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번개 같은 통증... "엄마, 나 오십견이래"
피할 수 없는 반백살 통과의례라지만 부디 짧게 왔다 가소서
1994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김지성의 사는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엄마, 나 오십견이래."
오십견 신입생
▲ 지천명의 신고식인가. 오십견에 걸리고 말았다. ⓒ elements.envato
여하튼, 평소 유연한 편이라 자부했던 신체의 일부가 하루아침에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졌다. 문제의 한쪽 팔을 들어올리지도 못할 뿐더러, 옷소매 안에 가까스로 팔을 끼워넣을 때마다 몸이 뒤틀리고 꺾인 채로 하악질하는 좀비가 떠올랐다. 반려견이 흥분해서 앞으로 뛰쳐나갈 땐 목줄을 잡고 있던 아픈 팔에서 천둥번개 같은 통증이 내리쳤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얼어붙는 듯 했다.
말머리에 붙은 '오십'이란 숫자가 지레 거부감부터 키운 탓이리라. 다른 근육통들은 저마다 그럴싸하고 외우기 어려운 진단명으로만 불리는데, 왜 하필 놀림조같은 별칭이 붙었을까. 듣는 순간부터 우울해지게 말이다. 허나 아픈데 장사 있겠는가. 결국 주저했던 병원에 제 발로 들어가 재활치료 침대 위에 눕고 말았다.
의사로부터 환자의 70~80% 정도가 2~3년 이내에 반대편 어깨에도 오십견이 온다는 시즌 2 예고편을 들었다. 멀리서 도수치료 받는 오십견 환자들의 비명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느껴졌다. 무기력한 고통의 시간들이 또 한 차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고갯짓이 절로 나왔다.
오십견 신입생이 되고 보니 주변에 선배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산책 중에 만난 모리 어머니도 꽤 고생을 했었다며 미소를 띠셨다. 동네 카페 사장 할머님은 밤잠도 이룰 수 없는 통증에 차라리 아픈 팔이 사라져 주길 바랐을 정도였다고 했다.
카페 단골이자 병원을 소개해준 이웃동네 어머님도 가끔씩 찌릿한 저림이 찾아온다며 곧 불어닥칠 한파 소식에 옅은 몸부림부터 쳤다. 혹독했던 중년의 성장통을 이겨내고 사뿐히 머그잔을 들어 올리는 경량의 팔들이 마냥 부러워 보였다.
엄마의 생신날에 오십견을 주제로 핀 얘기꽃에서 소외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언니 역시 양쪽 어깨를 차례로 앓았단다. 출근 때 가까스로 올린 원피스 지퍼를 집에 돌아와 3시간 동안 내리지 못해 결국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다고 했다. 오빠는 벽에 살포시 붙어있던 파리를 잡으러 파리채로 스매싱을 날리다가 오십견에 걸렸단다. 왁자지껄한 대화 속으로 어느 순간 엄마의 나지막한 음성이 스며들어 왔다. "똥 닦기도 힘들었다."
엄마는 오십견을 앓으며 어떻게 손주 넷을 안고 업어 키우셨던 걸까. 새언니도 친정엄마의 굼뜬 동작이 늘 불만이었는데 뒤늦게 이유를 알아채고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고 했다. 제때 살펴드리지 못한 송구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 팔 돌리는 운동기구. 직접 해보니 절반까지 올리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 김지성
병원에서 가르쳐준 재활운동은 의외로 간단했다. 팔을 앞과 옆, 뒤로 들어올리거나 꺾기. 걸음마를 배우듯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오가는 산책길에서 워밍암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며 왜 딴청 피우듯 심드렁하게 팔을 돌리나 싶었는데, 직접 해보니 절반까지 올리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방바닥에 매트를 깔고 반듯이 누워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보았다. 근육이 찢어질듯 욱신거리고 전기가 찌릿찌릿 요동을 쳤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말려버린 등을 펴지도 못한 채 잠시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바라는 건 조기졸업
거울 앞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봤다. 겉보기엔 아직도 철이 덜 들어보이는 외관인데, 속은 이미 세월의 순리대로 흐르고 있었구나. 오십견은 피할 수 없는 반백살 통과의례인 것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에 앞서 착잡함이 차올랐다.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육체적 고통과 함께 우울한 상념들이 지천명의 시작을 제법 묵직하게 전해주는 듯했다.
통증이 아직 남아 있는데도 7주간의 물리치료 후, 의사는 진료를 종료했다. 집에서 스트레칭을 통해 경직된 근육을 이완시켜 나가면 서서히 자연 치유될 거란다. 미완치 상태에서 숙제를 안고 병원 밖을 나가보기는 처음이다.
"아무 생각 말고 그냥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돼. 오십견은 낫게 하는 것이 아니야. 달아나게 하는 거지."
평생 가족을 위해 엄살없이 하루하루 살아오신 엄마의 조언이다. 시간 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사라진다는 오십견 선배들의 말을 믿고 싶어서라도, 몸과 마음이 복잡스레 굳어지지 않도록 레미콘 돌리듯 성실히 움직여 봐야 겠다. 그럼 어느 날엔가, 그토록 바랐던 효자손 없이 시원하게 등 긁을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새해 목표는 소박하고도 절실한 '오십견 조기졸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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