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하는 마음으로 제목의 윤리를 고민해요"
[제목의 이해] 프리랜서 에디터가 제목 뽑을 때 신경 쓰는 것
사는이야기 담당 편집기자로 일하며 더 좋은 제목이 없을까 매일 고민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더 돋보이게 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 편집기자의 도움 없이도 '죽이는 제목'을 뽑을 수 있도록 사심 담아 쓰는 본격 제목 에세이. [편집자말]
▲ 내가 바꾼 기사 제목과 바꾸지 않은 제목 조회수에서 큰 차이가 벌어지면, 그런 일이 반복되면 나보다 글 쓴 사람의 감을 믿게 된다. ⓒ 픽사베이
우연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내가 제목을 바꾸면 덜 읽히는 필자가 있다. 내가 바꾼 기사 제목과 바꾸지 않은 제목 조회수에서 큰 차이가 벌어지면, 그런 일이 반복되면 나보다 글 쓴 사람의 감을 믿게 된다. 이번에는 또 어떨까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든달까. 그런 필자가 몇 명 있는데... 오늘 말하고 싶은 사람은 단편소설과 드라마, 영화 리뷰를 쓰는 프리랜서 에디터 홍현진씨다.
사실 현진씨는 그럴 만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오마이뉴스> 상근기자였던 그는 퇴사 후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재기자와 편집기자를 두루 거친 현진씨는 퇴사 후 <오마이뉴스>에 '나를 키운 여자들'을 연재한 바 있다(현재는 '문제적 여자들'을 연재하고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지난 4년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싶을 때마다 꺼내봤던 32편의 영화와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들의 서사를 통해 내 안의 진짜 욕망을 들여다보게 된 이야기를 담았다. 일에 대해, 관계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나이듦에 대해, 엄마로, 딸로, 아내로 살아가는 고민에 대해 썼다. 결국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 홍현진, 이 많은 '미친 여자'들을 어떻게 모았냐고요? [책이 나왔습니다] 에세이 <나를 키운 여자들>
올해의 뉴스게릴라 시상을 위한 자료 중 하나인 '2023년 하반기 최다조회수 10'에도 현진씨 이름과 제목("너도 자위 하잖아" 이런 엄마는 처음이야)이 있었다. 2023년 상반기 최다 조회수 10에도 이미 포함된 그였다(한밤중에 도배하던 부부가 결국 무너진 이유).
본질을 해치지 않는 제목
-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어요. 외주로 인터뷰 작업하고, 콘텐츠 감수하고, 칼럼 기고도 하고. 글로 하는 모든 일은 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올해는 인터뷰 작업에 대한 책을 내기로 해서 준비하고 있어요."
- 상·하반기 최대 조회수 보고서에 이름이 두 번이나 들어가 있더라고요.
"저도 조회수 보고 깜짝 놀랐는데요. 드라마 <남남>에 대한 글 ["너도 자위 하잖아" 이런 엄마는 처음이야]는 편집기자가 뽑은 제목이라 제가 뭔가를 잘해서 조회수가 높은 건 아닌 건 같은데... 그래도 옛 직장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다니 다행스러운 마음입니다(웃음)."
- 그래서 묻고 싶은데, 현진씨는 주로 책동네와 드라마 혹은 영화, OTT를 보고 글을 쓰잖아요. 혹시 그런 영역의 글을 쓰고 제목을 뽑을 때 염두에 두는 게 있나요?
"꼭 콘텐츠에 대한 글을 쓸 때만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제목이 본문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가?'를 가장 많이 고려해요. 사실 편집기자로 일했기 때문에 제목에 어떤 키워드를 넣으면 잘 읽히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최근에 썼던 악뮤 수현에 대한 글 같은 경우, 수현의 외모와 관련된 제목을 넣었다면 더 잘 읽혔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연예인의 외모를 함부로 품평하는 것을 글에서 비판하고 있는데 제목에 외모 관련 키워드를 넣는 건 이율배반적이잖아요. 글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되겠죠.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본문이 갖고 있는 본질과 배치되지 않는 제목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 맞아요. 이 일을 하는 동안 그런 고민은 늘 안고 사는 것 같아요. 낚시와 낚시질 사이의 줄타기를 하고 있달까. 제목이 낚시질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심하는 게 있나요?
"이전에 연재했던 '나를 키운 여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하고 뒤틀려 보이는 여자들의 속사정이 본문에 담겨 있기 때문에 제목이 다소 낚시성이거나 자극적이라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목에서 가졌던 편견이 본문을 통해 해소가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 쓰는 '문제적 여자들'은 아무래도 실제 인물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제목을 뽑을 때 더 조심하고 신중하게 되더라고요. 제목을 위해 인물의 이미지를 가볍게 소비하는 건 아닌지, 혹은 제목이 오히려 부적절한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고민해 보려고 해요."
- 올해 인터뷰 작업에 대한 책을 내기로 했다고 했는데, 리뷰성 제목과 인터뷰 제목을 짓는 일에도 차이가 있을까요?
"인터뷰 제목을 지을 때는 위와 같은 고민을 정말 많이 하게 돼요. 실제로 제가 시간을 들여서 인터뷰를 하고 원고를 작성했던 사람에 대한 글이니 제목을 뽑을 때 더 마음이 쓰이죠. 인터뷰 제목이 인터뷰이를 소개하는 한 줄이 될 수 있으니까요."
