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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멸종위기종의 잦은 출몰, 이 습지에 무슨 일이

팔현습지에서 만난 수달 가족과 수리부엉이 부부... 환경부발 '삽질' 재고돼야

등록|2023.12.05 11:38 수정|2023.12.05 11:38
 

▲ 어둠이 내린 금호강 팔현습지. 어둠이 내리면 야생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러면 인간이 출입해선 안된다. 그것이 공존의 질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지난 3일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늦은 시간. 불현듯 팔현습지가 보고 싶어졌다. 팔현습지의 터줏대감 수리부엉이 부부를 비롯하여 수달 가족 등 팔현의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해거름 녘은 이들 수리부엉이 부부를 비롯한 야생의 친구들이 사냥을 나가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이들을 만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동구 방촌동에서 강촌햇살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 금호강 하천 숲에 들었다. 왕버들과 수양버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이 숲에 수달이 왕왕 출몰한다. 그러나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직접 수달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흔적을 발견했다. 바로 지난밤 수달이 배설해 놓고 간 배설물이다.

향기마저 솔솔 풍기는 수달의 똥

금호강 안으로 뻗어 들어간 왕버들 가지가 길게 드러누운 그 중간에 수달이 배설을 해놓았다. 앙증맞은 수달의 똥이 그곳에 이쁘게 놓여 있었다. 똥 중에 가장 이쁜 똥이 바로 이들 야생의 친구들의 똥이다.
 

▲ 금호강으로 뻗은 나무등걸에 싸질러놓고 간 수달의 똥. 아름답고 향기마저 풍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야생에서 나온, 꼭 필요한 먹이만 먹고 배설한 똥이기에 냄새도 없을뿐더러 그 형태도 다 달라서 독특한 매력이 있다. 조금 과하게 표현하면 향기가 솔솔 풍길 정도다. 그만큼 간절히 그들을 찾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생선 가시와 물고기 비늘이 점점이 박힌 저 앙증맞은 수달의 똥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하식애 절벽 앞으로 가 팔현습지의 터줏대감인 수리부엉이 부부 '팔이'(수놈)와 '현이'(암놈)를 찾았다. 그러나 아직 이른 시간인지 녀석들도 보이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팔현습지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400년 원시 숲을 이루고 있는 왕버들숲으로 들었다. 혹여나 수리부엉이 부부가 이곳에 와서 뱃속에 들어있는 '펠릿'(소화가 안 된 덩이를 다시 뱉어내는 것)을 뱉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왕버들숲의 가장 안쪽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수리부엉이는 그곳에도 없었다.

찾았던 수리부엉이와 그 '펠릿'은 못 만나고 대신 수달의 똥을 이곳에서도 만났다. 한 곳이 아니었다. 세 곳에나 똥을 싸질러 놓았다. 한 마리가 아니란 소리다. 똥을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물결이 인다. 파동 소리도 들리더니 뭔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육감적으로 야생의 친구란 것을 알았다. 조용히 폰을 꺼내 켰다. 그리고 녹화 버튼을 눌렀다. 파동은 더 가까워지더니 이내 뭔가가 머리를 쑥 내밀었다. 수달이었다. 그렇게 오매불망하던 수달이 드디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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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현습지 수달 가족의 유영 ⓒ 정수근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었다. 뒤이어 또 한 마리가 머리를 쳐들고 이쪽으로 유영해 온다. 녀석도 나를 봤다. 한참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그러면서 마치 "저 녀석은 뭐야? 왜 우리 화장실에 서 있어?"하는 듯했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 살피더니 이내 획 들어간다. 그러면서 주변을 빙글빙글 돈다. 탐색의 시간인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살피더니 이내 저 멀리 사라진다. 녀석들은 강 한가운데 철새들의 무리 속까지 들어가 주변을 휘저어놓는다. 놀란 철새들이 혼비백산 달아난다.

