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것으로, 이 교수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말]
▲ 윤석열 대통령, '국민이 바라는 주택' 민생토론회 발언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을 이념에서 해방시키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그동안의 부동산정책이 과연 무슨 이념의 속박을 받았기에 이에서 해방시킨다고 선언을 했는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더군요. 워낙 이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무슨 일이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면 모두 이념 탓으로 돌리는 나쁜 버릇 때문이라고 짐작하기는 합니다만.
재개발, 재건축 관련 규제를 모두 풀어버리겠다고 선언하는 대목에서는 마치 혁명가와도 같은 비장함이 느껴지더군요. 모든 규제를 한꺼번에 풀었을 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혼란과 부작용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요. 원래 심사숙고나 신중함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라 크게 놀랄 것도 없지만, 이렇게 중요한 일을 제대로 된 여론 수렴조차 없이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구절입니다.
"다주택자를 집값을 올리는 부도덕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징벌적 과세를 해온 건 정말 잘못된 것이다."
우선 지적해야 할 점은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가 과연 그들을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보아서 그런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예를 들어 술, 담배, 휘발유 등에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것이 그것들을 소비하는 사람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보아서 그런 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게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들의 소비를 자발적으로 줄이게 유도하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것입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도 똑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다주택을 소유하는 행위를 자발적으로 줄이게 유도하려는 이유 때문에 중과세를 하는 것뿐입니다. 다주택자가 미워서 중과세를 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를 가리켜 다주택자를 부도덕한 사람 취급한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악의적인 왜곡, 확대해석입니다. 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얼토당토 않은 말이 나왔다는 게 무척 불행한 일입니다.
▲ ⓒ 최주혜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 중 나를 더욱 더 경악하게 만든 것은 다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다주택자들에 대한) 징벌적 과세의 피해는 결국 서민이 입게 된다. 우리는 중과세를 철폐해 서민들이, 임차인들이 혜택을 입도록 하겠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의 피해가 서민에게 돌아가고, 이를 철폐하면 서민들이 혜택을 입는다? 난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금 딴 세상에 와있는 건 아닌가?"라는 착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정상적인 세상이라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을 테니까요. 대통령과 정부, 여당 인사들만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의 폐지가 서민들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인가 봅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의 폐지가 서민들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엉터리 논리는 박근혜 정부가 '임대주택사업자 등록제'라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도입했을 때 내세운 엉터리 논리에 근거하고 있는 게 뻔합니다. 즉 다주택자가 많이 나와야 임대주택 공급이 늘어나 전월세 가격이 내려간다는 어불성설의 논리 말입니다.
다주택자 많아야 임대주택 공급 늘어난단 황당한 논리
▲ 윤석열 대통령, 1기 신도시 노후 아파트 단지 현장점검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백송마을 5단지를 방문해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입주자 대표,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대표 등 주민들과 함께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그동안 내가 입이 부르트도록 강조해온 바 있지만, 다주택자가 많이 나와야 임대주택의 공급이 많아진다는 논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입니다. 다주택자가 몇 명이든 간에 단기에서 우리 사회 임대주택의 총 공급량은 일정한 수준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다주택자가 많아진다고 해서 임대주택의 공급량이 단 한 채라도 늘어날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서 내가 '단기적으로'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장기에서는 임대주택의 공급량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택들이 새로 지어져 임대주택으로 활용되면 임대주택 공급량이 늘어날 테니까요. 그러나 단기에서는 임대주택의 총 공급량(S)이 전체 주택의 수(A)에서 전체 주택보유자의 수(B)를 뺀 것과 똑같기 때문에 다주택자의 수와 관련없이 일정한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즉 단기에서는 언제나 S = A - B 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주택의 총 숫자가 1천만 채이고, 주택보유자의 숫자가 8백만 명이라고 합시다. 다주택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주택보유자의 숫자는 주택의 총 숫자보다 당연히 더 적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주택의 총 공급량은 2백만 채로 고정되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주택을 보유한 사람 8백만 명이 각자 자신이 소유한 주택에서 살면 2백만 채가 남는 셈 아닙니까? 이 2백만 채는 다주택자가 소유하지만 자신이 살지는 않는 주택을 뜻하고 따라서 임대로 내놓게 되지요. 다주택자에게 세금을 중과하든, 아니면 거꾸로 다주택자에게 세금을 한푼도 매기지 않는 혜택을 주든 임대주택의 공급량은 이 2백만 채에서 변하지 않는 겁니다.
다주택자가 중과세에 분개해 임대주택 공급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가능하기는 하지요. 주택 세 채 가진 사람이 임대로 주던 두 채를 시장에서 거둬들이고 빈 집으로 놓아두기로 결정하면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미친 사람이 자기 집을 빈 집으로 놓아둬 임대료 수입을 스스로 포기한답니까?
윤 대통령이 말한 대로 이렇게 주택 세 채를 가진 사람에게 매겨지던 무거운 세금을 완전히 철폐한다 해도 그가 공급하는 임대주택의 양은 여전히 두 채로 변함이 없습니다. 이 사람의 임대주택 공급량은 세금이 아무리 경천동지할 정도로 바뀐다 해도 여전히 두 채로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의 폐지가 임차인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윤 대통령의 논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엉터리일 뿐입니다.
부동산 투기 조장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서민
▲ 서울 여의도 63아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아파트 모습 ⓒ 연합뉴스
그동안 국민의힘이 집권할 때마다 써왔던 부동산투기 조장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서민들입니다. 그들이 근시안적으로 써온 부동산투기 조장정책은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산산조각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몇 십 년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돈을 모아 보았자 조그만 집조차 살 수 없는 상황에서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는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주택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니까 전월세 가격도 따라서 미친 듯 뛰어 오르는 것 아닙니까? 다주택자의 존재가 주택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는 것은 내일 동쪽 하늘에서 해가 뜬다는 것과 똑같이 분명한 일입니다. 다주택자를 비호해 주는 게 서민에게 이득이 된다는 건 도대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허구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출산율 올려 보겠다고 출산장려금 주고 육아휴직 주어 보았자 별 무 효과인 이유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앞서 젊은이들이 결혼하기를 미루거나 아예 단념해 버리는 주된 이유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단칸방 하나조차 마련할 수 없는 현실에서 누가 선뜻 결혼하려 할 것이며 감히 아기를 낳으려 할 것입니까?
한 마디로 우리 사회의 천문학적인 주택 가격은 거의 모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입니다. 이런데도 주택 가격 띄우지 못해 안달인 윤석열 정부를 보면서 이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 정부인지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유한 다주택자에게 아낌없이 감세 혜택을 퍼부어 주겠다고 팔 걷고 나선 이 정부를 과연 '서민의 정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서 드러난 이 정부의 실체는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정부'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모두가 잘사는 사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주거공간의 안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요즈음과 같이 천문학적으로 높은 주택가격하에서 주거공간의 안정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일 뿐이고요. 지금처럼 주택 투자가 재테크의 수단으로 매력적인 상황에서 주택 가격의 안정이 이루어질 리 없습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는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주택투자의 매력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취해야 할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나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한 가지 점에서 국민적 합의에 이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주거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할 주택을 재테그의 수단에서 제외시키자는 합의입니다. 이는 투자 수단으로서 주택의 매력을 크게 줄여야 한다는 뜻이고, 그렇게 하려면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가 유일한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두 채, 세 채 더 사려들면 주택 가격의 폭등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필연이 되지 않겠습니까? 집 없는 사람들의 설움은 좌절과 원망으로 바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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