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일본어로 쓴 책, 일본인이 한국어로 번역하다
교토 재일한국인 인권 현주소 2
▲ 한국인이 일본어로 쓴 책을 일본인이 한국어로 번역한 책 <한일이 함께 풀어야 할 역사, 관동대학살> 표지 ⓒ 신아연
(*지난 기사 '관동대학살, 100년의 실타래를 국회에서 푼다'에서 이어집니다)
교토 가기 전날 밤인 1월 15일, 씨알재단 이창희 사무국장으로부터 책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까지 재단에서 회의가 있을 예정이라 다시 집에 들어갈 것 없이 공항 근처 호텔에서 자고, 16일 아침 일찍 인천공항으로 가자며, 회의에 참석할 때 아예 가방을 꾸려서 나오라는 전갈을 받은 터였습니다.
날씨가 몹시 추운데다 회의에서 받은 자료와 책자로 짐이 늘어나 짜증이 약간 나려고 하는데 또 책을 받으니, 또한 그 책이 '관동대학살'에 관한 것이라 진짜 짜증이 났습니다. 씨알재단의 요청과 배려로 저도 관동대학살에 관한 책을 쓰고 있지만, 교토 여행 중에는 잠시 잊고 싶었던 터라.
책에 나와 있는대로 무라야마 선생님에 대한 소개를 해봅니다.
"1953년 생. 혁명가 김산의 삶을 그린 <아리랑>을 읽고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저서로 <청춘이 아니어도 좋다>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역서로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등이 있다."
그런데 <한일이 함께 풀어야할 역사, 관동대학살>을 쓴 사람은 '유영승'이란 한국사람입니다. 저와 동갑이네요.
"1963년 생. 나고야 출신 재일 한국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후 잡지 편집자를 거쳐 1995년부터 후바이샤 출판사 편집장으로 근무 중이다. 저서로 <일본을 망하게 하는 완전 대재앙> <책벌레 2인초> 등이 있다."
참 묘하죠. 한국사람이 일본말로 쓴 책을, 일본사람이 한국말로 번역했다니!
한국어에 서툰 재일동포 2세 유영승씨의 글을, 일본인 무라야마 작가님이 한국어로 옮겼다는 것이 제게는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말은 또 몰라도 글을 이렇게 완벽하게 쓰실 수 있다니요!
▲ 교토 재일 조선인 인권 투어를 기획한 무라야마 도시오 ⓒ 장영식
무라야마 선생님은 50년 간 한국어를 배우셨고 한국에서 사십니다. 서울 신촌에서. 이번 여행 중에 한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시는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또한 이 책은 '시민모임 독립'의 기획으로 나왔으니, 더욱이 아니 읽을 수 없어 어제 일독을 마쳤습니다.
독립은 또 누구냐고요? '독립(대표 박덕진)'은 이번 투어를 주관한 시민단체입니다. 지난 달 25일 관동대학살에 관한 국회토론회를 씨알재단과 함께 주최한 곳이죠. 저도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지요.
1923년 관동대학살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다. 이 책은 학살의 진위와 처참했던 사건을 검증하려는 게 아니다. 조선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왜 사회에서 망각되어 가고 있는지, 이 잔혹한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피해자 코스프레'가 어째서 아직도 유효하게 유통되는지, 이 사태에 일본 사회의 독특한 병폐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의 의문을 풀어보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대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재일 조선인들에게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일이 함께 풀어야할 역사, 관동대학살> '들어가며' 중에서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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