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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투쟁 때 쪽지 쥐어주던 시민도... 응원받는 느낌이었다"

[인터뷰] 다큐멘터리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민아영 감독

등록|2023.12.20 07:15 수정|2023.12.20 10:40

▲ 영화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스틸 사진 ⓒ 민아영감독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오전 8시 출근길의 붐비는 지하철을 비집고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하자 한 시민이 버럭 고함을 지른다. 지하철이 멈춰 출근이 늦어진 시민들은 화가 나있다. 이들은 장애인들을 향해 '우리'에게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그가 말하는 '우리'에는 장애인이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하러 일찍 지하철역에 모인 장애인들도 더위와 추위를 뚫고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결코 '우리'라는 단어를 장애인들에게 내주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는 장애인들 역시 '우리'라고 이야기한다. 영화에는 유난히 '우리'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경석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회는 그렇게 우리를 버리고도 충분히 가능한 세상이구나라고 느꼈어요." 장애인을 태우지 않고도 지하철은 출근길을 달린다.

2년 넘게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비롯해 장애인 운동 현장에 카메라를 비춘 민아영 감독을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만났다. 영화를 만든 민아영 감독은 최근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가 상영됐던 서울독립영화제(8일 폐막)를 시작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새로운 관객을 만나고 있어요"

- 반갑습니다, 민아영 감독님. 지난 주말에는 영화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를 들고 경북 안동의 독립영화관 중앙시네마에서 관객들을 만났다고 들었어요.

"12월 초에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로 GV(관객과의 대화)를 두 차례 갖고 이번에는 안동에 가서 관객들을 만났어요. 장애인 운동을 하는 당사자들이 아니고 정말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가 궁금해서 영화를 보러오신 분들이었어요. 사실 그동안 패배적인 생각도 없지 않았거든요. 작년 한 해 장애 운동을 끊임없이 하고도 제대로 해결된 게 하나도 없어요. 지하철은 무정차로 역을 통과해버리고 정치인들은 나몰라라 하거나 강경대응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고요. 시민들의 관심 역시 작년에 비해 많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었는데 관객들이 여전히 관심이 있는데 다만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 영화를 만들어서 참 다행이었어요."

- 시민들을 지하철 안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만나는 건 아예 다른 방식의 만남이고, 또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네요.

"어제 영화관에서 만난 분은 작년에 전장연에 대한 비방이 많이 들릴 때 자기가 전장연 후원회원이고 장애인 인권 운동을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차마 하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그런 분위기에서 장애인 운동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게 되게 무서웠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거든요. 털어놓을 곳이 없잖아요.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나 부모님이 있지만 비장애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요."

- 영화를 보니 물론 지하철에서 욕을 하는 시민들도 있지만 반대로 투쟁을 응원하는 시민들도 상당히 많더라고요. 2년 넘게 촬영하면서 지켜본 지하철 안에서 실제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런데 그 응원하는 시민들의 비중이 실제로 영화보다 더 많았어요. 촬영 순간에 카메라로 그걸 잡지 못해서 그렇지, 지하철에서 만난 시민들이 많이들 응원해주셨어요. '응원합니다!'라고 외치면서 열차서 내리기도 하시고요. 응원하는 내용의 쪽지를 조용히 손에 쥐어주면서 '언제라도 지하철에서 만나면 꼭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라고도 하세요. 그런데 그건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 다 화를 내거나 침묵하는 상황에서 소리를 내며 응원하는 것이니까요.

"계속 비난을 듣다 보면 사회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쉽잖아요. 그런데 그런 지지와 응원을 한 번 받을 때는 불신이 사그라드는 게 또 사람 마음이더라고요. 엄혹한 현장이었지만 어떻게든 응원하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멀리서 연대하러 와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전체적으로는 응원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투쟁 방식에 대해 부정하더라도 전장연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찬성한다고 말씀을 해주는 분들도 계셨어요.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시민들이 방식과 내용을 분리해서 정확하게 따져보기도 한다고 느꼈죠."

- 영화에는 '우리'라는 표현이 되게 많이 나와요. 한 시민이 지하철에서 '우리한테 왜 이러느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요. 반면 박경석 대표는 '이 사회는 우리를 버리고도 가능한 세상이구나'라고 말하죠.

