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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약사인 내가 좌절하는 순간

[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약사로서 가장 필요한 곳에 있다는 믿음만으로는 버틸 수 없어

등록|2024.01.21 19:25 수정|2024.01.23 08:12
'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라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써보겠다고 수락했다. 왜냐면 나는 쓸 이야기가 많지 않은 새내기 병원 노동자니까. 지금에서야 '아, 병원에 몇 년 더 있다 썼으면 더 좋은 글을 실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새내기 약사라도 약사의 업무를 얼마간은 했고 그만큼 겪고 느끼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힘을 내보기로 한다. 약사로서 병원 노동을 몇 개월 경험한 신입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될 예정이다.

새내기 병원 약사, 이런 일들을 합니다
 

▲ 적은 인원수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있기에 각 역할을 담당하는 약사들은 하루에 수백 건의 처방을 만난다. ⓒ elements.envato


병원 약사는 환자를 마주하는 약사와 약국에서 조제와 감사를 하는 약사로 나뉘어 있다. 둘은 영원히 나뉘는 역할은 아니지만(어느 달은 투약구에서 환자를 만나고, 어느 달은 약국에서 조제를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환자를 대면하는 일을 시작했다.

주말 중 이른 출근시간에 맞춰 택시를 탄 적이 있다. 기사님은 내가 새벽 여섯시 즈음 해서 병원에 간다 하니 병원 노동자인 걸 금방 알아보셨다. 이른 아침 출근 복장을 하고 병원에 가는 사람이라면 병원 노동자일 가능성이 크다.

어떤 일을 하냐고 물으시길래 "약사예요"라고 대답하니 "병원에도 약사가 있어요?"라고 말씀하신다. 하긴, 병원에 약사가 있다는 사실을 다들 잘 모른다. 원내 처방전을 받는 환자들은 투약구에서 약사를 잠시 보지만, 병동에 있는 환자들은 주로 간호사를 통해 약을 복용하고, 그 외엔 원외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으로 향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하여튼, 병원에도 약사가 있다. 큰 병원 기준 100여 명 정도의 약사가 각 부서에서 일한다. 약사는 정적인 노동을 할 거라 여겨지는데, 사실 움직임이 많다. 나는 실제로 발령 첫 주 차에 약국을 걸어 다니다 '걸을 시간이 없을 텐데?'라는 말을 들었고 이후로 내내 뛰어다녀야 했다.

병원의 모든 약은 약사를 거쳐 간다. 병동에서 오더를 넣어 도착하는 약은 조제와 감사를 거친 약이다. 그 과정에 병원 약사의 노동이 자리한다. 약의 종류는 보통 수천 가지고, 제형 또한 다양하다. 이 약들은 전부 올바른 조건 하에 보관되어야 하고, 정확한 수량으로 조제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환자의 적응증(어떠한 약제나 수술 따위에 의하여 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병이나 증상)에 맞게 바른 약이 가는지, 혹은 용량/용법이 틀린 약이 가지 않는지 확인한다. 동시에 모든 의료 노동자, 그리고 약에 대해 궁금한 환자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응대한다.

이러한 직무는 당연히 약사의 역할에 따라 나뉘어 있지만, 적은 인원수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있기에 각 역할을 담당하는 약사들은 하루에 수백 건의 처방을 만난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환자를 보지 못하는 약국 안에서도, 의무기록으로, 혹은 독특한 처방약으로 환자들을 기억하곤 했다.

상용량과 다른 양을 쓰는 환자, 용법이 특이한 환자, 그 사람만을 위한 약(희귀의약품)이 필요한 환자, 마약성 진통제를 끝없이 맞다가 사망하는 환자. 하루에 수백 명의 처방을 보기 때문에, 병원 내 다양한 환자들을 한꺼번에 접한다는 점이 병원 약사의 업무적 특성이다.

