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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사진 찍었던 아기가... 교복을 입고 찾아왔습니다

[창, 나의 사진이야기] 올해도 사진관 문을 열고 손님을 맞습니다

등록|2024.01.24 13:28 수정|2024.01.24 13:28

▲ 조평자 사진작가 ⓒ 뉴스사천


새해가 시작됐습니다. 일상은 변한 것이 없지만 청룡의 해, 갑진년은 여러 가지로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마음가짐부터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렙니다.

나는 용띠입니다. 사진 찍는 남자와 1984년에 결혼했으니까 결혼 40주년이 되는 올해 환갑을 맞게 되는 것이지요. 실로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부서지기 쉬운, 때론 부서질지도 모를 어린 나를 환대해 준 남편과, 그가 결혼 전에 개업한 사진관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한결같이 사진을 찍고 있는 지금이 참 고맙습니다.

처음엔 카메라에 필름 한 통을 끼워 넣을 줄도 모르던 나였지요. 어느덧 다른 사람의 사진 속에 파묻혀 사는 일이 늘 유쾌하진 않지만 그리 싫지는 않았습니다.

사진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유는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보이스피싱을 당해 신분증을 재발급하려고 급속 사진을 찍을 땐 나도 덩달아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급히 영정사진을 만들 땐 같이 울었습니다. 정말 힘들게 시간을 낸 식구들이 다 모인 가족사진을 찍을 때도 그랬고, 기다리던 새 생명이 태어난 가정에는 웃음소리까지 담아드렸습니다.

요즘엔 스튜디오에서 백일·돌사진을 찍으며 낯을 가리던 아기, 엉덩이춤을 추던 아기, 울어서 촬영을 중단하고 말았던 추억 속의 아기들이 성장해서 대학생이 됐거나 교복을 입고 학생증 사진을 찍으러 와서 나를 놀라고 기쁘게 합니다. 진심을 다해 사진을 찍어주고 뽑아준 보람이 열정을 만들고, 그 열정이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온 지속의 힘이 된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가게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합니다. 먼지를 닦고 마당을 쓸어냅니다. 조명과 카메라의 촬영 값을 맞추고 출력 기계들을 세팅합니다.
 

▲ 이종암 시인 ⓒ 뉴스사천


올해의 첫 촬영 손님은 멀리 경북에서 오신 이종암 시인입니다.

저에게 소중한 문학 친구예요. 중학교 교사 생활을 지난해에 퇴직하고 시를 쓰는 일에 전념하고 계신 분입니다. 멀지만 네 번째 시집을 발간하기 위한 프로필 사진을 찍으려고 저희 스튜디오까지 찾아 와 주셨습니다. 물론 사진 촬영이 목적이라기보다 작은 바닷가 시골 마을 '삼천포가 좋아서'였을 겁니다.

몇 해 전 겨울이었고, 박재삼문학관에서 시를 낭송하고 집필실에서 1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문학관 뜰 앞에 피어나서 반쯤 얼어버린 산다화를 뒷짐 진 채 애터지게 바라보며 고개 끄덕이던 사람입니다. 목섬이 내다보이는 팔포매립지 횟집에서 소주를 곁들인 싱싱한 회를 무척 맛있게 먹기도 하고, 올망졸망한 섬으로 어우러진 우리 동네 바닷바람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그런 삼천포에 내가 살고 있으니 꼭 만나게 될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여덟 컷의 사진 중에 이종암 시인은 네 번째 시집 속에 들어갈 한 장을 선택했습니다. 시인이 사진을 받아들면 사진에서 삼천포 바다 냄새가 날 것입니다. 노산공원 끄트머리 갯바위를 툭툭 치던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며칠은 멀미가 날지도 모릅니다.

조평자 사진작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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