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한우농가라더니 현장엔 숲만... 대전축협 '가짜 조합원' 의혹

비농민 허위 자격 투표자·무자격자 방조 조합장 고발... 대전축협 측 "문제될 분들 다 정리"

등록|2024.01.11 11:27 수정|2024.01.11 11:27

▲ 대전축협 경제사업 현황. 대전축협 누리집 ⓒ 대전축협 누리집

   
대전축협이 무자격 조합원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무자격 조합원들은 조합장 선거 때마다 한 표를 행사해 선거 결과를 왜곡시키고 조합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축협 측은 "농식품부 감사를 비롯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별도 실태 조사를 통해 문제가 될 만한 분들은 다 정리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마이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A씨 등 대전축협 조합원 6명은 지난해 3.8 대전축협 조합장 선거 직후인 지난해 5월 '일부 조합원 축산을 하지 않는 비농민인데도 허위 사실로 조합원 자격을 얻어 투표에 참여했다'며 조합원 수십 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당선된 조합장에 대해서도 '선거에서 당선하기 위해 지인들이 무자격자인 줄 알면서도 조합원으로 등재시키거나 실태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방조한 의혹이 있다'며 함께 고발했다.

현행 농업협동조합법상 축협 조합원 자격은 지역 축협 구역에 주소나 거소, 사업장이 있는 자에게 부여된다. 또한 기준 이상의 가축을 사육하고 농업경영체 등록(농작물 생산정보나 가축사육 정보 등의 경영정보를 정부 기관에 등록해 고유번호를 부여받는 것으로, 농가소득 안정을 위한 직불제 등 신청 자격 등을 결정하는 근거)을 한 사람 중 경영주로 등록돼 있어야 한다. 최소 사육조건은 ▲소 2마리(착유우 1마리) ▲젖먹이 새끼 돼지를 제외하고 10마리 ▲양 20마리 ▲사슴 5마리 ▲토끼 100마리 ▲육계 1000마리 ▲산란계 500마리 ▲오리 200마리 ▲염소 20마리 ▲꿀벌 10군 ▲말 2마리 이상이다.

앞서 A씨 등은 조합장 선거 이전인 지난해 말 항공사진과 자료를 근거로 조합 측에 '50여 명이 무자격 조합원으로 의심된다'며 실태조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조합 측은 '점검 결과 이상이 없다'며 대부분 조합원 자격을 그대로 인정하고 선거인명부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 선거 당시 선거인명부에 올린 조합원은 375명이었다.

실제로 기자가 농업경영체 등록 현황에 나와 있는 대전축협 조합원 주소들을 찾아가 보니, A씨 등의 주장처럼 무자격 조합원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몇 건 발견됐다.

B씨는 한우 2마리를 사육한다고 했지만 현장엔 축사와 한우가 없었다. 소를 키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산속이었다. C씨(한우 3마리), D씨(한우 2마리), E씨(한우 2마리)도 마찬가지였다. 농장 주소지에서는 축사나 소를 키운 흔적이 없었다. 카카오 지도 등을 통한 연도별 항공사진을 보면 해당 농장 주소지에서 최소 10년 이상 농업경영을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된다.

하지만 대전축협은 지난 2022년 2월 현지 실태 점검을 통해 한우를 키우고 있는 것으로 인정했다.
 

▲ 한 축협 조합원이 한우 2마리를 사육하는 농장으로 신고한 주소지를 카카오맵으로 본 항공사진. 최소 10여 년 동안 한우 농장으로 사용한 흔적이 없다. 최근 찾은 이 땅에는 현재 축사가 아닌 다른 건축물이 들어섰다. ⓒ 카카오맵 갈무리

     

▲ 한 축협 조합원이 한우 2마리를 사육하는 농장으로 신고한 주소지를 카카오맵으로 본 항공사진(위) 과 오마이뉴스가 촬영한 해당 산림의 현재 모습(아래). 최소 10여 년 동안 한우 농장으로 사용한 흔적이 없다. ⓒ 심규상


또한 농업경영체 등록은 1농장 당 한 사람, 농영경영체 경영주 등록은 1세대 1경영주만 가능하다. 지난해 5월 작성한 대전축협의 조합원 실태조사 안내문에도 '반드시 농영경체등록확인서에 경영주로 등록돼 있어야 조합원 자격이 인정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모두 같은 농장의 조합원으로 가입해 1세대 당 2표를 행사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이 중 한 조합원은 고발인들에게 "부부가 같이 조합원으로 돼 있는데 아내는 경영주 등록이 안돼 있어 조합원 자격이 없다. 그런데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해 8월 피고발된 조합원들에 대해 '혐의가 없다'며 사건을 각하했다.

경찰은 수사 결과통지서를 통해 "(고발인 등이) 증거로 제출한 사진 등은 촬영일시가 불명확하지만, 대전축협의 자료를 보면 피고발인들이 농업경영체 등록이 돼 있고 조합에서도 현지 실태조사를 한 사실이 확인된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대전축협 현 조합장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A씨 등은 "고발의 주요 취지는 농업경영체 등록 여부가 아닌 실제 축산업을 운영하고 있는지를 현장 확인해 조합원 자격 유무를 가리고, 조합장선거권 행사가 적합한 것인지를 가려달라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경찰 수사는 실제 축산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서류만으로 판단한 오류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경찰은 이의 제기에 따라 사안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빠르면 이달 중 재수사 결과를 내놓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축협 "문제될 분들 정리, 다른 사람 축사에 소 키우는 경우 조합원 인정"

대전축협 관계자는 "대전축협의 경우 지난 2008년 조합원 984명에서 현재 360명으로 조합원이 줄었다"며 "이는 조합원들을 엄격한 기준에 의거해 정리해왔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농식품부 감사를 비롯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별도 실태 조사를 통해 문제가 될 만한 분들은 다 정리했다"며 "그럼에도 다 걸러내지 못했을 수 있어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대전축협 관계자는 기자가 확인한 축사 없는 주소들과 관련해 "현장 점검 당시 해당 조합원들이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농장이 아닌 다른 사람의 축사에 소를 키운다고 해 이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축산물품질평가원을 통해 소를 소유하고 있다는 증명이 있었고, 해당 조합원들도 자기 소유가 맞다고 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조합원은 "농협중앙회나 축협중앙회가 지역농협과 지역축협에 대해 지도감독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조합원 자격에 대해서는 해당 조합 측이 자체적으로 점검, 보고하는 형식으로 이뤄져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며 "외부 기관의 강도 높은 실태조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충남지원 관계자는 "애초 신고한 농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농장을 이동한 경우 14일 이내에 변경신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 축사에 여러 소유자의 소를 키울 경우 소유자별로 칸막이를 설치해 소유주 관계를 명확히 해야한다"며 "2마리, 3마리 씩을 여러 소유주가 한 농장에서 오랫동안 키웠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축협이나 농협 등에 가입된 조합원들은 '무자격 조합원' 문제가 오랜 병폐라고 지적한다. 충남 지역의 한 농협 조합원은 "조합 측에서 농사나 축산을 하지  않는 조합원이 누구인지 뻔히 알면서도 조합장 선거나 조합의 편안한 운영을 위해 가짜 조합원을 적발해 내는 데 소극적이거나 오히려 무자격 조합원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고 증언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