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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만에 철거된 부경대 '서울의봄 대자보'

"게시판 운영규정에 따른 조처"... 부산대는 일부 훼손에도 이틀째 부착

등록|2023.12.13 15:08 수정|2023.12.13 17:50

▲ 12.12를 맞아 부경대학교의 한 학생이 부착한 대자보가 철거돼 있다. 위쪽은 대자보가 붙었던 12일 모습. 아래쪽은 대자보가 게시됐던 13일 호연관 인근 학내 게시판의 모습. ⓒ 김보성

 

▲ 12.12를 맞아 부경대학교의 한 학생이 부착한 대자보가 철거된 게시판의 모습. ⓒ 김보성


부산 남구 국립부경대학교에서 한 학생이 실명을 내걸고 부착했던 이른바 '서울의봄 대자보'가 4시간 만에 학교 측에 의해 철거됐다. 부경대 대자보는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의 하나회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지 44년이 되는 12월 12일 오전 부산 대학가에 나붙은 글 중에 하나다.

12.12 비판했지만, 결국 사라진 대자보 

13일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결과, 하루 전 부경대 대연캠퍼스 호연관 인근에 게시된 대자보는 현재 누구도 볼 수 없는 상태다. 대자보 부착 당일 학교 측에 의해 강제로 철거됐기 때문이다.

12·12를 맞아 패션디자인학과 4학년 왕아무개 학생은 '실패하면 반역, 승리하면 혁명이라구요?'라는 제목으로 <서울의 봄> 감상기를 오전 8시쯤 야외 게시판에 붙였다. 그는 "영화는 군인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끝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라며 의견을 글로 개진했다.

반란의 결과가 시민을 총칼로 짓밟는 군사독재로 이어졌고, 현재에도 "불의한 권력이 반복되고 있다"라는 내용이다. 그는 "터질듯한 분노와 함께 가슴 한편이 답답하다. 그 역사를 기억하자"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 대자보는 반나절도 가지 못했다. 학교 측은 이날 낮 12시 왕아무개 학생이 쓴 글을 게시판에서 바로 제거했다. 부경대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운영규정 따른 조처라고 밝혔다. 그는 "게시물은 학교의 승인을 받게 돼 있는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다른 학교 관계자도 "대학본부와 총학생회를 거치지 않은 자보나 광고는 게시판에 붙일 수 없다"라며 이를 당연한 조처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게시물을 그렇게 처리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달랐다.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는 자연대 소속의 김아무개 학생은 "그냥 의견을 개진한 글인데 쓰자마자 이걸 일방적으로 뗀 건 좀 아닌 것 같다"라고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대자보에 대해선 "영화를 보고 나서 자보까지 쓴 건 대단히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글을 작성한 당사자인 왕아무개 학생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마이뉴스>와 연락이 닿은 그는 "어제 낮에 가보니 자보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됐다. 말할 권리를 보장하기보다는 승인만 따지는 학교의 조치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라고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서울의 봄>의 'N차 관람'을 위해 조만간 다시 영화관을 찾을 계획이다. 그는 "영화를 보고 다들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더 역사를 기억하고 반복을 막아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또 보려 한다"라고 말했다.

부경대의 대자보는 떨어져 나갔지만, 같은 날 부산대 자연대 인근 학생게시판에 부착된 대자보는 일부 훼손에도 이틀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자보를 읽은 누군가가 '하나회'라는 글자만 뜯어냈다. 이는 군대를 사유화하며 군사독재를 만들어 낸 하나회에 대한 반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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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 반역, 승리하면 혁명"이라고요? 부산 대학가 '서울의 봄' 대자보 https://omn.kr/26q0v
-[오마이포토] 12·12에 '서울의봄 대자보' 내건 대학생들 https://omn.kr/26q3n

 

▲ 13일 부산대학교 자연대 건물 앞 학생게시판에 이틀째 게시된 '서울의 봄 대자보'. 지나가던 시민이 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 김보성

  

▲ 13일 부산대학교 자연대 건물 앞 학생게시판에 이틀째 게시된 '서울의 봄 대자보'. 하나회라는 글자가 훼손돼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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