매일같이 과로에 시달리는 병원 약사들
 

▲ 병원 약사들은 환자가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한다. 환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라도, 병원은 약사를 비롯한 전체 노동자에게 적정한 업무량과 쉼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pixabay


약사의 진로는 여러 가지 갈래가 있는데, 그 중 병원은 약사가 대학을 졸업한 후 첫 번 째로 가지는 직장이다. 모든 일을 처음 시작하는 노동자들처럼, 그들도 젊음을 바쳐 헌신적으로 일을 한다.

병원 일은 고되고, 복잡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병원은 한창 나이의 지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젊은 청년들을 뽑고, 환자에 대한 사명감을 바탕으로 한없이 희생하기를 요구한다. 그들은 보통 한 사람이 두세 사람 몫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교육의 결과는 '유능함'으로 칭해진다.

그들은 두세 배로 일한 만큼 두세 배의 속도로 소진되고, 얼마 못 가 관둔다. 그러면 빈자리를 '희생할 준비가 된' 다른 약사가 대신한다. 주기는 안타깝게도 보통 1년이다. 1년이면 사실 제대로 경력을 쌓았다고 보기도 힘들지만, 그 경력조차 쌓지 못한다.

그들은 과중한 업무 속 완벽하기를 요구받고, 그렇지 못하면 심하게 자책한다. 나의 짧은 근무 기간 동안에도, 처방 수는 계속 많아졌다. 인력은 그대로인데, 일이 계속 늘어나니, 실수도 늘어난다. 노동자들은 그 모든 잘못을 본인 탓으로 돌린다.

일을 나눠서 하면 훨씬 빠르고, 안전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지만, 숙련되지 않은 적은 인원으로 일하다 보니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사측의 과중한 업무환경이나 적은 인력, 그런 적은 인력을 만드는 급여나 혹독한 업무 스트레스를 탓하는 대신 자책한다.

그들이 자책하는 이유는 자책하도록 교육받기 때문이다. 병원 시스템은 완벽한 의료인 상을 만들어 두고, 그 안에서 평가받도록 만들어져 있다.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건 본인의 능력 문제로 매도된다.

더욱이, 약사는 이직이 쉽기 때문에 그들은 병원과 교섭하는 대신 나가기를 택한다. 그렇게 약사의 병원 노동은 악순환이 계속된다. 매해 구인난에 시달리고, 평균 근속 연수는 더없이 짧다. 환자는 계속 많아진다. 남은 사람들은 버티다, 버티다 나간다.

약사의 마음, 병원 노동 개선으로 지켜지길

한편, 큰 병원에서 일한다는 건 이곳이 마지노선인 환자들을 만난다는 뜻이다. 매일 바쁘고, 힘겨워하는 나날 속에서 내가 병원에 다니는 이유는 내가 이 곳에서 일할 때 약사로서 가장 필요한 곳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증 환자들에게 약의 정확한 사용은 더욱 중요하다. 자꾸 생전 처음 보는 약을 보다 보니, 내가 약국에서 자주 속으로 되뇌는 푸념이 있는데, '아이고, 어쩌다가 이런 희한한 약을 맞으세요? 제발 깨끗이 나으시고 다신 병원 오지 마세요'라는 혼잣말이다.

얼마 전 환자를 만나고, 이 말에 대한 답을 들은 적이 있다. 환자분에게 지참약을 설명드리며 다음 병원에 오실 때는, 이라는 설명이 필요한 약이었는데, 내가 착각한 부분이 있었다. 환자분은 이번이 마지막 진료였고, 그래서 그 환자분은 내게 "이제 병원 안 올 거예요!"라고 하셨다. 나 또한 같은 생각으로, "건강하세요"라고 답했다.

환자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싶고, 내게 그럴 능력이 있는데도, 밀려드는 업무로 간신히 기본만 하는 게 요구될 때, 나는 내가 병원에 들어온 이유를 상기하며 좌절한다. 환자 안전과 건강을 위해, 병원이 병원 노동자에 게 적정한 업무량과 쉼을 보장하는 직장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진님은 한노보연 회원이고 약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4년 1월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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