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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 현실이 된 '클린스만 리스크'

[아시안컵] FIFA 랭킹 130위 말레이시아에 졸전 펼친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

등록|2024.01.26 16:13 수정|2024.01.26 16:14

▲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역전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모든 혼돈의 시작과 끝에는 모두 클린스만이 있었다. 잘못된 감독 선임이 불러온 재앙은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꿈꾸던 한국축구를 예정된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무능하고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감독을 비싸게 모셔온 대한축구협회 역시 이 사태의 또다른 주범이다.

한국축구가 최근 '2023 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일정을 마감했다. E조의 한국은 1승 2무를 기록하며 바레인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한국은 1차전에서 바레인을 3대 1로 꺾었으나 요르단에 2대 2, 말레이시아에 3대 3으로 연이어 무승부를 기록했다. 토너먼트에서는 일본을 피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전을 치르게 됐다.

결과도 내용도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FIFA 랭킹 23위의 한국은 이번 아시안컵을 앞두고 강력한 우승후보로 기대를 모았다. 손흥민-김민재-이강인-황희찬-황인범-이재성 등 유럽파 멤버들로 구성된 전력은 역대 최고수준이라는 평가였다. 불과 1년전 카타르월드컵에서 강호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올랐던 주축 멤버들이 대부분 건재했고, 아시안컵 직전까지는 A매치 6연승 행진을 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한국축구는 FIFA 랭킹 80위권 밖의 약체팀들과 한 조에 편성된 무난한 대진운에도 불구하고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FIFA 랭킹 87위의 요르단과 130위의 말레이시아에 한때 리드를 내주고 패배 직전까지 몰렸다가 간신히 비겼다.

유일하게 이긴 바레인전에서도 중반까지 고전하다가 이강인과 손흥민 등 몇몇 선수들의 압도적인 개인능력으로 간신히 승리를 따냈을 뿐 경기력은 그리 좋지 못했다. 특히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한국 출신 김판곤 감독이 이끌던 약체 말레이시아에 고전하며 난타전을 펼치다가 종료직전 또다시 동점골을 허용하며 끝내 비긴 것은, 사실상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는 대참사였다.

축구대표팀의 전력은 월드컵 이후 지난 1년여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클린스만 감독이 새롭게 부임한 이후에도 주축 선수들의 면면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이강인-김민재 등이 빅클럽으로 진출하여 기량이 더 성장했고 유럽파의 숫자도 전체적으로 1년 전보다 더 늘어나 전력은 월드컵 때보다도 더 향상된 쪽에 가깝다. 심지어 대회 개최장소도 1년 전 월드컵과 똑같은 카타르라 적응 문제도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달라진 변수는 오직 하나, '감독 교체'뿐이었다. 그런데 그 변수가 상상 이상으로 너무나 치명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시안컵 조별리그 3경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클린스만은 한국축구를 어떻게 망쳐놨나'로 정리된다. 극심한 수비불안과 골 결정력 실종, 플랜 B의 부재, 체력과 경고관리 실패 등 국제대회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모두 현실화됐다. 좋은 선수들만 모아놓는다고 '좋은 팀'이 되는 것이 아니며, 한 명의 감독이 팀을 어떻게 무너뜨릴수 있는지를 보여준 반면교사에 가까웠다.

아시안컵 조별리그 내내 클린스만의 대표팀 운영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애초에 선수구성부터가 문제가 있었다. 기량과 경기감각에 의문부호가 붙던 풀백 이기제의 발탁과 주전 기용, 사생활 문제로 국가대표 자격이 잠정발탁된 공격수 황의조의 대체자원 부재, 취약포지션인 공격수와 풀백의 보강을 외면한 최종엔트리의 포지션 불균형 문제 등 대표적이었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조별리그에서 대표팀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됐다.

매 경기 뻔한 전술과 무능한 경기운영도 낙제점이었다. 클린스만은 부상으로 낙마한 골키퍼 김승규처럼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조별리그 내내 베스트11와 전술에 큰 변화를 주지않았다. 상대팀들이 철저한 전력분석을 통하여 한국전을 대비한 맞춤형 전술을 들고나온 상황에서도 플랜B가 전무했다.

클린스만은 조별리그에서 조규성과 손흥민을 최전방에 배치하는 변형 4-4-2 전술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빌드업과 중원싸움을 중시하는 현대축구에서는 아시아 무대에서도 투톱 전술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대표팀은 공수밸런스의 불안정을 드러내며 수비진의 부담이 가중되었고, 우세한 경기를 펼치다가도 상대의 역습과 세트피스 한방에 흔들리는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조규성은 황의조의 부재로 조별리그 내내 경쟁자 없이 주전 스트라이커로 중용되었으나 단 한 골도 넣지 못했고 유효슈팅과 공중볼 경합에서의 장점도 보기 드물었다. 손흥민은 2골을 넣었지만 모두 PK였다.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무려 8골을 넣었으나 정작 스트라이커 득점은 전무했다. 이로 인하여 경기 중반까지 어려운 경기를 펼치다가 이강인이나 황인범처럼 2-3선에서 뛰는 선수들이 겨우 득점을 해결하며 활로를 뚫어야했다.

