눈속임으로 겉에다 실리콘만 발라놓은 것이다! 창틀 아래 실리콘을 다 걷어내고, 창틀 옆 실리콘도 걷어냈다. 이곳도 역시 텅 비었다.

입에서 절로 욕이 나온다. 부실 공사를 눈앞에서 마주하니 분노가 치민다. 이러니 비가 오면 물이 샐 수밖에. 겨울에 곰팡이가 피는 이유도 밝혀졌다. 창틀 주위가 텅 비어 있으니 찬바람이 그대로 들어와 결로가 생기고 곰팡이가 핀 것이다.

설마 개화된 문명 세상에서 이렇게까지 부실 공사를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동네 철물점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한다. 우레탄폼이 있는지, 몇 시까지 영업하는지 묻는다. 영업을 마칠 시간이라 내일 아침 일찍 방문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는다. 벌써 하루가 저문다.

겉에 실리콘만 발라 눈속임을 하다니
 

텅 빈 틈실리콘을 제거하니, 창틀과 콘크리트 벽 사이가 텅 비어 있었다. ⓒ 서상일


다음날 아침, 철물점이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 우레탄폼을 산다. 어이없는 일을 당한 나머지, 철물점 사장님께 "아니, 글쎄! 창문을 그냥 얹어만 놓았어요."라고 말을 건네며, 부실 공사에 대해 한참 욕을 하고 집에 돌아온다.

우레탄폼을 쏘기 전에 벽에 추가로 비닐을 붙인다. 혹여 우레탄폼이 흘러넘쳐 벽에 지저분하게 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레탄폼을 힘차게 흔든다. 그리고 창틀과 콘크리트 벽 사이에 치이익 쏜다. 모든 틈을 온전히 메꾸기 위해서, 천천히 신중하게 손을 움직인다. 부풀어 오르면서 굳기를 기다렸다가, 밖으로 부풀어 오른 곳을 칼로 잘라낸다.

더는 물이 새지 않겠지, 곰팡이도 피지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벽에 단열텍스를 바를 준비를 한다. 커다란 통에 담긴 단열텍스를 적당한 플라스틱 용기에 옮겨 담는다. 1차, 2차, 두텁게 바르다 보니 하루가 다 지나간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더니, 손이 아픈 것은 물론이고 종아리가 땅기고 허벅지도 뻐근하다. 계속 집안일만 할 수도 없어 며칠을 손을 놓기로 한다.
 

우레탄폼 쏘기우레탄폼을 쏘아 텅 빈 틈을 메운다(위 사진). 우레탄폼이 밖으로 새어 나온 곳이 물이 새는 지점이다(아래 사진). ⓒ 서상일


시간을 내서 다시 셀프 리모델링의 진도를 나간다. 창틀의 촌스러운 필름 색을 바꿔야 한다. 무거운 창문을 빼서 낑낑대며 바닥에 놓는다. 일단 창을 깨끗하게 닦고, 이어 인테리어 필름을 붙일 곳에 프라이머를 바른다. 프라이머는 필름이 잘 붙도록 한다.

프라이머가 마르고 나서, 하얀색 인테리어 필름을 힘주어 밀며 붙인다. 열이 날 정도로 반복해서 민다. 그래야 튼튼하게 붙는다. 필름을 다 바른 무거운 창문을 다시 들어 올려 역시 낑낑대며 끼운다. 아이고, 평소에 운동 좀 할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뒤로 물러나 바라본다. 새하얗게 예쁜 창으로 변신한 모습이다. 음, 흡족하다.

이제 창틀 차례. 창틀은 녹색 필름을 붙인다. 밖의 녹색 풍경을 받아들이는 녹색 프레임으로 만들고자 해서다. 하얀색과 녹색의 조화를 꾀하는… 흠흠, 이른바 '인테리어 컨셉'이다. 필름을 다 붙이고 나서 보니, 유리창과 필름 사이에 발린 살색 실리콘이 거슬린다. 이곳에도 하얀색 실리콘을 바른다. 인테리어 컨셉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다음 날. 전동 드릴로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뚫고 앵커를 박는다. 그리고 벽에 하얀색 철제 선반을 층층이 단다. 각종 물건을 층층이 쟁여둘 수 있다. 이로써 베란다 셀프 하자 보수와 리모델링이 마무리된다.

작은 방 베란다의 창을 통해 파릇파릇 나무들이 햇살을 받고 바람에 흔들린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안의 화분 몇 개를 베란다로 옮겨 놓는다. 바깥 풍경을 새로워진 베란다의 모습과 함께 흐뭇하게 바라본다. 이런 게 직접 집을 가꾸는 맛이지!
 

인테리어 필름 붙이기창틀에 인테리어 필름을 붙이는 작업(왼쪽). 필름을 붙이고 나서, 하얀색 실리콘으로 마무리 작업(오른쪽). ⓒ 서상일


새삼 떠오른 '순살 아파트'
 

베란다 셀프 리모델링 완성셀프 리모델링 마무리 ⓒ 서상일


힘들지만 뿌듯한 셀프 하자 보수와 리모델링을 하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베란다의 하자는 해결했지만,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어떤 부실이 숨어 있을지 너무 걱정된다. 아예 들여다볼 수조차 없는 곳은 대체 얼마나 엉망으로 되어 있을까? 과연 방수는 제대로 돼 있을까? 타일은 제대로 붙어 있는 걸까? 무엇보다 철근은 제대로 들어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 올해 논란이 됐던 '순살 아파트'가 떠오른다. 올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일부 지하주차장 등 건설에서 철근을 누락한 채 아파트를 지은 것이 드러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이를 뼈(철근)가 없는 '순살 아파트'라 비꼬았다.

'순살 아파트'는 이제 부실 공사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한 올해 4월 검단신도시에서 GS건설이 아파트를 짓다가 붕괴한 사고도 그렇다. 역시 철근을 넣지 않아서 붕괴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이어 2022년 1월 광주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사고도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실 공사, 날림 공사가 계속 벌어진다. 정말이지 건설 감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이를 위해서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른바 '순살 아파트 방지법'(부실 공사·날림 공사 방지법)이 빨리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현재 부실 공사 방지 관련 법들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단다. 조오섭(민주당) 의원은 일찌감치 2022년 4월에 건설 감리를 강화하기 위해 '주택건설공사 감리강화법'을 발의했다. 뒤이어 김정재(국민의힘) 의원도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단다. 그렇지만 국회에서 더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해 안타깝다.

대체 언제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한 명의 민간인으로서 정말이지 목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순살 아파트 방지법'을 제정하라고.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파주의 지역 언론 <운정을 이야기하다> 창간 준비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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