- 그렇군요. 그렇다면 최근 본 글 중에 인상적인 제목이 있는지 궁금해요.
"최근 발행된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기사 중에서 '95세-92세 두 형제의 맞절'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어요.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데 본문 내용을 상상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살짝 울컥한 마음이 들게 하잖아요. 힘을 뺀 제목인데 그래서 더 와닿은 제목이었어요."
- 현진씨가 생각하는 좋은 제목은 뭔가요? 회사 안에서 일할 때의 생각과 밖에서의 생각이 달라졌는지도 궁금해요.
"본문을 읽고 나면 더욱 납득이 가는 제목! 회사 안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조회수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보니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제목도 많이 뽑았던 것 같아요. 본문 안에 있는 일부 자극적인 단어를 끄집어내서 제목을 만들기도 하고요.
궁금해서 클릭하기는 하는데 제목 때문에 본문의 가치가 오히려 반감되는 제목들 있잖아요. 예컨대 노출신만 부각시켜서 영화의 작품성을 퇴색시키는 홍보 전략에 비유하면 될까요? 그런데 요즘에는 브런치도, 인스타 릴스에도 그런 제목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회사 밖에서는 속죄하는 마음으로(웃음) 제목의 윤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회수의 유혹과 제목의 윤리
▲ "'조회수의 유혹과 제목의 윤리' 사이에서 고민될 때... 저는 우선 독자를 떠올립니다." ⓒ 픽사베이
질문은 내가 했는데 찔리듯 아프게 느껴지는 대답이 있었다. 얼마 전 기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기사도 인터뷰였다. 현진씨 말대로 그날의 나는 읽힐 만한 키워드인 '미우새 엄마들'을 제목으로 삼았다("미우새 엄마들은 참 이상하지... 서른 넘으면 내 새끼 아닌데"). 기사 배치 시간도 방송이 나가는 앞뒤로 잡아달라고 했다.
퇴직 후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는 인터뷰이에 대한 글이었는데, 제목은 사실 본문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었다. 알면서도 그렇게 뽑았다. 자식들에게 얽매이지 않는 삶, 자식과의 적당한 거리야말로 은퇴 이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오랜만에 시민기자가 직접 나선 인터뷰로, 공들여 쓴 만큼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도 컸다. '미우새 엄마들'이 아닌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기계발 내용을 담은 제목으로는 별로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이렇게 나가도 되려나' 하는 걱정이 없지 않았다.
예상대로 반응은 다행히 좋았다. 인터뷰를 한 시민기자는 "제목 때문인지 기사를 정말 많이 봐서 놀랐다"면서 이번 기사 제목에 대한 반응이 두 가지로 엇갈렸다고 말해주었다. 책을 낸 출판사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내색을 했다고 했고(그럴 수 있지), 제목만 본 비슷한 연배의 지인들은 평소 미우새 엄마들이 좋게 보이지 않았는데 속시원하다고 했단다(그럴 수 있지).
이 반응도, 저 반응도 다 예상되는 바였다. '이럴 때는 뭐가 좋은 제목이냐'는 물음에 궁색하고 어색한 변명을 하고 말았다. 책 기사는 조회수가 높기 어려운데, 독자들이 이 정도 봤다면 저자 입장에서는 책을 많이 알린 셈이고, 확인할 수 없지만 그것이 판매로까지 연결되었다면 그거대로 의미 있는 제목이 아니겠느냐는. 모두 공감하고 수긍할 만한 제목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현진씨 말처럼 '노출신만 부각시킨 영화' 같아 속이 계속 편치 않았던 것이다. 이미 지난 일, 다음에 더 잘하자.
끝으로 나에게 궁금한 건 없냐는 질문에 현진씨는 "편집부에서 일하면서 조회수를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조회수의 유혹과 제목의 윤리 사이에서 고민될 때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하다"라고 물었다. 무거운 질문, 위트 있게 답변하고 싶은 건 마음뿐 딱 '두 글자'가 생각났다. 그 답변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선을 넘지 않으려 애써요. 문장을 써놓고 윤리적인 부분에서 고민이 되면 '이래도 되나' 시간을 두고 한 번 더 생각해요. 매체 입장에서야 글을 잘 파는 것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만 글은 상품이 아니니까. 특히나 기사라는 특성상 글의 영향력과 파급력을 고려하면 더 그렇죠.
'조회수의 유혹과 제목의 윤리' 사이에서 고민될 때... 저는 우선 독자를 떠올립니다. 독자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해요. 잘 모르겠으면 다른 편집기자의 생각을 듣기도 하고요. 가장 중요한 독자의 입장에서 선정적으로 보인다거나 편파적, 일방적, 과장, 왜곡, 선동 등으로 읽힌다면 백만 명(웃음)이 읽을 만한 제목이라도 접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강령 체크도 하고요."
과잉표제 및 선정적 편집 금지
신문윤리실천요강 10조1항 표제의 원칙, 10조2항 편집변경 및 선정주의 금지, 10조3항 미확인사실 과대편집 금지
기사의 제목은 기사 내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음란하거나 잔혹한 내용으로 선정적인 편집을 해서는 안되며,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사실을 과대하게 편집해서도 안됩니다. 온라인에서 낚시성 제목 또는 기사와 관련 없는 음란한 사진을 게재해 독자의 클릭을 유도하거나 성폭력 등 자극적인 기사들을 한데 모아 편집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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