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랭킹 최하위 대표팀, '한 골 넣기' 목표 이뤄낼까
[김성호의 씨네만세 641] <넥스트 골 윈즈>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라 해도 좋겠다. 축구 이야기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손흥민부터,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성장한 김민재, 유럽 최강을 노리는 팀에서 확고한 주전 자리를 차지한 이강인 등 내로라하는 선수가 즐비한 2024년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반세기 동안이나 들지 못한 아시안컵 우승을 이번에야말로 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시아에선 어느 나라에 가져다 대도 꿀리지 않는 선수단을 갖추었으니 아시아 최강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요구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시안컵을 코앞에 두고 한국이 아시안컵을 우승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도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의 입을 통해서다. 축구실력과 투자 등 모든 면에서 일본 등 아시아 상위권 국가에 미치지 못하는 한국축구가 이번에 우승을 한다면 장기적으로 병이 들까 우려된다는 것이 이 같은 고언의 취지다. 모두가 결과만 바라보는 현실 가운데 장기적 안목의 투자며 선수육성까지를 돌아보는 그의 시선이 도리어 귀하게 느껴진다.
손웅정의 발언은 월드컵 이후 작별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에서 파올루 벤투 대표팀 전임 감독이 쏟아낸 말과도 마주 닿는 부분이 크다. 벤투는 협회를 향해 "선수들의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과 스폰서인 것 같다"는 쓴소리를 쏟아내 충격을 던졌다. 장기적 안목에서 선수를 육성하고 축구 본연에 집중하는 대신 돈벌이에 급급한 협회의 현실을 대표팀 감독이 나서 비판하고 떠난 것이다.
축구, 그 초심을 돌아보게 한다
이 같은 현실 가운데 초심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등장했다. 타이카 와이티티의 신작 <넥스트 골 원즈>가 바로 그 영화다. <엑스맨> 시리즈의 매그니토를 비롯해 <노예 12년> <셰임> <프로메테우스>에서 주연을 맡는 등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마이클 패스밴더의 출연작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는 적어도 축구와 관련해선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을 일 없는 오세아니아 동측 폴리네시아 사모아 제도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아메리칸 사모아 남자 축구대표팀의 이야기다. 기실 미국령 식민국가로 사모아와 달리 독립국은 아니지만 푸에르토리코 등과 같이 국가대항전에 독자 출전할 자격을 얻어 국제무대에서 활동한다.
축구와 관련해 이 나라는 아주 특별한 위상을 가졌는데,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피파랭킹 세계 최하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수많은 나라가 경합하는 피파랭킹에서 최상위를 하기도 어렵지만, 최하위 또한 쉬운 것은 아니다. 이는 A매치라 불리는 타 나라와의 국가대항전에서 연전연패를 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사모아가 바로 그런 나라로, 국제무대에서 승리는커녕 단 한 골도 넣어보지 못한 형편없는 대표팀을 가졌던 것이다.
최약체 대표팀에 부임한 인성파탄 감독
토머스 론겐(마이클 패스벤더 분)은 한때는 잘 나갔던 축구감독이다. 미국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는 등 썩 괜찮은 이력이 있지만 불같은 성정에다 부진한 성적으로 마침내 축구계 퇴출 위기를 맞이한다. 그런 그에게 미국 축구협회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은퇴할 것이 아니라면 아메리칸 사모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라는 것이다.
아메리칸 사모아라는 곳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던 론겐이지만 여기서 커리어를 끝낼 수는 없는 노릇, 울며 겨자먹기로 폴리네시아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그곳에서 만난 팀은 호주와의 경기에서 31:0으로 대패한 일이 가장 유명한 아메리칸 사모아 축구대표팀이다.
말이 대표팀이지 선수 모두가 다른 직업을 여러개 갖고 일하고 취미처럼 모여 볼을 차는 게 고작이다. 그뿐인가. 기본적인 전략전술에 대한 이해도 없고 훈련도 되는대로 아무거나 하는 식이다. 팀 창설 이후 연전연패, 국민들조차 민망해하는 대표팀을 맡아 제대로 된 팀과 선수로 거듭나게 하는 역할이 론겐에게 주어진다.
엉망진창 선수단으로 국가대항전 한 골 넣기
축구협회장 타비타(오스카 카이틀리 분)는 아메리칸 사모아 방송국 카메라맨과 식당 주인을 겸임하며 축구팀을 운영한다. 스폰서도 제대로 들어올 리 없는 최약체 축구팀을 자비로 운영해야 하니 고생이 이만저만아니지만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그가 축구팀의 목표로 바라는 건 다름 아닌 골이다. 월드컵 본선진출도, 승리도, 승점도 아닌 고작 한 골이 그가 바라는 전부다.
