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변주한 중국영화, 이토록 낯설다니
[김성호의 씨네만세 614] <야연>
변주란 무엇인가. 문학을 비롯한 예술 부문에서 말하는 변주란 원본을 나름의 특색을 살려 재창조하는 일을 일컫는다. 변주는 동일한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있는 것으로부터 터잡아 저만의 새로움을 만드는 일이다.
이를테면 한류열풍의 중심에 섰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선한 주인공 박새로이가 저만 믿고 따르는 좌충우돌 동료들에 더하여, 남다른 두뇌를 가진 천재 조이서의 결정적 도움을 받아 업계 최강자의 훼방을 넘어 식품업계 신화를 쓴다는 얼개를 가졌다. 이는 유비가 관우와 장비에 더하여 제갈량을 얻고서야 천하를 바라보게 되는 <삼국지>의 캐릭터 설정을 변주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드라마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 <스토브리그>도 마찬가지다. 만년 꼴찌 프로야구팀에 단장으로 부임한 남승수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 역시 기존에 있는 이야기로부터 상당부분을 변주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드라마는 고의로 성적을 추락시켜 팀을 해단하려는 구단주와 그룹 수뇌부들의 음모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역할에 열과 성을 다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단장은 제 고용주이자 상급자라고 할 수 있을 구단주에게 반하면서까지 제 직분에 정성을 다해 마침내 팀을 위기로부터 구한다.
이는 다름 아닌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의 일대기와 상당부분 유사한데,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를 넘어 사람이 아닌 업의 본질에 충성을 다하는 그 삶의 본질에 다가섰다는 점에서 특별히 닮은 구석이 있다. 제가 임명한 장을 믿지 않고 거듭 해코지 하려는 경영주와 그럼에도 그에게 악감정을 품는 대신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기적적 성과를 이룩하는 단장의 이야기가 여러모로 이순신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변주한 아시아 영화
이렇듯 오래된 고전이며 역사적 사실을 예술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변주해 현대적으로 풀어내고는 한다. 이것이 단순한 착상을 넘어 구조적으로 드러날 때 이를 변주라 말하는 것이다. 걸출한 작품은 그저 한 차례 소모되고 끝나버리기엔 아까운 설정과 구조를 갖고 있기에, 이를 새로이 꾸며 새로운 수용자와 만나도록 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변주된 작가일 테다. 영화계에서도 일찍이 수차례나 그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바 있는데, 극을 그대로 옮긴 작품부터 현대적으로 바꾼 작품, 아예 적극 변주해 눈 밝은 이가 아니면 그 흔적을 알아보기 쉽지 않은 작품까지 수두룩하다 하겠다. 이중 대부분은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과 그 뿌리를 같이 하는 미국에서 이뤄졌는데,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 어디 그들뿐이랴.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 영화를 만들어냈으니 그중 빼어난 걸작도 찾을 수 있는 일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이 되겠다. 1985년 당시 70대 중반이던 아키라가 만든 이 영화는 일본 센코쿠 시대를 배경으로 영주 이치몬지 히데토라와 그 아들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눈치 빠른 이라면 짐작하겠지만 영화는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리어왕>을 변주한다. 히데토라의 첫째와 둘째 아들은 리어왕의 세 딸이 그러하듯 아버지의 믿음을 배신한다. 이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 시대의 작가들 가운데서도 저 셰익스피어에 견줄 만한 재능과 역량을 가진 이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셰익스피어까지 건드린 중국영화 전성시대
그러나 모든 작품이 그와 같이 위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영화계가 전성기를 맞이한 2000년대 중반,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야연>과 같은 작품도 나오기 때문이다. 연출과 시나리오, 연기까지 다재다능하단 평을 듣는 펑 샤오강이 연출하고 중국이 낳은 세계적 배우 장쯔이가 출연한 바로 그 영화다.
앞서 잠시 언급한 <삼국지>의 시대가 끝나고 그를 통일한 서진이 북방에서 세를 잃고 남방으로 넘어간 뒤의 혼란기가 배경이다. 역사는 이를 다섯 이민족과 16개의 주목할 만한 국가가 난립한 시기라 하여 5호16국 시대라 말하는데, 혼란한 시기가 늘 그렇듯이 왕위를 둘러싼 온갖 음모 또한 적지 않았다.
이중 어느 나라에서 황제가 갑자기 붕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자리를 계승해야 할 태자는 동진이 지배하는 강남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그 사연 또한 황당하다. 태자 우 루안(다니엘 우 분)가 일찍이 연모하던 여인 완(장쯔이 분)을 황제가 마음에 들어 하여 황후로 지명한 것이다. 이를 참지 못한 아들이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운 새 황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그 자리를 황제의 동생 리(유 게 분)가 차지했다는 이야기다.
