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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 필요한 건 '시간'... 소설 읽다 깨달은 저출산 해법

돌봄 받지 못하고 지내던 아동이 '좋은 어른'을 알아가는 책 <맡겨진 소녀>

등록|2024.01.10 13:30 수정|2024.01.10 13:31
1981년, 아일랜드의 어느 농촌 마을에 '말없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말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말할 기회가 없었거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으리라. 네 아이를 낳고 키우던 소녀의 엄마가 다섯째를 임신했다. 아이들 돌보랴 농사일하랴 늘 분주했던, 아이들과 보낼 시간도 잘 내지 못하던 엄마다.

그렇다고 소녀의 아버지가 가정적이지도 않다. 요샛말로 '독박육아'다. 집안에 떨어진 채소 줄기 하나 치울 줄 모르는 남자다. 아이들 있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자라는 아이들 손 한 번 따뜻이 잡아줄 줄 모르는 사람이다. 가정 형편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그러던 중 여름 몇 달 먼 친척 집에 소녀를 맡기기로 한다. 양육의 부담을 전가한 것이다.

친척 집으로 오기 전, 소녀는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여, 소녀의 부모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 두 부부 상황이 어떤지 느껴지리라.
 
얼마 동안 맡아달라고 하지?
원하는 만큼 데리고 있으라고 하면 안 되나?
그렇게 말하면 돼? 아빠가 말했다.
당신 하고 싶은 대로 말해. 어차피 늘 그러잖아.
 

▲ 소설 속 소녀는 만난 적 없는 낯선 친척의 집에 맡겨진다. 영화 장면 중 일부분. (출판사 북트레일러) ⓒ 다산책방


가정 내에서 아무런 의견도 내지 못하는 소녀는 그저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할 뿐이다. 낯선 곳으로 팽개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겠지만 어떤 저항도 일어나지 않았다. 묵묵히 따를 뿐이다.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들. 그런데 친척 집에 맡겨진 소녀는, 그곳이 자신이 자라던 환경과 너무나 다름을 느낀다. 친척 부부의 다정한 모습과 환대를 받으며 평안과 따뜻한 정을 느낀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운다.

소녀는 '여기에는 여유가, 생각할 시간이 있다. 어쩌면 여윳돈도 있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한다. 어느 이웃 여자는 타인의 아픈 상처를 수다스럽게 얘기하기도 한다. 소녀는 사람들 사이에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깨닫는다. 어른들은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말이 없다고 하여 생각이 없는 게 아니다. 말이 없다고 느낌까지 없는 것도 아니다. 생각이나 느낌은 '말 없음'으로 온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다.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책 앞표지 ⓒ 다산북스


위 이야기는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이다. 책의 곳곳에 숨어 있는 여운은 직접 읽어봐야만 안다. 이 소설은 영화화되어, 2023년 우리나라 극장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명확히 해두자. 원작의 책 제목은 <맡겨진 소녀>(영어로는 'Foster')다. 영화 제목은 <말없는 소녀>(영어로는 'The Quiet Girl'). 말없는 소녀가 먼 친척집에 맡겨진다는 줄거리의 얘기다.

이 글에서 나는 아이의 성장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아이의 성장에 무엇이 필요한지 물질인지 사랑인지. 물론 생존하기 위해,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더,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너무나 지쳐가는 현대인들이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짚어보려 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출생률이 감소하고 있다고 하여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OECD 국가 중, 최저라고 한다. 최근 초등학교 입학률이 급감하였다고 한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갖가지 정책을 쏟아 놓는다. 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준다고 한다. 늘봄학교를 늘린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를 위하여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아이를 돌봐준다고 한다. 이럴 거면 차라리 초등학교에 기숙사를 짓고 다 키워주겠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싶다.

미래에 대한 희망 없는 세상... 돈 준다고 아이 낳을까

최근 뉴스는 낳기만 하면 돈을 준다, 키워주겠다는 식의 메시지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과연 그런 정책이 실제 효과가 있을까. 그런 정책을 한다고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까.

요즘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늘 그런 얘길 듣고는 한다. 나 하나 사는 것도 너무 힘든데, 아이까지 낳아서 키울 형편은 못 된다고. 미래가 암울한데 자식까지 낳아서 내 자식이 암울한 미래를 살게 만들지는 않겠다고. 한마디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은 지 오래되었다는 거다.

희망을 잃은 사회다. 꿈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아웅다웅 살고 있다. 출생률을 높이려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젊은 사람들은 말한다. 나 하나 사는 것도 너무 힘든데, 아이까지는 못 키우겠다고. 출생률을 높이려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픽사베이

  10살도 채 안 된 아이들이 가정이 아닌 집 밖에서 하루 온종일을 보낸다고 생각해 보라. 낯선 곳 낯선 사람들, 그 속의 불안함, 이런 상황이 아이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없겠는가. 그러니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이라도 부모가 가정에서 육아를 할 수 있도록 부모들의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건 어떨까(한국인은 여전히 너무 많이 일한다. OECD 중 최고로 긴 노동시간을 자랑한다). 아니면 부모 중 한 명만이라도 안정적으로 유급 육아휴직을 받고 회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내용이다. 어느 과학자가 원숭이를 상대로 한 가지 실험을 하였다. 그 원숭이는 매우 굶주린 상태였다. 한쪽에는 차가운 철망 사이에 원숭이가 좋아할 충분한 먹이를 놓아주었다. 다른 한쪽에는 먹이는 없고 대신 보드라운 털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굶주린 원숭이는 어디를 선택할 것 같은가. 당연히 굶주렸으니 먹이가 있는 쪽으로 갈 것 같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원숭이는 보드라운 털이 있는 공간에 머물러 몸을 뉘였다는 실험이었다.

아이가 가장 먼저 접하는 사회는 '가정'이다. 삶에 필요한 것을 가장 먼저 배우는 곳이 가정이고, 가장 먼저 사랑을 느끼는 곳이 가정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절대빈곤은 벗어났다. 물질적인 풍요보다 우선인 것이 평안과 사랑임을 되새겨야 한다. 평안과 배려 사랑, 이것을 다른 곳에서 취하려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가정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러면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닐까.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 그래서 아이를 집 밖에서 머물게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부모들에게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돌려줘야 한다. 부모가 돈 벌고 일하느라고 양육까지 지치게 해서는 안 된다. 돈 버느라고 부모의 에너지가 소진되어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랑까지 메마르게 해서는 안 된다. 단기적인 해법이 아니라 길고 멀게 봐야 할 때다.

시간이 없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순간'이다. 그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스토리에 중복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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