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따라하고 싶은 <싱어게인 3> 임재범의 심사평
존중과 겸손을 바탕으로 한 심사평에 공감... 탈락자들에게 기립 박수도 인상적
최근 <싱어게인 3>를 즐겨보고 있다. 참가자들의 열정과 천재성을 보고 있자면 '우와' 하면서도 발현되지 못한 내 안의 뭔가가 꿈틀 되는 것 같아서 참 좋다.
그런데 최근엔 오디션을 바라보는 관점이 좀 달라졌다. 예전엔 참가자 입장에서 이입해서 보았다면 요즘은 심사위원 입장에서 보게 된다. 물론 참가자의 간절함, 재능, 운 같은 것도 흥미 요소이긴 하지만 이들을 평가하는 심사위원의 태도와 말에 유난히 더 관심이 간다. 경연자들의 음악은 설렁설렁 들어도 심사평은 귀 쫑긋 세워 챙겨 듣는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아마도 나 역시 아이들의 글을 평가하는 선생님으로서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은 어렵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그렇다. 잘함과 못함의 기준을 나누는 것이 참 주관적이며, 그럼에도 그것을 가려내어 냉철하게 전해야 하는 심정도 그리 편하진 않다. 자칫, 나의 부정적인 평가로 좋아했던 글쓰기가 싫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싱어게인> 심사위원의 심사를 보면서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구나 싶어 공감이 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납득이 될 만한 근거와 전문 지식에 빗대어 요목조목 심사평을 하는 것은 무척이나 존경스럽고 배우고 싶은 지점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임재범 심사위원의 심사가 가장 인상 깊다. 못 하면 호되게 혼낼 것 같은 이미지인데, 웬 걸? 전혀 그 반대다. 섬세한 배려가 깃든 평가에 참가자가 아닌 나도 울컥하고 감동받을 때가 많다.
오디션 프로에서 본 적 없던 모습
지난 28일 방송에서 TOP10에 진출한 27호 가수가 "사실 TOP10을 너무 가고 싶었다. 그냥 잘하는 거 하자는 마음이 많았는데 '내가 언제부터 잘하려고 음악을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했을 때다.
임재범은 "기회는 저희가 드린 게 아니라 본인이 얻은 거다. 감사하다고 얘기 안 하셔도 된다. 저희도 노래하는 선배일 뿐이고 먼저 노래했다는 것밖에는 더 내세울 건 없다"라는 말을 전했다.
그동안 나는 평가자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확실한 기준점과 냉철한 분석을 해야 좋은 심사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안 된다는 걸 임재범 심사위원을 보며 알게 됐다. 진정한 평가자는 이 모든 것 위에 겸손이 더해져야 한다.
또 임재범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듣고 있자면 참가자들에 대한 존중이 느껴진다. 항상 평가에 앞서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말을 붙인다. 자신의 말이 정답이 아님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한다. 아쉬운 무대에서도 "무대 잘 보았어요"라고, 소름 끼치게 잘 한 무대에서도 "참 잘했어요" 정도로 그치는. 지나친 극찬도, 지나친 혹평도 하지 않는다.
외려 모호한 판정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내가 볼 땐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선배의 큰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흑과 백, 좋고 나쁨 같은 이분법으로 구분될 수 없고 지금은 별로여도 나중에 좋은 것이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심사의 잣대라는 것이 지극히 시대적이고 개인적인 것인데 그것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을 매회 참가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듯하다.
이날 방송에서 TOP10에 진출하지 못해 눈물을 보인 탈락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여기 심사위원이라고 앉아 있는 저희들도 가수고요. 우리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진짜... 백지영 심사위원님 말대로 우리도 어떻게 될지,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고... 수없이 쓰러지고, 수없이 후회하고, 수없이 포기해 보고, 또 악에 받쳐 노래할 때도 있었고,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노래할 때가 있었고,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노래할 때도 있었고... 많은 것들을 겪게 되고 또 겪게 될 거예요. <싱어게인 3>을 통해 시청자분들이 보시고 여러분들 얼굴 기억하시고 응원해 주실 거예요. 분명히."
이 말이 끝나고 임재범은 기립 박수를 쳤다. 탈락자 즉 실패자들에게 보내는 기립박수라니... 여태 오디션 프로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모습이었다. 그간 재능과 천재성, 기술적인 면모에만 박수를 쳐왔는데, 그의 평을 듣고 나서 이 자리가 끝이 아닌,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참가자들의 인내가 사무쳐 나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 주책없게 들릴 수 있겠지만 함께 눈물도 흘렸다.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니기에
살면서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다. 직업인으로서의 평가, 엄마로서의 평가, 인간으로서의 평가, 그런데 그 평가 중에 이토록 다정하고 자상한 말이 있었던가? 더군다나 실패한 나에게 기립 박수를 쳐 준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건 저래서 문제고, 이걸 더 보태야 하고 저걸 더 덜어야 하고... 모두 자신이 정답이라는 매서운 몽둥이로 타인의 노력과 열정을 매질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꿈의 동력은 잃고 회의만 남는다.
가끔 오디션 탈락자, 혹은 준우승자가 더 많은 인기를 얻고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나는 그런 순간에 굉장한 쾌감을 느낀다(슈퍼스타K 준우승 장범준, 싱어게인 3등 이무진, 싱어게인 TOP3 탈락 너드커넥션). 1등이 되지 못한 혹은 탈락의 쓴 맛을 보게 한 심사위원들에게 하는 가장 고급스러운 복수인 것 같아 짜릿하다.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니다.