반면 아시안컵 직전까지만 해도 A매치 7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던 수비는 정작 조별리그에서는 3경기만에 무려 6골이나 내줬다. 그동안 겉보기에 화려한 연승과 무실점 기록에 가려졌지만 당시 만난 상대는 아시아에서도 약체팀이거나 홈에서 열린 평가전이 대부분이었다. 상대에 대한 철저한 공략법을 연구하고 임하는 조별리그에서는 한국 수비 조직력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월드클래스 수비수 김민재가 건재했지만 혼자 힘 만으로 여기저기서 뚫리는 구멍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한국 선수들은 조별리그에서 무려 8명의 선수가 경고를 받으며 카드관리에 실패했다. 이로서 한국은 토너먼트에서 매경기 경고 리스크를 안고 벼랑끝 승부를 치러야한다. 다행히 사우디와의 16강전은 전력누수가 없지만 만일 추가로 경고누적을 받아 다음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가 나온다면 단판 승부에서는 치명적이다.

클린스만은 말레이시아와의 최종전에서도 경고를 안고 있는 선수들까지 주축 멤버들을 모두 그대로 선발 출전시켰다. 16강에서 일본을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말레이시아를 확실하게 제압하고 조별리그 1위를 확정하여 토너먼트까지 상승세를 이어가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졸전은 졸전대로 펼치고 주전 선수들의 체력안배까지 실패하며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만일 경기에 졌거나 추가적으로 경고누적을 받은 선수까지 나왔다면 더 큰 대참사가 나올 뻔했다.

그런데 클린스만의 이러한 문제점은 이미 그가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할 때부터 이미 예상된 장면들이었다. 클린스만은 독일-미국 대표팀 감독 등을 역임하며 나름의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현지 언론이나 축구계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훨씬 더 많았던 인물이었다.

감독으로 불성실하고 책임감없는 자세, 전술적 능력의 부재 등이 대표적이었고, 그로 인하여 한국 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지도자로서의 공백기도 길었다. 그럼에도 한국축구는 전임 신태용이나 파울루 벤투 감독보다 오히려 더 비싼 비용까지 지불하여 클린스만을 모셔왔다. 그 댓가가 지금 아시안컵에서 고작 이런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클린스만은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비판이 나올때마다 "대표팀 감독은 국제적으로 활동해야한다", "나도 워커홀릭이다", "아시안컵 우승으로 평가받겠다" 등 핑계를 내세워 자신의 문제점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논란을 회피하는 데만 급급했다.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국제적인 활동을 한답시고 해외에 상주하여 한가롭게 외유와 유럽축구 평론으로 소일하던 클린스만은 대체 이번 아시안컵을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한 것일까.

히딩크, 허정무, 벤투 등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전임 대표팀 감독들은 클린스만과 같은 시간에 전국을 돌면서 한 명이라도 더 대표팀에 발탁할만한 선수를 발굴하는가하면, 더 나은 전술을 짜고 전력을 분석하는 데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보냈다. 그것이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자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클린스만에게는 이 당연한 상식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벌써 부임 1년이 되었음에도 아직 자신의 선수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모습이다. 또한 아시안컵에서 만나는 상대들에 대한 이해와 맞춤형 대비도 제대로 되어있지않다는 것만 증명했다. 나 자신도 모르고 적에 대해서도 모르니 매경기 위태로운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말레이시아전이 끝난 후 클린스만이 가장 먼저 남긴 소감은 놀랍게도 "흥미진진한 경기였다"는 평가였다. 본업이 평론가라면 몰라도 FIFA 랭킹 100위권밖의 약체팀에게 한심한 경기를 펼친 축구대표팀 감독이 분노한 팬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또한 클린스만은 부진에 대한 뚜렷한 개선책은 언급없이 여전히 "아시안컵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호언장담을 늘어놓았다. 아무런 위기의식도 책임감도 없이 혼자서만 다른 세상에 살고있는 듯한 클린스만의 모습을 팬들이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물론 아시안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안컵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로 끝나든, 앞으로도 클린스만에게 한국축구의 미래를 계속 맡겨야할지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온갖 무리수를 두며 클린스만을 선임한 축구협회와 정몽규 회장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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