아버지 사후 즉위한 숙부, 황후를 탐하다
더욱 황당한 것은 태자의 숙부가 될 리가 완을 제 황후로 다시 지명한 사실이다. 말하자면 형의 아내를 제 아내로 맞겠다는 건데, 민심이 이만저만 흔들리는 게 아니다. 그러나 리는 결정을 강행하고, 완은 남몰래 태자에게 도움을 구하는 연락을 취한다.
리는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눈에 가시인 태자를 제거하고자 정예병을 파견해 그를 살해하란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로부터 영화는 태자를 구하기 위한 완과 제 아버지의 죽음을 파고드는 태자 루안, 또 이들을 위협하는 황제 리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 사이 제 자리를 지키려는 신료들과 또 목숨 걸고 충언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드러나니 <야연>은 볼거리 많은 중국 시대극으로 제 색깔을 뽐낸다.
5호16국 시대에 섰던 한 왕조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기시감을 지울 수 없다. 그건 셰익스피어의 한 작품으로부터 이 영화가 상당부분을 빚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버지의 석연찮은 죽음과 그 배후에 제 숙부가 있다는 의심, 형수를 제 아내로 삼으려는 새 권력자의 야욕, 그 속에서 심리적 혼란을 겪는 주인공까지, 영화는 노골적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변주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과는 사뭇 다른 2000년대 중반 중국의 시대상
<햄릿>의 주제와 직결된다고도 볼 수 있을 행동력 없이 고뇌만 하다 일을 그르치는 주인공의 모습이 <야연> 속 태자의 모습에서도 언뜻 드러나는 가운데, 영화는 원작의 주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대신 인물 간에 엇갈리는 마음과 가려진 욕구로써 극을 풀어나가려 한다. 이를테면 리는 제 형수인 완을 거의 갈망하다시피 하며, 완은 겉으로는 그에게 따르는 듯 하지만 속으로는 루안에게 모든 관심을 쏟는다. 그런 루안을 그와 결혼을 약속했던 다른 여자가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며, 루안은 이 모든 감정들 가운데 제 아버지의 죽음만을 파고드는 것이다.
<야연>은 중국이 서방의 상징적 이야기를 저만의 색채로 풀어내겠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2000년대 중반 중국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문호가 열리고 서방의 작품을 자유롭게 섭취하며 그를 바탕으로 제 것을 다시 만드는 일이 중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던 당시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2010년대 들어서 정권이 바뀌고 문화적 흐름 또한 크게 틀어져버린 중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작품이 다시 만들어지길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날 장이머우와 첸 카이거 같은 거장들이 양산하는 국가주의적이고 애국주의적인 작품 너머에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야연>과 같은 시도가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술이 정치로부터 독립적으로만 존재하기 어려운 영화라는 부문에서, 진보와 퇴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이와 같은 영화가 선명히 내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류열풍의 중심에 섰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선한 주인공 박새로이가 저만 믿고 따르는 좌충우돌 동료들에 더하여, 남다른 두뇌를 가진 천재 조이서의 결정적 도움을 받아 업계 최강자의 훼방을 넘어 식품업계 신화를 쓴다는 얼개를 가졌다. 이는 유비가 관우와 장비에 더하여 제갈량을 얻고서야 천하를 바라보게 되는 <삼국지>의 캐릭터 설정을 변주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의 일대기와 상당부분 유사한데,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를 넘어 사람이 아닌 업의 본질에 충성을 다하는 그 삶의 본질에 다가섰다는 점에서 특별히 닮은 구석이 있다. 제가 임명한 장을 믿지 않고 거듭 해코지 하려는 경영주와 그럼에도 그에게 악감정을 품는 대신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기적적 성과를 이룩하는 단장의 이야기가 여러모로 이순신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 야연포스터 ⓒ 미디어 아시아 디스터비션
셰익스피어를 변주한 아시아 영화
이렇듯 오래된 고전이며 역사적 사실을 예술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변주해 현대적으로 풀어내고는 한다. 이것이 단순한 착상을 넘어 구조적으로 드러날 때 이를 변주라 말하는 것이다. 걸출한 작품은 그저 한 차례 소모되고 끝나버리기엔 아까운 설정과 구조를 갖고 있기에, 이를 새로이 꾸며 새로운 수용자와 만나도록 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많은 작품이 변주된 작가일 테다. 영화계에서도 일찍이 수차례나 그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바 있는데, 극을 그대로 옮긴 작품부터 현대적으로 바꾼 작품, 아예 적극 변주해 눈 밝은 이가 아니면 그 흔적을 알아보기 쉽지 않은 작품까지 수두룩하다 하겠다. 이중 대부분은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과 그 뿌리를 같이 하는 미국에서 이뤄졌는데,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 어디 그들뿐이랴.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 영화를 만들어냈으니 그중 빼어난 걸작도 찾을 수 있는 일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이 되겠다. 1985년 당시 70대 중반이던 아키라가 만든 이 영화는 일본 센코쿠 시대를 배경으로 영주 이치몬지 히데토라와 그 아들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눈치 빠른 이라면 짐작하겠지만 영화는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리어왕>을 변주한다. 히데토라의 첫째와 둘째 아들은 리어왕의 세 딸이 그러하듯 아버지의 믿음을 배신한다. 이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 시대의 작가들 가운데서도 저 셰익스피어에 견줄 만한 재능과 역량을 가진 이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 야연스틸컷 ⓒ 미디어 아시아 디스터비션
셰익스피어까지 건드린 중국영화 전성시대
그러나 모든 작품이 그와 같이 위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영화계가 전성기를 맞이한 2000년대 중반,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야연>과 같은 작품도 나오기 때문이다. 연출과 시나리오, 연기까지 다재다능하단 평을 듣는 펑 샤오강이 연출하고 중국이 낳은 세계적 배우 장쯔이가 출연한 바로 그 영화다.
