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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산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

추사 김정희의 걸작 백파선사비, 허술한 듯 하면서도 장엄한 만세루

등록|2024.01.25 14:15 수정|2024.01.25 14:18

선운사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사찰,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 동백나무 숲, 단풍, 꽃무릇 등으로 관광 명소 ⓒ 문운주


고창 선운산은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천연기념물이 3점이나 지정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기암괴석과 서해안 풍광이 아름답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여 자주 찾는다.

지날 11일 , 선운산 산행에 나섰다. 차에서 내리기가 바쁘게 동행한 최 교수가 이끈 곳은 선운천 건너 절벽에 초록색 덩굴로 붙어 있는 '송악'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송악'은 산기슭에 나는 상록 활엽 덩굴나무다. 선운산의 천연기념물 중 하나다. 이곳 송악은 높이가 15m, 둘레 0.8m로 수령이 수백 년은 될 것으로 추정한다.

흔히, 지나치기 일쑤지만 선운산의 명물이다. 겨울에 선운산을 오르다 보면 황량한 나무들 사이에 푸른 나뭇잎 덩굴이 엉클어져 있는 모습에 보곤 한다. 주인인 원목은 견디다 못해 고사하고 객이 주인인 체한다.

고요하고 민낯처럼 숨김없이 보여주는 모습이 좋아 겨울 산을 찾는다. 이번 여행은 덜 알려진, 소위 보통사람들이 명품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이다. '송악'부터 둘러본 이유다. 선운천을 따라 또 다른 선운사의 명물인 부도밭으로 향한다.

추사 김정희가 비문을 쓴 백파선사비
 

선운사 부도밭스님들이 사망하면 화장하고 남은 유해를 모신 부도가 모여있는 곳. ⓒ 문운주

   

백파선사비추사 김정희가 쓴 비문 ⓒ 문운주


선운사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 전나무 숲 속에 부도밭이 있다. 종 모양을 닮은 석종형 부도와 검은 비석들이 보인다. 선운사를 자주 찾았지만,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중앙 왼쪽의 검은 비석이 백파선사비다.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

추사 김정희가 쓴 전면 비문이다. "우리나라에는 근세에 율사의 종파가 없었는데, 오직 백파만이 이에 해당할 만하다. 대기와 대용은 백파가 팔십 년 동안 착수하고 힘을 쏟은 분야이기 때문에 비문의 제목을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라고 하였다"라고 뒷면에 부기해 놓았다.

"최고의 걸작, 최고의 문장, 최고의 조각으로 선운사 최대 명물"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동행한 최 교수의 해설은 이어진다. 나 같은 범부들에게는 그저 그런 비석에 불과하지만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다른 모양이다. 붓끝의 힘이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부도밭은 스님들이 돌아가신 다음 화장하고 남은 유해를 모신 부도가 모여 있는 곳이다. 스님들의 공동묘지인 셈이다. 들여다보니 집안에 있는 공원 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지 않게 부도밭에서 추사와 백파를 만나고 선운사 본당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선운사 최의 명품 만세루
   

만세루만세루는 앞면 9칸·옆면 2칸 규모의 강당 건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천왕문과 바로 연이어서 만세루와 대웅전이 위치 ⓒ 문운주

      

만세루19세기 말에 보수된 것이다. 이 건물은 비대한 자연목거대한 자연목을 껍질만 벗기고 다듬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하여 소박함과 함께 넉넉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현지안내문] ⓒ 문운주

 
"만세루가 선운사의 가장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대웅보전, 요사채 등 건물을 다 짓고 난 다음에 자투리 나무로 지은 건물이기 때문이에요."

만세루의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 등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간다. 선생님을 따라나선 학생이 된 기분이다. 이야기가 길어져 지루한 것 같으면서도 깊이 세뇌되어 가는 느낌이다. 몇 번 동행을 하다 보니 팔작지붕이니, 맞배지붕이니 하는 소리 자연스럽게 들린다.

만세루는 정면 9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1620년 화재로 본당을 제외하고 소실돼 1752년 다시 지었다. 기둥의 굵기도 다르다. 원통이 아니라 이어서 세웠다. 가운데 칸 높은기둥 위에 얹힌 마룻보(대들보 위에 설치한 종보)는 나뭇가지를 그대로 사용했다.

만세루는 장엄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이다. 허술한 것 같은 것들이, 때론 자연미와 소박함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당시 자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대충 만들어 낸 건축물이 독창적인 선운사의 명품으로 남았다.

김소희 명창이 득음 했다는 두암초당
  

두암초당호암 변성온[1530~1614]과 인천 변성진[1549~1623] 형제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 명창 김소희가 득음 한 곳이라고 하여 득음정이라고도 이름지어짐 ⓒ 문운주

   

병바위1 ⓒ 문운주


선운사의 부도답, 만세루 답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두암초당으로 향했다. 부모가 돌아 가시자 시묘살이를 했던 변씨 형제의 효성을 기리고자 지은 정자라고 한다. 전좌바위 또는 두락암이라 불리는 바위 밑을 조금 파고 구조물을 끼워서 지은 정자다. 김소희 명창이 득음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소희(1917~1995) 명창은 해방 이후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다. 판소리의 마지막 단계인 성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어떤 소리도 막힘없이 낼 수 있는 경지를 득음이라고 한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전자바위 오른쪽을 돌아 산 위에 올랐다. 밑으로는 주진천(인천강)과 반듯반듯 정리된 농지가 눈에 들어온다. 하늘에는 검은 독수리가 주위를 맴돈다. 평화로운 고요가 깃든다. 심호흡을 해본다.

아산초등학교에서 두암초당을 거쳐 병바위를 돌아오는 산행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선운산 산행 계획이 문화유적 답사로 바뀌고, 생각지 않게 전좌바위와 병바위를 보았다. '여행은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나무가 길게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와송'이라고 감탄하는 일행에게서 배운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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