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은 가족, 가족은 사랑... 이 영화에 쏟아진 뜨거운 관심
[김성호의 씨네만세 620]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재개봉 포스터 ⓒ 워터홀컴퍼니(주)
연말이면 주목받는 영화가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돌아오던 <나홀로 집에> 시리즈가 그렇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니콜라스 케이지와 독보적인 미모의 티아 레오니가 공연한 <패밀리 맨>도 그렇다. 이밖에도 연말에 특별한 관심을 받는 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그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한 자리를 차지할 게 분명하다.
이들 영화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중심을 흐르는 주제가 가족과 통한다는 점이다. 날씨가 추울수록 몸과 마음을 녹이는 따스함을 찾게 되는 것이 우리 사는 삶이기 때문일 터다.
코로나19 이후 가장 주목받은 영화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 같은 국면에서 수혜를 받았다 해도 좋겠다. 2022년 개봉해 미국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가히 이변이라 해도 좋을 일이었다. 이 해 아카데미 시상식엔 역대급이라 할 만큼 좋은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글쟁이를 격동시킬 만큼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쓴 <더 웨일>, 스티븐 스필버그가 자전적 이야기를 격조 높게 완성한 <파벨만스>, 이 시대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데미언 셔젤의 인생작 <바빌론>, 칸느의 화제작 <슬픔의 삼각형>, 전 세계 영화역사상 가장 성공한 속편인 <아바타: 물의 길> 등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연 시상식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잔치였다.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 각본, 편집, 여우주연, 남우조연, 여우조연 등 주요부문을 이 영화 한 편이 모두 휩쓴 것이다. 주요부문 중 남우주연만 <더 웨일>의 브렌든 프레이저에게 돌아갔을 만큼 독무대라 해도 좋았다. 백인중심적이란 논란 끝에 다양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아카데미 시상식의 흐름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일이었다.
이 영화가 가진 파괴력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개봉한 지 1년이 넘도록 각종 OTT 서비스에서 인기순위 최상단을 차지한 건 기본이고, 올 겨울을 앞두고 한국에서도 다시 재개봉할 만큼 그칠 줄 모르는 인기를 누려온 것이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이러한 관심을 일으킨 것일까.
미국 문화계가 주목하는 아시아 이민자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영화는 아시아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다. 미국으로 이민을 와 남편과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 분)이 주인공으로, 일과 가정 모두에서 고단한 일상을 보내는 여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무당국의 조사까지 이뤄지는데 말도 통하지 않고 법규는 어렵기 짝이 없어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아버지는 퇴행성 질환을 앓고 하나뿐인 딸은 어느 날 갑자기 여자를 제 짝으로 데려오니 뭐 하나 마음처럼 안 된다는 푸념에도 이유는 있다.
뿐인가. 설상가상이라고 저 아니면 사람구실 못하리라 여긴 남편까지 이혼서류를 만들어 놓았다. 혼자 동분서주하며 타지에서 가족을 이끌어온 에블린으로선 분통이 터질 밖에 없는 일이다.
영화는 이 같은 난국 가운데 에블린의 일상에 찾아온 비일상을 영화적으로 풀어낸다. 소위 멀티버스라고 부르는 다중우주의 만화적 설정이 에블린의 일상 가운데 펼쳐지는 것이다. 함께 국세청을 찾은 남편이 난 데 없이 첩보원 행세를 하며 에블린에게 이어폰과 메시지를 전하고, 그로부터 이제껏 느낀 적 없는 낯선 광경과 마주하게 된다. 말하자면 세상엔 수많은 우주가 동시에 존재하고 그 모든 곳엔 에블린과 남편, 또 그녀의 아버지와 딸들이 수없이 많은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모든 우주가 일대 위기에 처한 가운데 오로지 에블린이 파멸을 막을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매트릭스> 시리즈를 보는 듯한 이 장엄한 임무는 모든 우주를 파멸시키려는 악당 조부 투바키(스테파니 수 분)를 저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부가 에블린이 사는 세계에선 다름 아닌 그녀의 딸 조이가 아닌가. 다시 말해 다른 우주에서도 에블린과 남편, 딸 조이 등 주변인물들은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갖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이 중 조이는 현실에서와 같이 에블린과 갈등을 빚고, 그로부터 전 우주를 멸망시키려는 대악당이 되기에 이른다.
돌고 돌아 도착하는 가족과 사랑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영화는 에블린이 조이에 맞서 제가 사는 세상, 나아가 전 우주를 지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멀티버스라 불리는 수많은 우주 속 다양한 저의 삶을 확인하는 것이 이 영화의 멋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에블린의 그 모든 삶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가 사는 이 세상의 삶보다 못한 게 없다는 게 아프게 다가온다.
똑같은 이들이 살아가는 수많은 세상에서 다른 삶이 펼쳐지는 건 바로 선택 때문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느 길을 걷느냐가 곧 삶을 전혀 다른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로부터 누구는 쿵푸의 전문가가 되고, 또 누구는 요리사가 되며, 세탁소를 지키고 살아가는 오늘의 에블린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선택이 나를 어떤 길로 이끌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선택에서 비롯된 결과가 내일을 만든다니 어느 선택 하나도 쉬이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수많은 나와 또 수많은 우주의 존재는 사람을 가벼이 대할 수 없도록 이끈다. 각자가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닌, 수많은 선택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이해한다면 그 결과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품을 밖에 없는 일이다. 또 가장 가까운 사람, 즉 모녀와 부부, 부녀의 사이조차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음을 그리고 있단 점도 인상적이다. 그러면서도 최종 귀착지는 그 몰이해가 아닌 사랑으로 서로의 다름을 감싸 안아야 한다는 마땅한 결론이어서 영화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데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밖에 없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여러모로 보편적 주제를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다. 물론 앞서 언급한 수많은 명작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오늘의 대중 앞에 충분한 호소력 있는 작품이란 건 부인할 수 없겠다. 무엇보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도 결코 변치 않는 가족과 인생이란 주제만큼은 오늘의 관객에게 반드시 통한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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