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의사가 본 이재명 대표 서울대 병원 전원 논란
[주장] 지방 의료가 마주한 편견 보여준 사건... '지역 의료 위기' 개선할 수 있는 계기 삼아야
이 글을 쓴 류옥하다 기자는 대학 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 부산 방문 일정 중 피습 당한 이재명 대표 ⓒ 연합뉴스
1월 2일. 대퇴골 골절 환자의 수술방 안이 웅성거렸다.
'[속보] 이재명 대표, 부산 방문 중 피습'
이재명 대표에게 최고의 치료, 최선의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 것에 백 번 동감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이러할진대, 지도자를 위하는 공당의 입장이나, 아버지·남편을 생각하는 가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렇기에 사건 초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 대표 측이 서울행을 택한 것 또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대표의 병세가 회복된 지금, 개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공인'이기에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왜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해야만 했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나 그가 평소 '지방의료 활성화'를 주장하던 정치인이기에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아시아 최고의 부산권역외상센터
▲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괴한한테 피습을 당해 후송되었던 부산대병원 외상센터응급실 앞에 일부 지지자와 시민들이 모여 있다. ⓒ 윤성효
기자가 다닌 의과대학은 부산대병원처럼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곳은 365일, 24시간 중증 외상 환자에 대해 병원 도착 즉시 응급수술을 진행하고, 최선의 중환자 의료를 제공한다. 칼에 맞아 오는 환자는 흔하고, 공사장에서의 추락이나, 건물 옥상에서의 자살시도, 교통사고 환자 모두 이곳으로 모였다.
어느 날에는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고로 다리 하나가 없이 도착했다. 교수님께 여쭈었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남은 다리 한 짝은 다음 구급차로 오고 있어'라고 덤덤히 말씀하셨다.
이런 중증 환자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다 보니 의료진 전반의 숙련도나 상황 대응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안정된 환자를 정해진 시간에 마취하고 수술하는 일반적인 의료인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영역이다.
국내 16개소의 권역외상센터 중 부산대는 2015년에 지정된 한국 최대, 아시아 최대의 외상센터다. 응급실에 딸려 있는 몇몇 센터들과 달리 13층의 독자 건물에 중환자실 50병상, 일반실 80병상, 수술실 6개, 응급실 12병상, 외상 전용 소생실 2개를 갖추고 있다. 의사만 42명, 간호사는 157명으로 웬만한 소규모 2차 병원 규모다.
울산 등 인근 공업지대에서 이송되는 중증 환자들도 많아 의료진의 숙련도 또한 매우 높다. 작년 환자 수는 1595명으로 매일 4명 이상의 중증 환자를 보았다. 단순한 경증 환자가 아닌, 팔다리가 하나씩 없거나, 장기 하나 이상은 부서지고 찢긴 환자들이 매일 4명이다.
반면 이재명 대표가 이송된 서울대병원 '중증외상 최종 치료센터'는 전담 전문의 6명, 병상 수 5개를 갖추고 있으며, 작년에 환자 235명을 진료했다. 여러 분야에서 서울대병원은 최고이지만, 중증외상 분야에서 '권역외상센터'가 아니고, 부산대와 비교했을 때 규모와 환자 수에도 차이가 크다.
서울대병원과 부산대병원의 엇갈린 주장
▲ 이재명 대표 집도의 치료 경과 설명피습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수술을 진행한 서울대병원 민승기 이식혈관외과 과장이 4일 오전 서울 대학로 의학연구혁신센터 서성환연구홀에서 치료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이재명 대표 이송과 관련해서는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다. 서울대병원 측은 "목정맥과 목동맥의 재건술은 난도가 높은 수술이라 수술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워 부산대 요청을 받아들여 수술을 진행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산대 측은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를 찾은 외상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 간 사례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재명 대표 가족과 민주당이 원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했다고 말했다.
