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집게손 논란 이후 모든 캐릭터 주먹 쥐고 있다"

[현장] 넥슨 하청업체 뿌리 기자회견 "내년 계약 60% 취소"...'집게손 트집' 유저들, 참석 안해

등록|2023.12.29 19:38 수정|2023.12.30 10:19

▲ 29일 오후 2시께 기자간담회가 열린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스튜디오 뿌리 사무실의 모습 ⓒ 김화빈


"(집게손 논란으로) 내년 상반기 6월 기준 계약의 60%가 취소됐다." - 스튜디오 뿌리 장선영 대표

29일 오후 2시께 서울 구로구에 있는 스튜디오 뿌리 사무실에서 '집게손' 해명 기자회견이 열렸다. 게임사 넥슨이 '남성혐오를 상징하는 집게손이 들어갔다'는 악성 유저들의 항의를 받고 하청업체인 뿌리가 작업한 자사 게임 캐릭터의 리메이크 홍보 영상을 비공개 조치한 지 34일 만이다.

그동안 뿌리는 넥슨으로부터 어떠한 입장도 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년 계약 프로젝트 상당 부분이 취소되는 등 유무형의 재산상 피해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관련기사: IT노조 "넥슨은 가장 먼저, 가장 깊이 반성해야 한다" https://omn.kr/26lng).

이날 자리에는 스튜디오 뿌리의 장선영 대표와 김상진 총감독, 범유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대표,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대표가 참석했다. 뿌리에 해명을 요구하는 유저들을 위한 설명자료도 준비됐지만 항의 유저들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김민성 대표는 "참석 의사를 밝힌 유저들이 5~6명 있었으나 실명확인 절차 등을 설명하자 모두 참석을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집게손 논란, '고의 없음' 자신 설명 들어달라... 사이버불링은 법적 대응"

32년간 애니메이션업계에 몸담은 김상진 뿌리 총감독은 넥슨 집게손 사태와 관련, "9년간 애정을 갖고 만들어왔던 작업물이 오해받고 폐기되는 게 가장 큰 피해"라고 힘겹게 운을 뗐다.

김 감독은 "(논란이 된) 집게손 장면을 원화에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데 약 2주가 소요됐다"며 "애니메이션 1초에 나오는 캐릭터 동작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무수히 많은 컷이 삽입되고, 여러 사람이 공정에 참여해 완성되는데 '의도성을 갖고 (집게손을) 넣었다는 건 정말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는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넥슨 게임 캐릭터 또한 여전히 좋아한다"며 "(구성원) 모두가 즐겁게 동화 작업(원화와 원화를 연결해 움직임을 부드럽게 하는 일)을 했다. 직업에 관한 전문성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며칠이 걸리든 유저분들께 집게손이 고의가 아님을 설명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 이후 모든 캐릭터들이 주먹을 쥐고 있다. (누군가 볼 때는) 단순한 손일지 몰라도 손동작에는 캐릭터의 감정표현과 성격이 반영된다"며 "여러 표현에 제약이 생긴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 29일 오후 2시께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스튜디오 뿌리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상진 애니메이션 총감독이 여러 레퍼런스 이미지를 띄워 설명하는 모습. 해당 이미지는 게임사가 시안의 형태로 뿌리에 전달한 콘텐츠로 '집게 손가락'이 포함돼 있다. ⓒ 김화빈


반면 넥슨은 지난 28일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디렉터'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 외주사 선정 원점 재검토 ▲ 작업물의 품질관리·검수 시스템 정비 ▲ 집게손 의혹 이미지 수정(100여 개) 등을 공지하며 유저들에게 재차 고개를 숙였다.

장선영 대표는 이 과정에서 넥슨이 뿌리 측에 (실태조사를 위한) 자료 요청이나 상황 문의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장 대표는 "(넥슨이) 저희에게 9년간 일을 맡겨주셨고 그 덕분에 회사가 성장했지만 이번 사건에 있어 입장차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게임사로부터 들어오는) 오해 요소가 있을 만한 장면 수정 요청에 무상으로 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뿌리 측은 발신자표시제한 전화 테러와 커뮤니티에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유저들이 여전히 있다고도 밝혔다. 뿌리 측 모니터링 결과, 사상검증 피해를 입은 애니메이터 A씨를 대상으로는 1300건, 뿌리는 수백여 건의 피해가 집계됐다.

A씨와 뿌리를 대리하는 범유경 변호사는 "검토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고소장 제출 등 강경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장 대표도 "근로자들에게 최대한 재택근무를 지원하며 성명불상의 사람들이 사무실로 찾아오는 경우가 있어 CCTV(폐쇄회로TV)를 입구에 설치했다"고 부연했다.

"논란의 시발점은 저작물에 '특정 사상이 반영돼 있다'는 것인데 1년 6개월 전 구체적 맥락에서 나온 A씨의 트위터 문장(스리슬쩍 페미해줄게)이 유일한 근거다. 하지만 A씨가 (집게손 장면을) 작업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나. (국내 어떤) 법정에서 이와 같은 인과관계를 인정해 줄지 의문이다." - 범유경 변호사

"하청에 책임 전가 넥슨, 공정거래 여부 따져봐야"
 

▲ 29일 오후 2시께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스튜디오 뿌리 사무실에서 집게손 사태에 대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상진 스튜디오 뿌리 총감독,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대표,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대표. ⓒ 김화빈


뿌리 측은 넥슨을 대상으로 별도의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 그와 별개로 범 변호사는 넥슨 측 대응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과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권리보장법)'상 금지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범 변호사는 "(악성민원을 일방으로 수용하고 하청에 책임을 돌린) 넥슨의 대응이 공정거래법상 공정한 거래인지, 뿌리 구성원에 대한 인격훼손에 해당하지는 않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예술인권리보장법에선 '예술인 행위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수정 요구에 대한)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대표는 "논란 전까지 (원청) 검수단계에서 용인되던 것인데도 (일부 유저들의) 항의를 하자 넥슨은 '우린 아무 잘못도 없고 다 하청에서 한 일'이라고 얘기하고 있다"며 "이게 바로 갑질 마인드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넥슨은 (유저들이) '아무튼 기분 나빠하니 수정해야 된다'는 공정하지 않은 요구를 하며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며 "뿌리의 무상 수정에도 어떠한 존중의사도 내비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