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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촌동네에서는 진짜 눈꽃 빙수를 먹어요

등록|2024.01.19 09:16 수정|2024.01.19 09:16
캐나다는 원래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사는 서부, 비씨주는 사실 원래 그리 춥지 않다. 더구나 이번 겨울은 특히 유난히 따뜻했고 영하로 확 떨어지는 날씨가 없었다. 은근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해봤지만, 눈도 안 왔다.
 

▲ 부엌 문을 열고 내다본 풍경 ⓒ 김정아


그러다가 제대로 눈이 올 거라는 예보가 떴다. 남편은 기분 좋게 밤부터 눈을 기다렸다. 하지만 12시가 넘도록 눈은 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새벽부터 꾸준히 눈이 내린 모양인데 밖을 내다보니 데크에 30cm는 족히 쌓여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머리에 딱 떠오른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아! 팥 삶아야겠다!'

처음 여기로 이사 와서 첫눈이 왔을 때 먹었던 빙수가 생각이 났던 것이다. 이곳의 눈은 얼마나 깨끗한지, 밖에서 실컷 뒹굴고 놀아도 옷이나 손이 까매지지 않는다. 처음 이곳 눈을 접했을 때에는 깜짝 놀랐지만, 이제는 눈이 하얀 게 하나도 신기하지 않다.
 

▲ 나의 첫 눈꽃 빙수 ⓒ 김정아


나는 오전 할 일이 끝나자마자 부지런히 팥을 꺼내서 씻었다. 그리고 뚜껑 열은 채로 애벌 삶기 한 번 하고, 다시 씻어준 후, 압력솥에 안쳐서 삶아줬다.
 

▲ 부지런히 삶은 팥 ⓒ 김정아


압력솥의 추가 내려가는 동안 우리 부부는 밖으로 나갔다. 이런 날은 반드시 산책을 해야 한다. 거리는 눈을 치울 엄두가 안 날 만큼 쌓여 있었고, 여전히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동네는 산타마을 같았다. 걸으면 정강이까지 발이 푹푹 빠졌다.
 

▲ 눈이 뒤덮인 마을 ⓒ 김정아


연신 발자국을 찍고는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남편은 집앞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치워도 눈은 다시 순식간에 쌓여버렸다.

나는 팥빙수 만들기에 돌입했다. 냉동실에 인절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재료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그렇다고 장을 보러 갈 교통상황은 전혀 아니었다.하지만 깨끗한 눈이 있고, 삶은 팥이 있으니 제일 중요한 것은 다 있는 셈이 아닌가!
 

▲ 눈을 먹을 수 있는 곳 ⓒ 김정아


나는 곱게 쌓여있는 눈을 퍼담아 부엌으로 들여왔다. 연유대신 생크림을 이용했고, 견과류와 크랜베리를 얹었다. 집에서 만든 미숫가루도 뿌렸더니 그럴듯해졌다.
  

▲ 눈을 담아 만든 빙수 ⓒ 김정아


눈 산책 이후에 따끈한 코코아를 먹어야 한다고 누가 말했던가! 우리는 산책 후의 출출함을 이렇게 팥빙수로 채우고, 겨울의 정취를 만끽했다. 캐나다 눈속에서 즐긴 한국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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