수리부엉이가 울었다 그리고 날아올랐다

수달이 저 멀리 유영해 가는 것을 보고 왕버들숲을 돌아 나왔다. 돌아 나오는 데 익숙한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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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현습지 수리부엉이의 세레나데 ⓒ 정수근

 
"우~~우 우~~우" 가만히 들으니 그것은 수리부엉이 울음소리였다. 짝을 찾는 저 익숙한 소리. 이 시간에 들리는 저 소리는 녀석이 사냥을 나간다는 신호다. 곧 하식애 둥지를 떠나 사냥을 위해 날아오른다는 신호다.

다급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점점 선명하게 들린다. 저 멀리 하식애에서 벌써 이동해 왕버들숲 가까운 나뭇가지 위에 앉아 특유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수리부엉이 수놈 '팔이'이 노랫소리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녀석을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다시 폰을 꺼내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눌렀다. 선명한 녀석의 세레나데를 담을 수 있었다. 소리뿐만이 아니라 녀석이 사냥을 위해 날아올라 저 멀리 반대쪽 아파트촌 쪽으로 날아가는 모습까지 그대로 담을 수 있었다.
 

▲ 수리부엉이 부부 수놈 팔이의 모습.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저 멀리 아파트 숲 꼭대기에 가서 다시 녀석은 이곳 팔현습지를 바라볼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은 어느 녀석으로 식사하지?"하며 저 강 가운데 무수한 철새들을 지켜볼 것이다. 그러다 어둠이 더 깊어 오면 쏜살같이 내달려 오리 한 마리를 낚아챌 것이고 사냥감을 물고 와서 둥지를 찾을 것이고 그러면 그곳에 이미 포란(동물이 산란한 후 알이 부화될 때까지 자신의 몸체를 이용하여 알을 따뜻하게 하거나 보호하는 행위)에 든 수리부엉이 '현이'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팔현 친구들의 일상이다. 해거름 녘에 도착해서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까지 팔현습지에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으니 내가 야생이고, 야생이 바로 나였다. 내가 수달이고 수리부엉이였다. 그들과 내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된 것이다. 물아일체. 바로 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본다. 녀석들이 내 앞에 턱 모습을 나타낸 이유가 뭘까? 야생의 존재들은 인간이 있으면 절대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녀석들이 최근 자주 출몰한다. 왜?

수달과 수리부엉이 부부의 의문

환경부발 '삽질'인, 하식애 절벽을 따라 그 앞으로 8미터 높이의 산책로가 놓이게 생겼다는 것을 그들이 육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제발 이곳만은 좀 지켜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지 않고 이들이 요즘 부쩍 자주 이곳에 출몰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벌써 14종의 법정보호종 야생의 친구들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내밀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더 많은 멸종위기 야생의 친구들이 나올 수도 있다.

그들의 출현 이유를 생각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그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 제발 좀 함께 살자!"

그러기 위해선 공존의 질서가 지켜져야 한다. 개발이 가능한 곳과 개발해서는 안 되는 곳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고, 인간이 접근해야 할 곳과 접근하지 말아야 할 곳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 공존의 질서를 깨려 하는 환경부발 '삽질'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원래 길이 없던 하식애 절벽 앞으로 새로운 길을 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어둠이 내리면 더 이상 팔현습지 쪽으로 인간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원칙만 지켜지면 이들 야생의 친구들과 우리 인간이 비로소 공존할 수 있다. 지금 그 공존의 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그 질서를 깨려 하고 있다. 바로 환경부가.

지금 환경부(낙동강유역환경청)가 이 공존의 질서를 깨고 하식애 절벽 앞으로 8미터 높이의 새로운 길을 내서 인간들이 밤낮으로 그곳을 통행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아니, 환경부가 왜?"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유다. 저 수달과 수리부엉이 부부의 의문일 것이다.
 

▲ 멸종위기종들의 마지막 서식처 팔현습지 ⓒ 정수근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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