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만난 로마 황제들... 이게 어떻게 가능했냐면
[카프카스 기행, 카스피해 바쿠에서 흑해 바투미까지 (32)] 이스탄불 공항박물관
▲ 에페보스 석상 ⓒ 이상기
전 세계 국제공항에 박물관을 설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미술품 위주의 박물관에 들른 적이 있는데, 이스탄불 공항에서도 박물관을 만날 수 있었다. 자료에 보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L.A. 국제공항에도 박물관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이스탄불에서 환승을 하는데 서너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쇼핑을 할 수도 있고 쉴 수도 있는데, 마침 박물관을 알리는 조각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스의 알렉산더대왕 대리석상이다. 석상 아래 200m만 더 가면 박물관이 있다는 화살표를 볼 수 있다.
중간에 그리스시대 젊은이 에페보스(Ephebos) 석상이 보인다. 설명문에 보니 1902년 아이딘(Aydin)에서 발견되었으며,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에 있다고 되어 있다. 작품은 기원후 1세기 초인 로마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 60m만 가면 박물관이 나온다. 이곳에는 박물관을 알리는 조각품이 하나 더 있다. 코르넬리아(Cornelia Antonia)라는 여인 조각상이다. 그녀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조카이자, 칼리굴라 황제의 할머니로 알려져 있다. 박물관을 알리고 찾게 하는 아이디어가 참신하다는 생각이 든다.
▲ 차탈회육의 신성한 어머니상 ⓒ 이상기
박물관 입구에는 공항호텔이 있고, 그곳을 지나면 튀르키에 관광명소와 문화유산 사진이 걸려 있다. 박물관은 입장료를 받는데 10유로다. 달러로 환산하니 11달러를 내란다. 박물관에 들어가니 관람객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아주 여유 있게 전시품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은 유물을 시대별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크게 네 시대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아나톨리아 지역의 신석기 청동기시대다. 다음이 그리스와 로마 시대다. 세 번째가 오스만 튀르키에 시대다. 마지막이 근현대 튀르키에 시대다. 그 중 그리스 로마와 오스만 튀르키에 시대 유물이 가장 많다. 그것은 이 시대 유물이 가장 많기도 하지만 튀르키에 역사의 전성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사자머리 조각 팔찌 ⓒ 이상기
청동기시대 유물로는 손잡이에 장식이 있는 칼이 보인다. 목걸이나 귀걸이 같은 금동 장신구도 보인다. 도토리 모양의 금과 보석을 연결한 목걸이도 있다. 조각이 더 정교한 것으로 사자머리를 조각한 팔찌도 있다. 쐐기문자가 새겨진 용기도 보인다. 청동기시대에 오면 작품의 예술적 아름다움이 대단해짐을 알 수 있다. 앗시리아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손잡이 달린 붉은색 용기도 보인다. 진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단순하게 찍어낸 원문양이 인상적이다.
로마의 지배 받은 튀르키에 문화유산
튀르키에 지역은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문명의 영향은 비잔틴제국까지 이어진다. 비잔틴제국은 콘스탄티누스대제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시작되는데, 이를 통해 역사의 중심이 서방 로마에서 동방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지게 되었다. 특히 근동(Near East)의 기독교가 비잔틴제국의 공인을 받으면서 정신적 문화적으로 튀르키에 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안티오키아에서 처음으로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었다.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가 에페수스에서 살았다고 한다.
▲ 로마시대 황제들 ⓒ 이상기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는 기원후 128년 아나톨리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리스 문화와 로마의 정치를 정착시키려 노력했다. 이를 위해 도시를 정비하고 신전을 세웠으며, 왕정체제를 확고히 하기 위한 통치기반을 만들어 나갔다. 로마시대 황제가 조각과 동상으로 만들어져 찬양되었으며, 황제 얼굴이 들어간 주화를 발행해 유통시켰다. 금화를 만드는 전통은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시대부터 확인된다. 이곳에는 헬레니즘시대 알렉산더 대왕 주화가 전시되어 있다. 로마황제로는 아우구스투스부터 네로,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주화가 보인다.
이들 황제의 얼굴은 대리석 흉상으로도 남아 있다. 아우구스투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상은 금방 알 수 있다. 다른 황제와 황비의 모습도 있는데 이름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전사의 모습을 한 황제 전신상도 있다. 이곳에는 또한 로마시대 금제 용기와 장식품도 보인다. 이들 장식에서 사자와 독수리, 꽃과 당초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처럼 유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설명을 붙이지 않아 로마시대를 개관하고 학술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로마시대 역사와 문화유산을 보는 데 만족해야 한다.
튀르키에 황제의 초상과 장신구 구경하는 재미
▲ 메흐메트 1세 ⓒ 이상기
오스만 튀르키에는 14세기에서 20세기까지 튀르키에를 중심으로 동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지배했던 대제국이다. 1354년 오스만 1세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나라를 세운 후, 1453년 술탄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거대제국이 되었다. 술레이만 1세가 통치하던 1520년에서 1566년까지 전성기를 이뤘다. 서쪽으로 헝가리와 세르비아까지, 동북쪽으로 흑해 연안까지, 남서쪽으로 이집트와 알제리까지 지배했다. 오스만 튀르키에는 500년 이상 지중해 동부와 흑해 연안을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지배했다.
이곳 박물관에서는 메흐메트 1세의 초상과 유물을 만날 수 있었다. 메흐메트 1세는 1413년부터 1421년까지 오스만 튀르키에를 통치하면서 아나톨리아 지역의 지배권을 확보하고, 유럽으로까지 영토를 넓힌 황제로 알려져 있다. 1415년 왈라키아 지역을 정복했으나, 1416년 갈리폴리 해전에서 베네치아에 패배해 지중해의 제해권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초상과 동판화를 보니 그는 콧수염을 기른 퉁퉁한 모습이어서 착하고 유순하게 보인다. 황제를 상장하는 투그라(Tughra)가 있는데, 캘리그라피 형식으로 만든 서장(書章)이다. 그리고 무기 갑옷와 방패 장신구 같은 당시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 오스만 튀르키에 갑옷 투구 그리고 무기 ⓒ 이상기
그 외 타일 카펫 의류, 책상과 의자 같은 생활용품도 보인다. 이들에 새겨진 문양은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다. 그것은 우상숭배를 금했던 이슬람 사상과 관련이 있다. 이곳에 전시된 유물은 1급은 아닌 듯하다. 그림이나 장신구의 수준이 아주 높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 유물을 통해 오스만 튀르키에의 정치와 문화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전성기시대 황제인 술탄 메흐메트 2세와 술레이만 1세의 유물을 보려면 톱카프 궁전과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으로 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는 튀르키에 공화국 관련 전시물이 있다. 튀르키에 공화국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튀르키에 제국이 멸망하면서 생겨났다. 이곳에는 공화국의 역사를 설명하고 이것을 뒷받침하는 그림들이 걸려 있다. 튀르키에 공화국은 1923년 10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에 의해 선포되었다. 그는 튀르키에의 개혁과 현대화에 주력했고,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했다. 그는 계급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외쳤고, 산업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튀르키에는 제2차세계대전 때도 중립을 지키며 국가의 정치적 위상과 경제적 생산력을 높여나갔다. 1952년에는 나토(NATO)에 가입하면서 서방진영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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