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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 수감된 순국 장소 기린다

대구 중구청, 옛 대구형무소 사형 장터인 삼덕교회 기념관에 '대구형무소 역사관' 조성

등록|2023.12.08 09:23 수정|2023.12.08 10:46

▲ 대구 중구 삼덕동 옛 대구형무소 사형장터에 조성된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 외벽에 대구형무소 터가 있었던 자리임을 알리는 조형물이 조성돼 있다. ⓒ 조정훈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순국한 대구 중구 삼덕동 옛 대구형무소 사형장터에 '대구형무소 역사관'이 들어선다.

대구 중구청은 대구형무소 사형장터에 세워진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 2층(공령로 22)에 대구형무소 역사관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대구형무소 역사관은 지난해 11월 착수해 사업비 4억 원을 투입해 면적 115㎡ 규모로 조성하며 2024년 5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구형무소는 1908년 중부경찰서 뒤편에 지어져 대구감옥으로 불렸으나 1910년 4월 삼덕동으로 이전한 뒤 1923년 5월 5일 조선총독부령 제72호에 따라 대구형무소로 개칭했다.

일제강점기 서울, 대구, 평양 전국 3대 형무소 중 하나로 1919년 3.1운동 이후 5000여 명의 조선인이 수감되고 많은 독립운동가가 순국한 가슴 아픈 장소이다.
  

▲ 대구시 중구 삼덕동 삼덕교회에 있는 이육사 벽. 이곳은 옛 대구형무소 터가 있던 곳이다. ⓒ 조정훈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대구형무소에 1년 7개월 동안 수감됐으며 당시 수인번호였던 264번을 따 이육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또 1946년 10월항쟁 당시 수많은 시민이 붙잡혀 수감되었다 6.25 전쟁 직후 재소자 중 2574명이 달성군 가창골 등지에서 대량 학살되었다.

대구형무소는 1961년 대구교도소로 명칭이 변경되고 1971년 삼덕동에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로 신축 이전했다.

이후 삼덕교회가 1979년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대구형무소의 흔적이 대부분 사라졌고 2016년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을 지으면서 기념관 1층 로비에 대구형무소 사적기념관 등 일부만이 남아 있다.

중구청은 순국열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감사함을 되새기고자 2021년 7월 삼덕교회와 대구 형무소 역사관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2021년 10월 옛 대구형무소가 민족 수난의 현장임을 알리고 민족지도자의 뜻을 대구시민들과 함께 기리고자 옛 대구형무소 상징 조형물을 설치했다.

또 2022년에는 삼덕교회에 대구형무소에서 희생된 애국지사 206인의 명단을 새긴 추모의 벽을 조성했다.
 

▲ 대구 중구청은 삼덕동 옛 대구형무소 터가 있던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에 '대구형무소 역사관'을 조성한다. ⓒ 대구 중구청


중구청은 내년에 조성이 완료되는 대구형무소 역사관을 독립운동가의 애국정신을 재조명하고 도심 근대역사·문화자산과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류규하 중구청장은 "독립운동가 순국의 터인 대구형무소 역사관을 조성해 이곳에 수감되었던 애국선열들의 독립정신을 되새기고 역사교육 및 추모 공간으로 만들어 근대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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