앞서 잠시 언급한 <삼국지>의 시대가 끝나고 그를 통일한 서진이 북방에서 세를 잃고 남방으로 넘어간 뒤의 혼란기가 배경이다. 역사는 이를 다섯 이민족과 16개의 주목할 만한 국가가 난립한 시기라 하여 5호16국 시대라 말하는데, 혼란한 시기가 늘 그렇듯이 왕위를 둘러싼 온갖 음모 또한 적지 않았다.
이중 어느 나라에서 황제가 갑자기 붕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자리를 계승해야 할 태자는 동진이 지배하는 강남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그 사연 또한 황당하다. 태자 우 루안(다니엘 우 분)가 일찍이 연모하던 여인 완(장쯔이 분)을 황제가 마음에 들어 하여 황후로 지명한 것이다. 이를 참지 못한 아들이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운 새 황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그 자리를 황제의 동생 리(유 게 분)가 차지했다는 이야기다.
▲ 야연스틸컷 ⓒ 미디어 아시아 디스터비션
아버지 사후 즉위한 숙부, 황후를 탐하다
더욱 황당한 것은 태자의 숙부가 될 리가 완을 제 황후로 다시 지명한 사실이다. 말하자면 형의 아내를 제 아내로 맞겠다는 건데, 민심이 이만저만 흔들리는 게 아니다. 그러나 리는 결정을 강행하고, 완은 남몰래 태자에게 도움을 구하는 연락을 취한다.
리는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눈에 가시인 태자를 제거하고자 정예병을 파견해 그를 살해하란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로부터 영화는 태자를 구하기 위한 완과 제 아버지의 죽음을 파고드는 태자 루안, 또 이들을 위협하는 황제 리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 사이 제 자리를 지키려는 신료들과 또 목숨 걸고 충언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드러나니 <야연>은 볼거리 많은 중국 시대극으로 제 색깔을 뽐낸다.
5호16국 시대에 섰던 한 왕조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기시감을 지울 수 없다. 그건 셰익스피어의 한 작품으로부터 이 영화가 상당부분을 빚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버지의 석연찮은 죽음과 그 배후에 제 숙부가 있다는 의심, 형수를 제 아내로 삼으려는 새 권력자의 야욕, 그 속에서 심리적 혼란을 겪는 주인공까지, 영화는 노골적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변주하고 있는 것이다.
▲ 야연스틸컷 ⓒ 미디어 아시아 디스터비션
오늘과는 사뭇 다른 2000년대 중반 중국의 시대상
<햄릿>의 주제와 직결된다고도 볼 수 있을 행동력 없이 고뇌만 하다 일을 그르치는 주인공의 모습이 <야연> 속 태자의 모습에서도 언뜻 드러나는 가운데, 영화는 원작의 주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대신 인물 간에 엇갈리는 마음과 가려진 욕구로써 극을 풀어나가려 한다. 이를테면 리는 제 형수인 완을 거의 갈망하다시피 하며, 완은 겉으로는 그에게 따르는 듯 하지만 속으로는 루안에게 모든 관심을 쏟는다. 그런 루안을 그와 결혼을 약속했던 다른 여자가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며, 루안은 이 모든 감정들 가운데 제 아버지의 죽음만을 파고드는 것이다.
<야연>은 중국이 서방의 상징적 이야기를 저만의 색채로 풀어내겠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2000년대 중반 중국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문호가 열리고 서방의 작품을 자유롭게 섭취하며 그를 바탕으로 제 것을 다시 만드는 일이 중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던 당시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2010년대 들어서 정권이 바뀌고 문화적 흐름 또한 크게 틀어져버린 중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작품이 다시 만들어지길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날 장이머우와 첸 카이거 같은 거장들이 양산하는 국가주의적이고 애국주의적인 작품 너머에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야연>과 같은 시도가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술이 정치로부터 독립적으로만 존재하기 어려운 영화라는 부문에서, 진보와 퇴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이와 같은 영화가 선명히 내보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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