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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면접 때 한복을 입고 갔고, 붙었습니다"

일상에서 전통 한복 입고 제작까지 하는 고교생 엄대정씨... "남들 시선 신경쓰지 않아요"

등록|2023.12.27 16:50 수정|2023.12.27 16:51
MBC 드라마 '연인'부터 '열녀박씨'까지, 지금 우리나라는 사극의 열기가 뜨겁다. 지난달 18일 종영한 '연인'은 최고 시청률 12.9%를 기록하며 사극 돌풍을 일으켰다. 애절한 스토리와 더불어 디테일한 고증을 거친 등장인물의 의상 또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우리는 주로 일상보다 화면을 통해 전통한복을 접한다. 옛 모습 그대로의 전통한복은 화면 속에서만 접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드라마가 아닌 일상에서도 전통한복을 입는 사람이 있다. 전통을 알리고 이를 계승하고자 노력하는 한복제작자 엄대정(19, 대전예고 3학년)씨 얘기다. 그는 손바느질로 한복을 제작한다. 또한 말총(말의 갈기나 꼬리털)을 직접 세탁하여, 상투 틀 때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망건을 제작하기도 한다. 그 어떤 세대보다 디지털과 가까울 듯한 19살 학생이 전통한복을 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8일, 그를 만나 전통을 향한 집념에 대해 물었다.
 

▲ 한복제작자 엄대정씨의 모습 ⓒ 엄대정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대정씨에게 전통한복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의외로 '환경오염'을 얘기했다.

"조선 말기 문신 윤용구의 '철릭' 유물을 보고 출토복식과 전승복식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어요. 때마침 환경오염 이슈를 접하고, 나는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한복이 떠올랐습니다. 한복은 맞춤 제작이기 때문에 수량이 남을 수 없거든요."

대정씨는 대량으로 생산되는 의류산업도 언급했다.

"일부 명품브랜드는 브랜드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재고를 소각하기도 해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는 대기오염으로 이어지고, 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에너지와 자원은 버려졌습니다. 그러나 맞춤한복에 사용되는 천은 자투리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재봉틀 하나를 가동하는 전력만 소모돼요.

더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를 갖춰야 할 때 양복 정장을 입습니다. 우리가 양복을 입을 때 옥스퍼드 구두에 중절모까지 서양예복을 모두 갖춰 입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점차 복식이 간소화되는 시대에 한복으로 전통적인 예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한복 TPO? 충분히 맞출 수 있어요."

대정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직접 한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쾌자, 마고자, 바지저고리 같은 현대식 한복을 시장에서 맞춰 입다가 '윤용구 철릭(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인 윤용구의 복식유물)' 유물을 보고, "나도 철릭을 입어야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 후로 출토복식과 전승복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일상 생활에서도 한복을 입게 됐다. 고교 3학년이라 학교에선 교복을 입다보니, 그 외의 시간에만 한복을 입을 수 있었다고.

"일상에서도 전통한복을 입으려고 노력해요. 예외가 있다면 자전거 탈 때인데, 저는 반경 10km 내외는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지내는 곳 근처에서는 한복을 거의 안 입는 거 같아요. 그래도 많이 입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먼 곳을 갈 때는 일부러 한복만 가져가기도 하고요."
 

▲ 손바느질로 철릭을 만드는 모습 ⓒ 엄대정

 

▲ 완성된 철릭을 입은 한복제작자 엄대정 ⓒ 엄대정


일상 속에서 전통 한복을 입는다면, TPO(시간 time, 장소 place, 상황 occasion)에 맞출 수 있을까.

"저는 다양한 종류의 한복이 TPO를 충분히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례 때는 삼베에 두건을 쓰고, 결혼식에서는 도포나 창의를 걸치면 됩니다. 저는 외할아버지 장례식에서 삼베옷을 입었어요. 다른 분들은 저를 보고 의아해했지만, 외할머니께서는 옛 상례를 떠올리시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죠. 이후로 저는 할머니의 가장 아끼는 손자가 되었답니다.

또 대학 면접을 볼 때도 전통한복을 입었어요. 저는 내년 한국전통문화대 전통섬유학과 24학번으로 입학합니다. 전통에 조예가 깊은 학교 특성상 가끔씩 한복 차림으로 면접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저도 그중 한 명이랍니다.(웃음)" 


그는 전통한복을 입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제작까지 한다. 가위로 원단을 자르고, 바늘에 실을 꿰어 한복을 만든다.

"한복 제작을 손바느질로 맡기면 최소 150만 원이 들어요. 높은 가격으로 인해 주문제작에 부담을 느꼈죠. 주문을 맡기더라도 그 과정에서 세부적인 디테일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물이 아쉽더라고요. 또 조선시대 때는 손바느질로 한복을 만들었고, 일부는 부업으로 삼기도 했어요. 때문에 '나도 한복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제작하게 됐어요."

그의 한복에 대한 열정은,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의 역사 지식을 갖는 데까지 발전했다.

"한번은 제게 '대갓은 양반이, 중갓과 소갓은 중인이 썼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저는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첩을 보여드렸습니다. 갓 크기는 신분에 따른 제약이 없어요. 다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양반은 갓에 비단을 씌우고, 중인은 모시를 둘렀죠. 신윤복의 풍속화첩을 보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연주를 즐기는 사람의 갓 크기가 같아요. 악공은 중인에 속하고, 연주를 즐기는 사람은 양반입니다. 이처럼 신분에 따라 갓의 재료는 다르지만, 크기는 동일하기 때문에 갓으로 신분을 구별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림과 함께 설명해 드리니 수긍하시더라고요."

물론, 한복을 입는 그를 향해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복을 입을수록, 시선은 신경쓰지 않게 됐다고 했다.

"예전에 집을 나설 때는 평범하게 입을지, 한복을 입을지 고민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저를 희한하게 보는) 모르는 사람을 계속 보게 될 것도 아니고 혹여 인연이 이어진다고 해도 그분이 저를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지금까지 전통을 사랑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에 집념을 갖기 위해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도 결국 똑같은 인간이에요. '나는 그 사람과 다르니까 못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포기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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