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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아요

자제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거대 플랫폼... 깔고 지우는 게 최선인가요?

등록|2024.01.28 19:19 수정|2024.01.28 19:19
앱스토어를 열고 넷플릭스 앱을 다운로드 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요즘 미 에미상을 휩쓴 이성진 감독과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의 <성난 사람들>(BEEF)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가 무척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본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한소희의 <경성크리처>는 또 어떻고. 두 작품이 워낙 호평 일색이라 궁금증이 더해갔다.

"그래도 안 돼."

오랜 망설임 끝에 결국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말았다. 손가락 터치 한번이면 되는 간단한 선택 앞에서 내가 이렇듯 치열하게 망설이는 이유는, 다름아닌 '보고 싶다'는 욕망에 굴복하기가 싫어서다.

아마도 내가 참지 못하고 넷플릭스를 다운받았다면 원래의 목적인 <성난 사람들>과 <경성크리처>를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보고 싶다'는 욕망에 굴복하는 순간, 시리즈 정주행은 물론이요, 알고리즘에 따른 시청 쾌감에 중독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꺾이는 건 언제나 나의 의지
 

▲ 숏폼을 보면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 같은 시간들. ⓒ elements.envato


그러고보면 나의 디지털 중독은 비단 넷플릭스뿐만이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빠지기 쉬운 건, 그 짧은 길이 때문에 경각심조차 생기지 않는 숏폼이다. 숏폼은 연속성이 있는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에 중독이라는 인식도 못한 채 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군다나 한두 개의 숏츠만 보고 창을 닫으려는 나의 의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마는 무한스크롤 기능은 또 어떻고. 그건 숏폼 입장에서는 무한한 장점이요, 나에게는 치명적 단점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중독에 약한 인간일까? 해 뜬 낮에 잠깐 숏폼을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창밖을 보게 되면, 스스로가 그렇게 한심해보일수가 없다. 딱히 보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단지 정보 하나를 얻고자 앱을 열었을 뿐인데. 숏폼을 보면서 자동으로 미뤄진 수많은 할 일들을 깨닫노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같은 시간들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이러니 내가 간편하게 깔 수 있는 앱을 하나 두고도 나의 인내심과 도덕심, 양심까지 동원하여 소리없는 내적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는 것은 언제나 나의 의지일 뿐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주로 선택하는 방법은 유튜브와 넷플릭스 앱을 깔았다 삭제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참을 수 없이' 보고 싶거나, 꼭 필요한 강의를 시청해야할 때면 앱을 깔고, 다시금 디지털 중독의 늪에 빠진 후 피폐해진 정신으로 삭제하기 버튼을 누르는 이 반복적인 행위가 그나마 나의 중독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끊임없이 권해주는 취향저격 추천 콘텐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연달아 보여주는 숏폼의 알고리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과연 나의 의지 부족때문이기만 한 것일까.

나를 중독시키려고 애쓰는 사람들

행동경제학 용어인 '시간에 따른 선호 역전 현상'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당장의 이익을 장래의 유익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숏폼을 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시간낭비라는 것을 알지만 눈앞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즉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재미있는 것을 끊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에 따르면, 우리가 소셜미디어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노력들, 즉 핸드폰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10분 동안 참는다 거나 스마트폰의 앱 사용시간 제한 기능을 사용하는 것 등등의 방법들은 중독에 대한 모든 해결책을 우리 스스로에게 넘기는 비겁한 방법이라고 한다. 인간의 자제력으로 이것을 끊기에는 애초에 역부족인데 말이다.

가령 숏폼의 무한스크롤 기능을 없애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 기술을 앱에 적용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숏폼의 입장에서 유리한 구조, 즉 사용자가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앱 소유주가 돈을 버는 비지니스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인기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 출연해 전 세계적 유명세를 얻은 전 구글 엔지니어인 트리스탄 해리스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제력을 키우려고 노력할 수는 있겠지만, 화면 반대쪽에는 우리의 자제력을 꺾으려고 노력하는 천여 명의 엔지니어들이 있습니다."

내가 넷플릭스와 숏폼의 알고리즘에 매번 패배할 수 없었던 이유가 나의 자제력 부족이 아닌 개발자들의 노력 덕분(?)이었다니, 그동안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중독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반대편의 그들은 나를 중독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슬프게도 내가 그동안 어쩔수 없이 선택한, (간헐적이고 일시적이긴 하지만) 앱을 삭제하는 이 단순한 물리적 차단 방법이 나에게는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거대 플랫폼에 조종당하는 줄 알면서도 요즈음 자꾸 또다른 유혹이 생기려고 한다. 한참 늦었지만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순기능도 많다지만 나의 디지털 디톡스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이 매체를 이용하게 된 건, 캘리그래피를 하시는 신부님의 인스타를 구독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목적이 아무리 건전했다 한들 SNS가 주는 도파민에 중독되기는 매한가지 아니던가. 아슬아슬하긴해도 아직까지는 선을 넘지 않는 원래의 선한 목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데... 이런.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신나게 신부님의 캘리그래피 영상을 보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아이가 불쑥 내 폰에 고개를 들이민 것이다.

"엄마 뭐야! 인스타 깔았어? 나보곤 하지 말라며! 헐~ 나도 깔래!!!"

영상에 어찌나 집중을 했는지 아이가 다가오는 기척을 몰랐다. 그런데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엄마가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는 현장을 떡하니 목격당한 것이니. 하… 이를 어쩐다. 앱을 지우는 시늉이라도 해야하나. 과연 디지털 디톡스는 나에게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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