2023년, 한 해를 되돌아보며 누군가를 혹은 자신을 평가해야 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올해는 임재범 심사위원 스타일로 평가를 해보는 건 어떨까? 나에게도 남에게도 존중과 겸손을 바탕으로 따뜻한 평가를 내릴 수 있기를... 어떤 실패라도 기립 박수를 보낼 수 있기를... 해피 뉴 이어.
그런데 최근엔 오디션을 바라보는 관점이 좀 달라졌다. 예전엔 참가자 입장에서 이입해서 보았다면 요즘은 심사위원 입장에서 보게 된다. 물론 참가자의 간절함, 재능, 운 같은 것도 흥미 요소이긴 하지만 이들을 평가하는 심사위원의 태도와 말에 유난히 더 관심이 간다. 경연자들의 음악은 설렁설렁 들어도 심사평은 귀 쫑긋 세워 챙겨 듣는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싱어게인> 심사위원의 심사를 보면서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구나 싶어 공감이 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납득이 될 만한 근거와 전문 지식에 빗대어 요목조목 심사평을 하는 것은 무척이나 존경스럽고 배우고 싶은 지점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임재범 심사위원의 심사가 가장 인상 깊다. 못 하면 호되게 혼낼 것 같은 이미지인데, 웬 걸? 전혀 그 반대다. 섬세한 배려가 깃든 평가에 참가자가 아닌 나도 울컥하고 감동받을 때가 많다.
오디션 프로에서 본 적 없던 모습
▲ '싱어게인 시즌3' 임재범, JTBC <싱어게인 시즌3-무명가수전> 제작발표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는 가수 임재범. ⓒ 이정민
지난 28일 방송에서 TOP10에 진출한 27호 가수가 "사실 TOP10을 너무 가고 싶었다. 그냥 잘하는 거 하자는 마음이 많았는데 '내가 언제부터 잘하려고 음악을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했을 때다.
임재범은 "기회는 저희가 드린 게 아니라 본인이 얻은 거다. 감사하다고 얘기 안 하셔도 된다. 저희도 노래하는 선배일 뿐이고 먼저 노래했다는 것밖에는 더 내세울 건 없다"라는 말을 전했다.
그동안 나는 평가자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확실한 기준점과 냉철한 분석을 해야 좋은 심사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안 된다는 걸 임재범 심사위원을 보며 알게 됐다. 진정한 평가자는 이 모든 것 위에 겸손이 더해져야 한다.
또 임재범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듣고 있자면 참가자들에 대한 존중이 느껴진다. 항상 평가에 앞서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말을 붙인다. 자신의 말이 정답이 아님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한다. 아쉬운 무대에서도 "무대 잘 보았어요"라고, 소름 끼치게 잘 한 무대에서도 "참 잘했어요" 정도로 그치는. 지나친 극찬도, 지나친 혹평도 하지 않는다.
외려 모호한 판정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내가 볼 땐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선배의 큰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흑과 백, 좋고 나쁨 같은 이분법으로 구분될 수 없고 지금은 별로여도 나중에 좋은 것이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심사의 잣대라는 것이 지극히 시대적이고 개인적인 것인데 그것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을 매회 참가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듯하다.
이날 방송에서 TOP10에 진출하지 못해 눈물을 보인 탈락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여기 심사위원이라고 앉아 있는 저희들도 가수고요. 우리도 어떻게 될지 몰라요. 진짜... 백지영 심사위원님 말대로 우리도 어떻게 될지,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고... 수없이 쓰러지고, 수없이 후회하고, 수없이 포기해 보고, 또 악에 받쳐 노래할 때도 있었고,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노래할 때가 있었고,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노래할 때도 있었고... 많은 것들을 겪게 되고 또 겪게 될 거예요. <싱어게인 3>을 통해 시청자분들이 보시고 여러분들 얼굴 기억하시고 응원해 주실 거예요. 분명히."
이 말이 끝나고 임재범은 기립 박수를 쳤다. 탈락자 즉 실패자들에게 보내는 기립박수라니... 여태 오디션 프로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모습이었다. 그간 재능과 천재성, 기술적인 면모에만 박수를 쳐왔는데, 그의 평을 듣고 나서 이 자리가 끝이 아닌,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참가자들의 인내가 사무쳐 나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 주책없게 들릴 수 있겠지만 함께 눈물도 흘렸다.
▲ 임재범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듣고 있자면 참가자들에 대한 존중이 느껴진다. ⓒ JTBC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니기에
살면서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다. 직업인으로서의 평가, 엄마로서의 평가, 인간으로서의 평가, 그런데 그 평가 중에 이토록 다정하고 자상한 말이 있었던가? 더군다나 실패한 나에게 기립 박수를 쳐 준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건 저래서 문제고, 이걸 더 보태야 하고 저걸 더 덜어야 하고... 모두 자신이 정답이라는 매서운 몽둥이로 타인의 노력과 열정을 매질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꿈의 동력은 잃고 회의만 남는다.
가끔 오디션 탈락자, 혹은 준우승자가 더 많은 인기를 얻고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나는 그런 순간에 굉장한 쾌감을 느낀다(슈퍼스타K 준우승 장범준, 싱어게인 3등 이무진, 싱어게인 TOP3 탈락 너드커넥션). 1등이 되지 못한 혹은 탈락의 쓴 맛을 보게 한 심사위원들에게 하는 가장 고급스러운 복수인 것 같아 짜릿하다.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니다.
2023년, 한 해를 되돌아보며 누군가를 혹은 자신을 평가해야 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올해는 임재범 심사위원 스타일로 평가를 해보는 건 어떨까? 나에게도 남에게도 존중과 겸손을 바탕으로 따뜻한 평가를 내릴 수 있기를... 어떤 실패라도 기립 박수를 보낼 수 있기를...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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