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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만 5천보... 아홉 살 아이를 걷게 만든 일등공신

[아들 손잡고 세계여행] 프랑스에서 스페인 산티아고로

등록|2024.01.17 12:04 수정|2024.01.17 12:04
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 지난 기사 '아홉 살 아들이 딱 하나, 들어주기 어려운 소원을 빌었다'에서 이어집니다.

유럽의 심장 '브뤼셀'에서 느낀 자유분방함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그리고 룩셈부르크까지 여러 나라에 둘러싸인 벨기에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는 국가이다. 공식 언어도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독일어로 3개나 된다. 그리고 수도인 브뤼셀은 유럽연합의 본부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가 있어, '유럽의 심장'으로 불린다.

아들과 함께 '유럽의 심장' 브뤼셀에 도착해 가장 유명한 광장인 '그랑플라스'로 갔다. 그랑플라스는 12세기부터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직사각형의 큰 광장이다.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말한 이곳은 아름다운 건물들이 광장 주변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광장 남쪽에 있는 브뤼셀 시청사 건물은 역사가 500년이 넘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유명한 대성당 못지않게 아름답다. 아들과 함께 광장 곳곳을 돌아본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문화재도 나무가 아닌 단단한 석재로 만들어졌으면, 이렇게 오래 남아있는 문화재가 많이 있었을 텐데….'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브뤼셀의 상징으로 그랑플라스 근처에 있다 ⓒ 오영식


다음은 브뤼셀의 상징이자 아들도 알고 있는 '오줌싸개 동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태풍아, 이게 오줌싸개 동상이야. 생각보다 작지?"
"응, 아빠. 어린이인 줄 알았는데, 아기 같아. 근데 왜 머리에 뭘 쓴 거야?"
"응, 이 동상이 벨기에의 상징이라서 크리스마스나 특별한 날에는 의미에 맞는 옷을 입혀놓는데. 지금은 아마 소방관의 날인가 봐."


아들과 동상을 보고 다시 그랑플라스 광장에 있는 카페에서 감자튀김과 와플을 먹었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 카페 안에서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광장을 보며 먹는 벨기에 감자튀김과 와플은 정말로 맛있었다.

아들과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신호등이 설치된 건널목에서 사람들이 빨간 신호에도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모든 사람이 여기저기서 무단횡단을 했다.

아들과 나는 러시아부터 벨기에까지 오는 동안 신호등을 무시하고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인구와 차량이 많지 않은 시베리아에서도 신호등의 신호를 무시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는데... 벨기에의 수도 한복판에서 사람들 대부분이 무단횡단을 하는 게 오히려 신기해 보였다. 그리고 유명한 곳인데도 북유럽과 스위스, 독일과는 달리 거리는 쓰레기가 넘쳐나 지저분했다. 서둘러 이동하며 아들에게 말했다.

"태풍아, 여기 벨기에는 별명이 '유럽의 심장'이래. 유럽에서 중요한 기관이 많이 설치되어 있고, 다양한 나라 사람이 와서 살고 있어서 언어도 여러 개를 쓴대."

브뤼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차를 운전해 프랑스 국경에 가까워질 때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단횡단을 하고 지저분한 거리가 꼭 벨기에와 브뤼셀 시민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모여있는 도시인 만큼 넘쳐나는 관광객 문제일 수도 있고, 거리의 청결유지 보다 청소노동자의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노동자 친화 도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에펠탑을 이긴 '솜사탕'

우리는 브뤼셀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거리인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여행 전 지인 중 한 명이 '파리에서는 절대 운전하지 마. 차 몰고 시내로 가면 안 돼! 운전하기 너무 힘들어'라는 말을 해주었다. 파리를 여행해 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직접 운전을 해본 적이 없어 긴장하며 차를 몰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교통지옥으로 악명높은 파리에 들어왔다. 시내로 들어오자 거리는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여기저기 자동차 경적과 구급차,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로 시끄러웠고, 여기저기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우리 숙소는 도시 중심부인 에펠탑에서 북쪽으로 10km쯤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도착 10km 정도를 남겨 두고는 도착 예상 시간이 점점 더 늦어졌다. 체크인하기 전에 교통사고라도 나면 일정이 꼬여버리기 때문에 긴장한 채 앞 차량과 교통신호에 온 신경을 집중한 채 숙소로 향했다.
  

프랑스 에펠탑파리의 상징으로 높이가 300m이다.(1889년, 귀스타프 에펠) ⓒ 오영식


다음날 우리는 제일 먼저 에펠탑을 볼 수 있는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갔다.

"우와~ 아빠, 저게 에펠탑이야? 진짜 보드게임에서 보던 거랑 똑같이 생겼네~ 신기하다."
"그래, 저게 높이가 300m야. 가까이서 보면 훨씬 더 커."


우리는 트로카데로 정원을 지나 센강 위로 놓인 이에나 다리에서 에펠탑을 보며 핫도그를 먹었다.

"태풍아, 우리 이거 먹고 에펠탑 올라갈 거야."
"저기를 올라간다고? 나 고소공포증 있는데?"
"괜찮아. 아빠랑 같이 가는데, 뭘."


