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하거나 악한 대통령에 대한 딱딱한 시
이 겨울에 나는 노조법2·3조 개정이라는 슬픈 시를 쓴다
▲ 2023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4회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의결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통과한 '노란봉투법(노조법2.3조)'과 '방송3법'에 거부권 행사를 하겠다는 시한이 다가오며 긴장이 높습니다. 조선일보 앞 동화면세점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거부한다' 투쟁문화제가 있어 다녀왔습니다.
급하게 시 낭송도 하나 해달라는데 참 어려웠습니다. 생각하니 제가 3조 노란봉투법의 당사자이기도 했습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당시 사측도 아닌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개인인 저에게 국가 손해배상소송을 걸어와 8년 동안 재판 끌려다니다 결국 돈을 뜯겨야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기한인 12월 2일까지 끌다가 주말 다가올 때 임시 국무회의 잡아 거부권을 행사할 듯합니다. 그러나 이미 시대적 진실과 대세는 세워져서 '거부권' 행사 당일이 규탄과 심판 그리고 더 큰 재·개정 운동으로 나가는 첫날이 되겠지요. 윤석열 대통령이 드디어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어 적나라한 맨몸을 그대로 보이게 되는 날이 되겠지요. 그렇게 드러난 더럽고 추악한 속살은 남은 임기 내내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을 건데요.
이 겨울을 기억해 두기 위해 하루 날밤을 새워 지난 20년의 피눈물 나는 투쟁을 되새기며 시 한 편을 써봅니다.
이 겨울에 나는
이 겨울에 나는
노조법 2·3조 개정이라는
슬픈 시를 써야 해요
불멸의 노래나 달콤한 사랑에 대한
처연한 시는 못 쓰고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상식적인 언술조차 거부하기로 한
무지하거나 악한 대통령에 대한
무척이나 딱딱한 시를 써야 해요
나도 알아요
좋은 시는 조금은 모호해야지요
구체적인 설명보다 진눈깨비처럼
흐린 비유나 은유나 상징이 자욱할수록 좋죠
"회사가 해도 너무 한다.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내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벌써 20년 전인 2003년 1월 9일 두산중공업노동자 배달호씨가
손배가압류에 쫓기다 자결하면서 유서로 썼다는
직설 그대로를 시에 차용하면 안 되죠
자결한 다음날 월급통장엔 25,000원이 찍혀 있었다까지 꾹꾹 눌러쓰는 건
여러분이 그나마 기대하고 있을 시적 감흥조차 달아나게 하겠죠
손배가압류가 노태우 군부정권 시기였던 1990년 10월 노동부 장관이던 최병렬이 내린 지침에 따른 거라는 지나간 역사 이야기를 곁들여
어떤 시적 고양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대한민국 국회가
"법원이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경우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는
한심한 얘기가 어떻게 시가 되겠어요
▲ 조선일보 앞 동화면세점에서 열린 '대통령의 거부권을 거부한다' 투쟁문화제에서 시를 낭송하는 송경동 시인 ⓒ 송경동
그러나 말이에요. 여러분!
노조법 2조 5항의
'결정'이라는 말 한마디에 가로막혀
그간 경찰과 법원으로 끌려가고
손해배상에 시달리다 목숨까지 끊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말 한마디가 안 적혀 있어서
하청·재하청·용역·도급·외주·간접·특수… 각종 차별과 모멸을 삼키며
바지 사장들에게 휘둘리며
때 되면 계약 해지 업체 폐업으로 쫓겨나며 싸워야 했던
1100만 비정규직들의 고난과 설움과
그 피눈물과 죽음들을 생각하면
이게 돌이킬 수 없는 이 세상이고 현실이라 믿으며
사랑도 우애도 모두 버리고 불행해져야 했던
모든 평범한 노동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이 겨울에 나는
다시 시를 버리더라도
'노조법 2.3조 개정 공표'라는
사랑의 말을, 투쟁의 말을
꾹꾹 눌러 쓸 수밖에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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