그러나 그 목표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수많은 경기에서 골을 단 한 번도 넣어본 적 없는 약체팀을 데리고 골을 넣기란 어려운 일인 것이다. 역경은 그뿐 아니다. 대표팀 주전 자이야 사엘루아(카이마나 분)는 트렌스젠더가 되기 위해 호르몬 억제제를 먹는 이로, 아예 가슴까지 달려 있는 성전환 진행 상태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경기 중 투쟁적인 모습을 보이긴 커녕 살살 뛰어다니며 예쁘게 치장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어 론겐의 화를 북돋는다.
뿐인가. 아메리칸 사모아 특유의 느긋함은 론겐에게 한 번도 겪지 못한 난관으로 작용한다. 특정한 시간이면 무슨 일이 있든 곧장 명상에 돌입하고, 치열한 승부를 앞두고도 진지함을 찾아보기 어려운 태도에 론겐은 수시로 폭발한다. 그러나 그의 화는 전혀 먹혀들지 않고 그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기에 이르는 것이다.
영화는 론겐이 이제껏 겪어왔던 것과 전혀 다른 환경에 젖어들어 새로운 업적을 이루는 과정을 다룬다. 오로지 결과를 부르짖던 세상에서 벗어나 축구와 사람, 동료를 돌아보고 진정 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과정을 흥미롭게 다룬다. 와이티티 특유의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세계 최하위권 팀의 성공기를 그려내는 자세가 모두 선두에만 주목하는 이 시대에 낯설게 다가온다.
한 골의 가치를 알게 한다
<넥스트 골 원즈>는 시종일관 한 골의 가치를 알도록 한다. 스폰서며 투자는 오로지 골, 그리고 축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협회는 선수가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하고, 선수들은 국민과 팬들에게 보답하려 최선을 다한다. 감독은 팀이 최상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게끔 지도하며 전략을 짠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는 가운데 아메리칸 사모아는 통가를 격파하고 염원하던 첫 골을 넘어 첫 승리를 거둔다.
한국축구의 백년지대계를 설계해야 할 협회가 축구를 아끼는 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누구보다 한국축구를 아끼는 이가 아시안컵에서 한국대표팀이 우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인터뷰를 한다.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을 가장 오래 지도한 지도자는 떠나며 한국축구가 축구보다는 가욋일을 우선한다고 비판한다. 알맹이보다 껍데기에 집착하는 오늘의 현실을 이미 팬들조차 알고 있다.
한국축구의 민망한 현실 앞에서 한 골의 가치를 알고, 그를 위해 전력을 퍼붓는 아메리칸 사모아 대표팀의 열정이 더없이 귀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반세기 동안이나 들지 못한 아시안컵 우승을 이번에야말로 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시아에선 어느 나라에 가져다 대도 꿀리지 않는 선수단을 갖추었으니 아시아 최강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요구일지 모르겠다.
손웅정의 발언은 월드컵 이후 작별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에서 파올루 벤투 대표팀 전임 감독이 쏟아낸 말과도 마주 닿는 부분이 크다. 벤투는 협회를 향해 "선수들의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과 스폰서인 것 같다"는 쓴소리를 쏟아내 충격을 던졌다. 장기적 안목에서 선수를 육성하고 축구 본연에 집중하는 대신 돈벌이에 급급한 협회의 현실을 대표팀 감독이 나서 비판하고 떠난 것이다.
▲ 넥스트 골 윈즈포스터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축구, 그 초심을 돌아보게 한다
이 같은 현실 가운데 초심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등장했다. 타이카 와이티티의 신작 <넥스트 골 원즈>가 바로 그 영화다. <엑스맨> 시리즈의 매그니토를 비롯해 <노예 12년> <셰임> <프로메테우스>에서 주연을 맡는 등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마이클 패스밴더의 출연작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는 적어도 축구와 관련해선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을 일 없는 오세아니아 동측 폴리네시아 사모아 제도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아메리칸 사모아 남자 축구대표팀의 이야기다. 기실 미국령 식민국가로 사모아와 달리 독립국은 아니지만 푸에르토리코 등과 같이 국가대항전에 독자 출전할 자격을 얻어 국제무대에서 활동한다.
축구와 관련해 이 나라는 아주 특별한 위상을 가졌는데,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피파랭킹 세계 최하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수많은 나라가 경합하는 피파랭킹에서 최상위를 하기도 어렵지만, 최하위 또한 쉬운 것은 아니다. 이는 A매치라 불리는 타 나라와의 국가대항전에서 연전연패를 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사모아가 바로 그런 나라로, 국제무대에서 승리는커녕 단 한 골도 넣어보지 못한 형편없는 대표팀을 가졌던 것이다.