조금 무서워하는 아들을 달래 계단을 걸어서 에펠탑에 올라갔다. 300여 개의 계단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아들도 씩씩하게 잘 걸어서 도착했다. 하지만 아들의 표정은 금방 불평을 쏟아낼 것 같아 투덜대기 전에 마카롱과 시원한 음료수를 사줬다.

역시나 달콤한 마카롱 한입에 아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만족해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루브르 박물관과 노트르담 대성당을 둘러봤다. 이미 1만 보를 넘게 걸어 지쳐있던 아들은 입이 삐쭉 나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약 60만 점을 소장 중이며,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 이다. ⓒ 오영식


여행하며 아들의 건강이나 여러 가지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여행이 짧아질 수도 있어 나는 아들의 컨디션이 좋은 날은 하나라도 더 보여주자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특히 파리 같은 도시는 볼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이었다.

평소에 운동장에서 놀 때는 몇 시간을 뛰어다녀도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아들이었다. 아들은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어서 투정을 부린다기보다는 '짧은 시간의 백화점 쇼핑에도 지치는 남자들'처럼, 흥미가 없는 데를 자꾸 돌아다녀서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조금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맛있는 간식을 먹여 달래기로 했다.
 

파리의 에펠탑과 석양튈르리 정원(Tuileries)의 대관람차에서 보는 파리 전경 ⓒ 오영식


그리고 나는 '태풍아, 저기 성당이 엄청 유명하고 아름다워'가 아니라 이렇게 말했다.

"태풍아, 저기 가면 엄청 맛있는 솜사탕이 있어."

그러면 아들은 힐끔거리며 말했다.

"진짜야? 알았어~"

그렇게 에펠탑에 오르기 전에는 핫도그, 노트르담 성당에 가기 전에는 마카롱을 먹이고, 저녁놀로 물든 파리 시내를 볼 수 있는 대관람차를 타기 전에는 솜사탕을 먹였다. 그리고 파리의 수많은 간식 중에서도 아들을 15,000보가 넘게 걸을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은 단연 솜사탕이었다.

'태풍아,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중엔 기억에 남지 않을까? 아빠 이해해줘~.'
 

에펠탑 보다 솜사탕 아들에게 파리는 솜사탕이다 ⓒ 오영식


아빠의 가슴을 울린 아들의 한 마디

우린 프랑스에서 나와 스페인으로 이동했다. 스페인 북부 해안 도시 산탄데르를 지나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점으로 유명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오면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다. 산티아고로 떠나라.'

약 1천 년 전 교황의 이 한 마디에 세계적인 순례길이 되었고, 산티아고 대성당은 그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의 종착점이 되었다. 800km의 순례길을 걷진 않았지만, 러시아에서부터 약 2만 2천km를 운전해서 도착한 나 역시 성당 광장에 들어서자 무언가 말 못 할 감정이 솟구쳤다.

자세한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지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은 넓은 광장과 높게 솟은 첨탑에서 아우라가 느껴졌다.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점으로 유명하다 ⓒ 오영식


'나도 나중에 꼭 아들과 순례길을 걷고 이 광장 바닥에 누워 첨탑과 하늘을 바라보겠노라!'라고 다짐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평소 아들은 저녁 먹고 일과를 마친 후 아빠와 함께 노는 시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항상 취침 시간은 10시로 정해져 있어서 아들은 저녁을 먹고 1분이라도 더 아빠와 놀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할 정도이다. 그 정도로 아들에게는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 바로 저녁 8시에서 10시 사이 '아빠랑 노는 시간'이다.

그런데 산티아고 대성당을 보고 온 날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샤워하고 나온 아빠를 보더니 아들이 말했다.

"어? 아빠, 머리가 너무 하얀데?"
"어…. 바빠서 염색한 지 오래돼서 그래. 매일 밥하고 운전하고 바쁘니까 시간이 없어서."

"아빠, 지금 빨리 염색해. 그냥 나 혼자 놀고 있을게."
"아빠랑 게임 하기로 했잖아. 이제 조금 있으면 자야 하는데."

"괜찮아. 오늘은 나 혼자 놀게. 아빠 빨리 염색해."
"왜? 머리가 하얘서 보기 싫어?"

"아빠가 사람은 머리가 하얘져서 흰머리만 남으면 하늘나라에 가는 거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얼른 염색해."
"아…. 그거? 아직은 검은 머리 많이 있어. 걱정하지 마."

"아냐, 그래도 빨리 염색해."


1년 전, 아들이 8살일 때 아빠가 염색하는 걸 보며 뭐 하는 거냐고 묻길래 이렇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머리가 하얘져. 그래서 검은 머리가 다 변해서 흰머리만 남으면 하늘나라에 가는 거야. 아빠도 나중엔 흰머리만 남고 하늘나라에 가겠지.'

아들은 오랜만에 모자를 벗은 아빠의 머리를 보더니 흰머리가 마음에 걸렸는가 보다. 나는 아들의 순진한 말에 귀여워 웃었지만,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는 아빠와 함께 오래 있고 싶어 하는 아들의 진심에 눈물이 났다.

"태풍아, 걱정하지 마. 아빠는 오래오래 살아서 손자랑 여기에 다시 올 거야."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여행 기간 내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작성하였으나, 사건 등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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