두 병원의 진술이 엇갈린다. 다만 의료계의 상식으로 볼 때 목정맥 재건술은 서울대가 설명하는 것만큼의 높은 난이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부산대병원의 명성과 시설, 의료진의 숙련도를 생각했을 때, 충분히 후자의 주장에 신뢰가 간다.
그렇다면 '요청'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보호자가 원하고, 환자가 위급하지 않다면 병원은 환자의 이송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이 경우 병원에서는 '전원 의뢰서'를 발급하고, 전원 보낼 곳에 연락을 취해 가능 여부를 확인한다.
지방 의료가 마주한 '편견'
기자는 올해 상반기에는 흔히 서울의 '빅 5'라 불리는 3차 의료기관에 근무했고, 하반기에는 지방 광역시의 2차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렇기에 서울과 지방의 의료를 있는 그대로 비교할 수 있었다.
지방의 의료는 일부 차이가 있지만 그 규모나 장비, 의료진의 숙련도가 서울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최신 로봇 장비를 갖추고, 단일공 수술이나 스텐트 시술 등을 수행하는 등 의료진의 실력이나 병원의 시스템이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 비견될 정도다.
그러나 오늘도 환자들은 수 시간 KTX, SRT,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향한다. 상반기 서울의 빅 5 병원에는 제주도, 울릉도, 부산에서 원정 치료를 온 각지의 환자들을 볼 수 있었다. 소수의 난치병 환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지방에서 같은 기기로 검사하고, 동일한 약제로 치료할 수 있는 환자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저 '서울이 더 잘 하겠지'라는 막연한 편견에 기대어 서울로 향한다. 하반기 지방 병원에서는 지방이라는 이유로 편견에 시달리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고는 했다. CT, MRI 검사가 이상하다며 서울에서 의견을 들어보고 다시 지방에 내려와 수술하겠다는 환자, 어느 의사도 살리지 못했을 심정지 환자가 사망했을 때 서울이었으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보호자까지 있었다. 어쩌면 지방 의료의 문제는 장비, 숙련도, 인력이 아니라 지방을 향한 뿌리 깊은 '편견'인지도 모른다.
진짜 지방 의료를 살릴 수 있는 길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오전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흉기에 피습 당한 뒤 부산대학교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마친 뒤 헬기를 이용해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2024.1.2 ⓒ 연합뉴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의대 증원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지역의료 위기'를 이유로 의사 수를 늘리면 '낙수효과'처럼 지방으로, 필수의료로 의사들이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의료의 문제는 공급자(의사)에 있지 않다. 한국의 도-농 의료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고, 군 단위에서도 전문의 진료를 대기 없이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 지방 대학병원은 미국이나 유럽 기준으로도 최상급의 병원 인프라와 의료진,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대부분 수 시간 이내로 접근 가능하다.
그러나 막연한 환상을 가진 채 모두가 서울로 향하는 현실에서, 지방 의료는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린다. 수도권 '빅 5' 병원이 블랙홀처럼 환자를 빨아들인다면, 지방으로 '낙수'된 의사는 누구를 치료하라는 말인가. 새로 설립된다 해도 지방 의대와 공공 의대는 어떻게 의대생과 전공의를 트레이닝 할 수 있을까.
이번 이재명 대표의 서울행은 그러한 '막연한 편견'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외상을 입은 상태에서 아시아 최고의 권역외상센터를 놔두고 '최선의 치료'를 위해 '서울'로 향한 것은 지방의료 활성화를 외치던 이 대표의 정책 방향과 상반된다. 그렇기에 부산을 비롯한 지방 사람들이 느낀 배신감은 더 컸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정치인들이 정쟁이 아닌 진정 국민 건강과 지역 의료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중증 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환자군에서 1차 의원-2차 병원-3차 대학병원급으로 연결되는 의료전달체계를 복원해야 한다. 본인 거주지에서 의료를 완결할 수 있는 유인책이나 제도적 장치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근본적 해결책이야말로 진정 지방 의료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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