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1피자, 식은 피자... 피자 상식 뒤엎은 이 곳
10개월 여행 막바지, 로마에서 마주한 이탈리아 피자의 품격
10개월에 가까운 여행의 막바지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귀국항공권을 검색하다가 어차피 경유에 어차피 고가의 항공편밖에 없다면 집으로 가는 길에 자가경유로 몇 군데를 더 들렀다가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두 도시는 이탈리아 로마와 튀르키예 이스탄불이었다.
로마에서는 10일을 머물 예정이었다. 막상 로마에 가니 귀국을 보름 앞둔 장기 여행의 끝이라 숙소에서 뭘 만들어 먹는 것도 귀찮아졌다. 게다가 미식의 나라 이탈리아, 맛집 즐비한 로마가 아닌가. 외식 끼니수를 줄일 이유가 없었다.
애석하게도 이탈리아 식당이라고 다 맛있는 건 아니었다. 전날 남편이 고른 관광지 식당이 최악이라 식당 결정권을 내가 가져왔다. 내가 심사숙고해서 찾은 식당은 관광명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테베레강 건너편에 있었고 가리발디 다리를 건너 12시쯤 식당(Osteria Nannarella)에 갔다.
이탈리아 식당은 리스토란테(Riatorante), 트라토리아(Trattoria), 오스테리아(Osteria), 피제리아(Pizzeria) 등으로 나뉜다. 리소토란테가 정찬 중심의 격식 있는 식당이라면 트라토리아는 가정식을 제공하는 캐주얼한 분위기의 식당이고, 오스테리아는 간단한 음식과 와인을 파는 선술집 같은 동네 식당이라고 한다. 피제리아는 이름처럼 피자 전문점으로 보면 된다.
농부의 피자, 핀사 콘타디나
1930년부터 영업했다는 식당에서 내가 주문한 메뉴는 '핀사 콘타디나(Pinsa Contadina)'였다. 번역하면, '농부의 피자' 정도 되겠다. 가지와 오이 등 야채 토핑이라 이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핀사(Pinsa)는 밀가루에 쌀가루와 콩가루를 첨가해 만든 도우로 길쭉한 모양의 로마식 피자를 지칭한다고 한다.
그릴에 구운 가지와 오이를 얹은 농부의 피자 맛은 어땠을까. 원조 피자는 배신하지 않았다. 로마의 품격을 옮겨 놓은 맛이다. 도우를 만드는 법과 화덕의 불 조절 기술이 앞섰고 풍미와 식감 좋은 로컬 치즈를 듬뿍 얹은 로마식 피자는 한국에서 먹는 미국식 패스트푸드 피자에 견줄 바가 못되었다.
현지에서 피자는 일 인분의 음식이었다. 우리나라는 미국식 피자 영향으로 피자라면 무조건 대형 피자에 한 판을 여럿이 나눠먹는 패밀리 음식으로 인식되지만 피자의 본고장 이탈리아는 물론, 피자를 식사로 내는 유럽의 모든 식당은 1인 1피자가 원칙이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나오니 식당 앞에 엄청나게 긴 대기 줄이 있었다. 우연히 찍은 식당이 현지인 맛집이라니 로또라도 맞은 양 기분이 최고다. 내게 맛집을 고르는 능력이 있는 줄 나도 미처 몰랐다. 이참에 내 속의 숨은 잠재력을 계속 키워가 보기로 했다.
이름도 우아한 '마르게리타 피자'
다음날도 피자집 순례를 이어갔다. 이번엔 한국에서도 더러 먹어본 '마르게리타 피자(Margherita pizza)'를 공략했다. 마르게리타 피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17)에 등재되었다는 나폴리 피자 중 대표 격이다.
유시민 작가는 로마를 '전성기를 다 보내고 은퇴한 사업가'에 비유했는데 빛바랜 명품 정장을 입은 노신사 로마는 피자도 품격을 갖추어 만든다. 나폴리 피자 협회에서 정한 약관에 따라 만든 것만 나폴리 피자로 인증받는다. '마르게리타 피자는 도우의 두께가 2cm를 넘으면 안되고 치즈는 아펜니노산맥 남쪽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차렐라치즈만 사용해야 하며 크러스트 반죽은 손으로 해야한다. 구울 때는 반드시 장작화덕에 구워야 하고 전기화덕은 금지된다.'
사실 마르게리타 피자는 요란한 토핑 없이 기본 맛을 추구해 평소 내가 좋아하는 피자이다. 도우에 붉은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흰색의 모차렐라 치즈와 초록 바질잎 몇 장만 소박하게 올라갔을 뿐이고 각 색깔은 이탈리아 국기의 삼색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르게리타 피자라는 이름은 1889년 움베르토 1세와 왕비 마르게리타가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 대접한 피자로서 왕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 집 급식소, 우리 동네 피자 가게
하루 관광을 마치고 로마 교외 피그네토(Pigneto)의 숙소로 돌아갈 때마다 지나쳤던 집 앞 피자집도 들렀다. 너무 맛있어서 저녁마다 급식소 삼아 다녔다. 이 집은 얇고 바삭한 도우에 각종 토핑을 얹어 미리 구워놓고 손님이 오면 조각으로 포장하거나 먹고 가도록 잘라주는 피자집이었다. 미리 주문했다가 즉석에서 구워 나오는 걸 한 판 통째로 포장해 가는 손님도 많았고 퇴근 시간이면 늘 손님들로 붐볐다.
이 가게는 '피자는 뜨거워야 제 맛'이라는 피자에 대한 나의 상식을 뒤엎은 곳이었다. 식은 피자도 맛있었고, 생치즈나 연어, 앤초비, 새우가 올라간 피자는 데울 필요도 없었다.