▲ 넥스트 골 윈즈스틸컷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최약체 대표팀에 부임한 인성파탄 감독
토머스 론겐(마이클 패스벤더 분)은 한때는 잘 나갔던 축구감독이다. 미국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는 등 썩 괜찮은 이력이 있지만 불같은 성정에다 부진한 성적으로 마침내 축구계 퇴출 위기를 맞이한다. 그런 그에게 미국 축구협회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은퇴할 것이 아니라면 아메리칸 사모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라는 것이다.
아메리칸 사모아라는 곳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던 론겐이지만 여기서 커리어를 끝낼 수는 없는 노릇, 울며 겨자먹기로 폴리네시아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그곳에서 만난 팀은 호주와의 경기에서 31:0으로 대패한 일이 가장 유명한 아메리칸 사모아 축구대표팀이다.
말이 대표팀이지 선수 모두가 다른 직업을 여러개 갖고 일하고 취미처럼 모여 볼을 차는 게 고작이다. 그뿐인가. 기본적인 전략전술에 대한 이해도 없고 훈련도 되는대로 아무거나 하는 식이다. 팀 창설 이후 연전연패, 국민들조차 민망해하는 대표팀을 맡아 제대로 된 팀과 선수로 거듭나게 하는 역할이 론겐에게 주어진다.
▲ 넥스트 골 윈즈스틸컷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엉망진창 선수단으로 국가대항전 한 골 넣기
축구협회장 타비타(오스카 카이틀리 분)는 아메리칸 사모아 방송국 카메라맨과 식당 주인을 겸임하며 축구팀을 운영한다. 스폰서도 제대로 들어올 리 없는 최약체 축구팀을 자비로 운영해야 하니 고생이 이만저만아니지만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그가 축구팀의 목표로 바라는 건 다름 아닌 골이다. 월드컵 본선진출도, 승리도, 승점도 아닌 고작 한 골이 그가 바라는 전부다.
그러나 그 목표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수많은 경기에서 골을 단 한 번도 넣어본 적 없는 약체팀을 데리고 골을 넣기란 어려운 일인 것이다. 역경은 그뿐 아니다. 대표팀 주전 자이야 사엘루아(카이마나 분)는 트렌스젠더가 되기 위해 호르몬 억제제를 먹는 이로, 아예 가슴까지 달려 있는 성전환 진행 상태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경기 중 투쟁적인 모습을 보이긴 커녕 살살 뛰어다니며 예쁘게 치장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어 론겐의 화를 북돋는다.
뿐인가. 아메리칸 사모아 특유의 느긋함은 론겐에게 한 번도 겪지 못한 난관으로 작용한다. 특정한 시간이면 무슨 일이 있든 곧장 명상에 돌입하고, 치열한 승부를 앞두고도 진지함을 찾아보기 어려운 태도에 론겐은 수시로 폭발한다. 그러나 그의 화는 전혀 먹혀들지 않고 그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기에 이르는 것이다.
영화는 론겐이 이제껏 겪어왔던 것과 전혀 다른 환경에 젖어들어 새로운 업적을 이루는 과정을 다룬다. 오로지 결과를 부르짖던 세상에서 벗어나 축구와 사람, 동료를 돌아보고 진정 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과정을 흥미롭게 다룬다. 와이티티 특유의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세계 최하위권 팀의 성공기를 그려내는 자세가 모두 선두에만 주목하는 이 시대에 낯설게 다가온다.
▲ 넥스트 골 윈즈스틸컷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한 골의 가치를 알게 한다
<넥스트 골 원즈>는 시종일관 한 골의 가치를 알도록 한다. 스폰서며 투자는 오로지 골, 그리고 축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협회는 선수가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하고, 선수들은 국민과 팬들에게 보답하려 최선을 다한다. 감독은 팀이 최상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게끔 지도하며 전략을 짠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는 가운데 아메리칸 사모아는 통가를 격파하고 염원하던 첫 골을 넘어 첫 승리를 거둔다.
한국축구의 백년지대계를 설계해야 할 협회가 축구를 아끼는 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누구보다 한국축구를 아끼는 이가 아시안컵에서 한국대표팀이 우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인터뷰를 한다.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을 가장 오래 지도한 지도자는 떠나며 한국축구가 축구보다는 가욋일을 우선한다고 비판한다. 알맹이보다 껍데기에 집착하는 오늘의 현실을 이미 팬들조차 알고 있다.
한국축구의 민망한 현실 앞에서 한 골의 가치를 알고, 그를 위해 전력을 퍼붓는 아메리칸 사모아 대표팀의 열정이 더없이 귀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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