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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 어떻게 아셨어요?" 유족의 전화

[지역 노동안전 네비게이션] 인천 중대재해지도를 만들며 알게 된 것들

등록|2024.01.17 09:55 수정|2024.01.19 09:06
인천 중대재해지도, 어떻게 만들었나요?

지난 10월에만 인천에서 7건의 중대재해가 연달아 발생했습니다. 사고가 이렇게 많이 난다는 걸, 한눈에 볼 수 있는 형태로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인천 중대재해대응사업단 내 다른 동지가 정보축적용으로 자료를 이미 만들고 있었어요. 저는 홍보용으로 사고업종, 장소, 경위만을 담아 구글 지도에 담았습니다. 건설은 빨간색, 제조는 파란색, 기타 업종은 보라색으로 표기했습니다.

노동부 중대재해 사이렌이나 언론 보도를 참고하여 중대재해 발생 장소를 알 수 있는 곳은 지도에 표기했습니다. 장소 특정이 어려운 곳은 불명으로 하여, 그 지역의 공공기관이나 공공장소, 대표 도로 등에 표시했습니다. 여러 법적 분쟁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고, 무엇보다 "홍보", "널리 알리자"에 초점을 맞춰 회사명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관련 자료를 발표할 때는 회사명은 무조건 공개되어야 합니다.

2023년 12월 18일 현재, '2023 인천 중대재해지도'에는 2023년 인천에서 발생한 38건의 중대재해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건설업이 23건, 제조업이 12건, 기타 3건입니다. 건설업 23건 중 추락이 17건으로 절대다수였습니다. 제조업의 경우 끼임, 맞음, 부딪힘(지게차) 순이었습니다. 인천은 물류센터도 많다 보니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사고들도 있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고는 21건,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사고는 17건이었습니다.
 

▲ 2023년 인천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사건과 현장의 위치를 민주노총 인천본부가 구글 지도에 취합하여 만든 '2023 인천중대재해지도'의 모습. ⓒ 민주노총 인천본부


지도에 표기하고 나니 신도시 쪽은 모두 빨간색, 산업단지(제조업)는 모두 파란색으로 지역에 따라 확연히 구분되었습니다. 건설업 중대재해의 경우 영종신도시 5건, 송도신도시 4건, 검단신도시 3건이었습니다. 제조업의 경우 남동국가산업단지에서 4건(추정), 서구산업단지 등에서 6건이었습니다. 그나마 대기업에선 사고가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한화, 롯데, 포스코, 현대건설, 대우건설, SGC이테크건설 등 대기업 공사 현장에서도 어김없이 사고는 발생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언론에서 이를 다루었습니다. 조회 수도 2000회에 육박했습니다. 의외였습니다. 지도를 접한 분마다 중대재해가 이렇게 많았는지 놀라셨고, 한눈에 들어오고 지역별 사고 형태도 알게 된 점이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에 올리고 난 후, 전북본부에서도 전북지역 중대재해지도를 만들어 공유해 주었습니다. 저 또한 전북에 이렇게 사고가 잦았는지 놀랐고, 전북의 산업 형태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고 어떻게 아시게 된 거예요?"

언론에 보도된 후 2주 정도 지났을 때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모월 모일 사고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된 건지 꼬치꼬치 물었어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명예훼손인가 하고 조심스럽게 "실례지만 어디세요?"라고 물으니 "저 그 사고 돌아가신 분 자녀예요"라고 하셨습니다.

회사에서 사고 경위도 알려주지 않고, 사과 한마디 없이 보상금 얘기만 했나 봅니다. 그동안 그 회사에서 사고가 많았지만 돈으로 다 해결했다는 말만 건너 들었지, 가족이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억울해서 관련 법도 찾아보고 사고 현장도 자주 갔다가 언론에 중대재해지도가 나오는 걸 보고 알게 된 경위가 궁금하여 전화하셨다고 합니다. 내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면 해당 사업장에도 소급 적용이 되는지도 물어보셨습니다. 소급은 안 되고, 지금도 정부에서 더 유예하려 한다고 알려드렸습니다.

이처럼 접촉하기 어려웠던 유가족분이 먼저 연락을 주고, 상담할 수 있었던 게 성과였습니다. 지금도 인천에서 난 화재로 인해 돌아가신 가족분에게서 혹여나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해자가 투병하실 때 가족이 경찰에 진정서를 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회사가 워낙 대기업이고 사고 내용만 보면 재해자 책임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커서, 유의해서 보고 있습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안전하게 작업할 권리 보장을 위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은 언론에 보도도 되니, 인터넷 검색이나 조합원 수소문 등을 통해 어떻게든 직접 찾아가 봅니다. 찾아가더라도 현장 관리자를 만나기 어려울뿐더러, 사고에 대해 제대로 설명조차 해주지 않습니다. 가족은 더욱더 만나기 어렵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미적용 사업장은 사고가 나더라도 어디서 어떻게 난 건지 정말 알 방법이 없습니다. 겨우겨우 수소문하여 찾아간 사업장이 있었습니다. 지게차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한 곳이었습니다. 문전박대는 기본이었지만 더욱 안타까운 건, 사고가 나고 며칠 후였는데도 여전히 지게차 안전 수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장의 모습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경위 파악이나 유가족 상담, 이후 대응 등을 할 수 있을 테지만, 사고가 난 곳들 모두 노동조합이 없었습니다. 작은 사업장은 특히 더 없습니다. 사고가 나면 실제 그 현장에서 근무했던 노동자, 노동안전보건단체, 동 업종 노동조합에서 사고 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번은 데크 해체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개구부로 추락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현장에 방문했을 때 "개구부 덮개 덮었다, 목격자는 없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공정 작업을 하는 건설노조 동지들께 문의하니, "해체 작업에 몇 명이 들어가는데 목격자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이건 개구부 덮개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등 현장 작업자들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내용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칫 작업자 과실로만 몰고 갈 수 있는 상황에서, 현장 작업자들의 분석은 돌아가신 분들의 억울함도 풀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정부에서 회사 규모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회사명과 사고 경위를 즉각 자세히 공개해야 합니다. 이후 경과 및 조치도 명명백백히 공개해야 합니다. 재해자 및 동종 업종 노동자들의 알 권리도 보장해야 합니다. 모든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며칠 전, 인천에 비가 많이 왔습니다. 중대재해 현장에 방문했다가, 우중타설을 목격했습니다. 언론에서 다루면 그때뿐인가 봅니다. 그래도 이제는 우중타설이 잘못됐다는 걸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2024년에는 지도에 아무 표시가 없기를 희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유미 님은 인천 중대재해대응사업단에서 활동 중입니다. 이 기사는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4년 1월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 인천지역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고는 41건으로 글을 쓴 시점보다 3건이 더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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