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최강한파... 뉴욕에선 이렇게 인사합니다
701일 만에 내린 눈에 장작-눈삽 동 나... '털모자' 뜰 자원봉사자 모집도
▲ 한파가 지나간 뉴욕시 일대뉴욕시 인근은 눈이 내린 후 바로 한파가 이어졌다. 지붕에 달아두었던 장식이 눈과 얼음으로 내려앉았다. ⓒ 장소영
요즘 뉴욕 주민들의 인사는 '굿모닝'이 아니다. 'Icy Morning' 혹은 'Slippery Morning'(미끄러지기 쉬운 아침)이다. 주말까지 이어진 뉴욕의 한파는 이번 주 중에 조금씩 누그러질 예정이다.
지난 2년간 눈 쌓이는 날을 경험하지 못했던 뉴욕시 일대는 지난주 두 차례에 걸쳐 내린 큰 눈을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였다. 적설량은 겨우 2~4인치(5~10cm)를 넘기며 예전에 미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눈이 멈춘 최장 기록을 깨고 701일 만에 내린 눈을 즐기는 뉴욕 시민들의 모습을 소개했고, 지역 매체들도 2년 만의 설경 사진들로 가득했다.
대형 마트는 물론 편의점에 쌓여있던 장작과 눈삽도 거의 동이 났고, 동네 입구에 일찌감치 제설차가 대기 중이었다. 눈이 내린 직후에는 염화칼슘을 가득 실은 트럭이 부지런히 골목을 돌며 작업을 했다.
눈이 그친 이튿날부터 도로를 정비하려는 작업차량이 바쁘게 움직였다. 염화칼슘은 눈과 언 땅을 빠르게 녹여줘 고맙기도 하지만, 아스팔트를 망가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폭설이 예고된 주말 전에 구멍 난 아스팔트를 메우는 작업을 하느라 곳곳에 통행제한이 있었다.
▲ 염화칼슘과 도로 정비 701일 만에 큰 눈이 내리자 대기중이던 제설차량이 신속히 작업했고, 빙판길에 염화칼슘 도포 작업도 빠르게 이루어졌다. 눈이 그친 사이 아스팔트에 생긴 파손 부위를 작업차량이 서둘러 메꾸어 주었다. 다행히 주말동안 예보되었던 눈은 가볍게 지나갔지만 한파는 주말을 지나서도 이어지고 있다. ⓒ 장소영
사실 눈 피해보다 열흘 이상 지속된 한파 피해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지역 주민 게시판에는 담요를 기증해 달라는 요청과 뜨개질을 할 봉사자를 찾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신생아에서부터 노숙자까지,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털모자를 나눠주기 위해서다.
한파 대비를 위해 지방 뉴스가 특별히 편성한 시간에 화재 전문가가 초청되었다. 집 외벽에 돌출된 미터기, 난방 환기구와 함께 반드시 세탁 건조기 통풍구를 미리 점검하라는 권고를 한다. 빨래를 널기보다 건조기를 사용해 빨래를 말리는 미국에서는 건조기에 쌓인 먼지가 종종 화재를 일으킨다.
건조기 통풍구(Dryer Vent)는 닫혀있다가 건조기 사용과 함께 열리게 되어 있는데, 눈이 온 후 한파로 인해 이 통풍구가 얼어붙는 경우가 있다. 이를 모르고 건조기를 돌렸다가 청소되지 않은 통풍 파이프로 인해 화재로 연결된다고 한다.
외벽에 연결된 수도꼭지나 다른 환기구는 잘 관리하지만 의외로 건조기 통풍구는 빼먹기 쉬운 곳이라 전문가가 주의를 당부했다. 순식간에 집 전체로 불길이 번지는 미국집의 특성상 화재는 주요 토픽이다. 집 주변의 쇼핑단지와 이웃 마을에서 지난 한파 기간동안 벌써 세 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 외벽에 달린 통풍구한파 전에 단독 주택 점검과 관리는 필수다. 수도꼭지는 물론 미터기, 온수기, 난방기구 환풍기는 잘 관리하지만 세탁물 건조기의 통풍구를 빼놓고 관리하지 않아 화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 장소영
한파가 덮친 날에는 동네 빨래방이 붐빈다. 보통 세탁기와 건조기는 주택 지하나 차고 근처에 두고 사용한다. 한파에 배수관이 얼어붙거나 배수가 원활하지 않아 빨래방으로 오는 것이다.
세탁소에서 옷을 찾아 나오다가 바로 옆 빨래방에 들어가는 이웃을 만났다. 파이프 문제가 생겼냐고 물으니 그렇게 될까봐 미리 빨래를 해두러 나왔다고 한다. 재작년, 혹독한 한파에 정전까지 발생해 고생했던 다른 이웃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작은 자가 발전기도 구입해 두었는데 예상외로 조용한 주말이 지나가는 듯해 아쉽단다. '아직 1월이니 안심하지 말자, 우리 아이들도 사실 조금 실망하고 있다'라고 말해 주었다.
눈이 6인치 이상 쌓이면 학교가 문을 닫는다. 은근히 학교가 문을 닫길 기대했던 아이들이 실망을 하고 꽁꽁 언 빙판길을 조심조심 걸어 스쿨버스를 타러 나갔다. 눈 때문에 채우지 못한 학업 일수는 봄에 잡아놓은 예비일을 이용하는데 작년에는 눈이 오지 않는 바람에 하루도 사용하지 않았다. 올해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부모와 하루를 쉬며 실컷 눈 위에서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동상이몽이 주말에도 이어졌다.
폭설과 한파가 매년 더 거세지는 뉴욕 북동부와 내륙에 비해, 뉴욕시와 주변은 작년에도 올해도 비교적 가볍게 겨울을 나고 있다. 블랙아이스 때문인지 앞서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던 차량 두 대가 크게 흔들렸다. 일을 잠깐 보고 다시 돌아 나오는데 그새 공사차량이 와서 현장을 점검하고 조치를 취하고 있다. 누군가 핫라인을 이용해 연락을 취한 모양이다.
가볍게 지나간다해도 겨울 한파는 해를 끼친다. 사건 사고가 덜한 것은 단단한 준비와 신속한 조치 덕이 클 것이다. 아무쪼록 미리 대비하고 바지런히 공무를 수행하는 관공서의 노력과 서로를 살피는 온정으로 안전하고 조금은 덜 힘겨운 겨울나기가 되었으면 한다.
▲ 깨끗하게 정비된 골목들예상보다 가벼운 눈이 지나갔고 예보보다 강한 한파가 이어지고 있다. 눈길은 깨끗이 정비되었으나 곳곳에 만들어진 블랙아이스를 주의하라는 안내를 받고 있다. ⓒ 장소영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