"맞아요. 박경석 대표의 발언은 정말 모든 걸 다 통과한 뒤에 나올 수 있는 말이죠. 한 시민 분이 말씀하신 '우리'라는 건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겠죠. 더 정확하게는 비장애인이면서 그 시간에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이겠죠. 박경석 대표가 말하는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능력이 없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모든 이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 말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이냐, '사회 구성원'이라는 건 도대체 누구냐는 질문으로 느껴졌거든요.

어떤 시민이 '장애가 벼슬이냐'라고 하는데 이형숙 대표님이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세요?'라고 되묻거든요. 그 시민이 살아왔던 경험과는 너무나 다른 경험을 갖고 살아온 우리인 거죠. 장애를 갖는 순간부터 보편적이라고 여겨지는 경험을 갖지 않는데 비장애인들은 이 삶을 구체적으로 모르거든요."

"울면서 편집한 영화... 다음에는 노들야학 담고파"
 

▲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를 만든 민아영 감독 ⓒ 민아영


- 저는 지난 5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친구랑 이 영화를 봤는데요. 친구가 이날 목이 아파서 기침을 계속 했는데 다른 영화를 볼 때는 되게 신경이 쓰였대요. 조용한데 혼자만 소리를 내니까요. 그런데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를 볼 때는 안심이 됐다는 거예요. 이날 영화관에는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손자 빵빵이(임조운군의 예명)도 있었잖아요. 빵빵이는 이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죠. 빵빵이가 GV 때도 영화관을 막 뛰어다녔는데, 아기가 내는 소리가 들리는 영화관이 저도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죠.

"이형숙 대표님과 가족들이 영화에 나오니까 초청을 하고 싶었어요. 만 7세 이상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더라고요. 어두운데 소리가 크게 들리니 상영 환경 자체가 만 7세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어요. 그런데 빵빵이는 외할머니(이형숙 대표)가 TV에 얼굴이 나오면 그렇게 좋아한대요. 그래서 집에서도 외할머니 얼굴이 나오는 TV를 틀어둔다는 거예요."

- 그런데 영화관에서는 할머니 얼굴이 엄청 크게 나오니까. (웃음)

"그러니까 너무 행복해하는 거죠. 사실 저에게는 (빵빵이가 있는 환경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는데요. 장애 운동 관련 행사를 하면 발달장애가 있는 분들이든 아이를 데려오는 분들이든 제지 당하지 않고 다들 자유롭게 있거든요. 위험하지만 않으면 되니까요."

- 그런 행사에서는 휠체어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데 영화관에서 휠체어 좌석은 늘 상영관 가장 앞자리에 있죠. 이날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GV에 참석하고자 박경석과 이형숙 대표가 영화관을 찾았는데, 휠체어를 탄 이들은 A열에서밖에 영화를 볼 수 없었어요.

"대부분의 영화관이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영화관에서 릴랙싱(relaxing)존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주면 어떨까 싶었어요. 아이가 있는데 영화가 보고 싶은 부모라든지 발달장애 당사자라든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도록요."

-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의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요.

"활동가로서 제가 가지는 어떤 절실함과 슬픔이 영상을 통해 시민들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가 저에게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활동가로 일하다 보니 장애인 운동과 거리감이 없죠. 저는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만 잘 전달하면 이 거친 투쟁이 시민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을까 했죠. 지하철 투쟁은 한순간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20년간 반복돼 온 역사잖아요."

- 워낙 자료가 방대하니 편집하면서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네. 지하철에서 오갔던 대화들 그리고 고성들을 편집한다는 건 그 현장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거든요. 고통스러웠어요. 욕을 먹는 장애인 당사자의 얼굴도 봐야 하고 욕을 하는 시민들의 표정도 보고요. 그걸 들으면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비장애인 활동가의 모습도 보고 그걸 보고 비웃는 지하철보안관의 얼굴도 보이죠. 이런 것을 계속 확인해야 했죠. 편집 막바지에는 매일 울면서 작업했던 것 같아요."

- 그간 여러 다큐멘터리(<파리행 특급 제주도 여행기>(2020), <희망의 기록>(2021))를 통해서 탈시설 등 장애 운동을 기록해 왔습니다. 다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저는 사실 투쟁 다큐가 아니라 일상 다큐를 만들고 싶거든요. 노들야학의 학생들과 교사들의 시트콤 같은 우당탕탕 일상도 담아보려고요. 어느 누구도 왕따시키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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