이탈리아 피자의 세계는 무한했다. 넓적하게 반죽한 도우에 먹을 수 있는 것을 올려 구우면 피자가 되고 구운 도우에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식재료든 올리면 그 자체로 창의적 피자의 탄생이다. 피자가 세계인의 음식이 된 데는 이런 확장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 동네 피자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도 못하고 로마를 떠나온 게 마음에 걸린다. 해질 무렵이면 나타나 조각 피자 한 상씩 먹고 가던 동양인 부부가 왜 안 나타날까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로마에서는 10일을 머물 예정이었다. 막상 로마에 가니 귀국을 보름 앞둔 장기 여행의 끝이라 숙소에서 뭘 만들어 먹는 것도 귀찮아졌다. 게다가 미식의 나라 이탈리아, 맛집 즐비한 로마가 아닌가. 외식 끼니수를 줄일 이유가 없었다.
이탈리아 식당은 리스토란테(Riatorante), 트라토리아(Trattoria), 오스테리아(Osteria), 피제리아(Pizzeria) 등으로 나뉜다. 리소토란테가 정찬 중심의 격식 있는 식당이라면 트라토리아는 가정식을 제공하는 캐주얼한 분위기의 식당이고, 오스테리아는 간단한 음식과 와인을 파는 선술집 같은 동네 식당이라고 한다. 피제리아는 이름처럼 피자 전문점으로 보면 된다.
농부의 피자, 핀사 콘타디나
1930년부터 영업했다는 식당에서 내가 주문한 메뉴는 '핀사 콘타디나(Pinsa Contadina)'였다. 번역하면, '농부의 피자' 정도 되겠다. 가지와 오이 등 야채 토핑이라 이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핀사(Pinsa)는 밀가루에 쌀가루와 콩가루를 첨가해 만든 도우로 길쭉한 모양의 로마식 피자를 지칭한다고 한다.
▲ 로마식 야채 피자,?핀사?콘타디나(Pinsa Contadina) ⓒ 김상희
그릴에 구운 가지와 오이를 얹은 농부의 피자 맛은 어땠을까. 원조 피자는 배신하지 않았다. 로마의 품격을 옮겨 놓은 맛이다. 도우를 만드는 법과 화덕의 불 조절 기술이 앞섰고 풍미와 식감 좋은 로컬 치즈를 듬뿍 얹은 로마식 피자는 한국에서 먹는 미국식 패스트푸드 피자에 견줄 바가 못되었다.
현지에서 피자는 일 인분의 음식이었다. 우리나라는 미국식 피자 영향으로 피자라면 무조건 대형 피자에 한 판을 여럿이 나눠먹는 패밀리 음식으로 인식되지만 피자의 본고장 이탈리아는 물론, 피자를 식사로 내는 유럽의 모든 식당은 1인 1피자가 원칙이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나오니 식당 앞에 엄청나게 긴 대기 줄이 있었다. 우연히 찍은 식당이 현지인 맛집이라니 로또라도 맞은 양 기분이 최고다. 내게 맛집을 고르는 능력이 있는 줄 나도 미처 몰랐다. 이참에 내 속의 숨은 잠재력을 계속 키워가 보기로 했다.
이름도 우아한 '마르게리타 피자'
다음날도 피자집 순례를 이어갔다. 이번엔 한국에서도 더러 먹어본 '마르게리타 피자(Margherita pizza)'를 공략했다. 마르게리타 피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17)에 등재되었다는 나폴리 피자 중 대표 격이다.
유시민 작가는 로마를 '전성기를 다 보내고 은퇴한 사업가'에 비유했는데 빛바랜 명품 정장을 입은 노신사 로마는 피자도 품격을 갖추어 만든다. 나폴리 피자 협회에서 정한 약관에 따라 만든 것만 나폴리 피자로 인증받는다. '마르게리타 피자는 도우의 두께가 2cm를 넘으면 안되고 치즈는 아펜니노산맥 남쪽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차렐라치즈만 사용해야 하며 크러스트 반죽은 손으로 해야한다. 구울 때는 반드시 장작화덕에 구워야 하고 전기화덕은 금지된다.'
▲ 피자는 나눠먹는 게 아니랍니다. 1인분의 마르게리타 피자 ⓒ 김상희
사실 마르게리타 피자는 요란한 토핑 없이 기본 맛을 추구해 평소 내가 좋아하는 피자이다. 도우에 붉은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흰색의 모차렐라 치즈와 초록 바질잎 몇 장만 소박하게 올라갔을 뿐이고 각 색깔은 이탈리아 국기의 삼색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르게리타 피자라는 이름은 1889년 움베르토 1세와 왕비 마르게리타가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 대접한 피자로서 왕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 집 급식소, 우리 동네 피자 가게
하루 관광을 마치고 로마 교외 피그네토(Pigneto)의 숙소로 돌아갈 때마다 지나쳤던 집 앞 피자집도 들렀다. 너무 맛있어서 저녁마다 급식소 삼아 다녔다. 이 집은 얇고 바삭한 도우에 각종 토핑을 얹어 미리 구워놓고 손님이 오면 조각으로 포장하거나 먹고 가도록 잘라주는 피자집이었다. 미리 주문했다가 즉석에서 구워 나오는 걸 한 판 통째로 포장해 가는 손님도 많았고 퇴근 시간이면 늘 손님들로 붐볐다.
▲ 보이는 피자. 구워놓고 팔기 때문에 주문은 손가락 하나면 해결된다. ⓒ 김상희
▲ 오늘의 저녁 '피자한상'은 '가지 피자, 앤초비 호박 피자, 연어 피자'로 차렸다. ⓒ 김상희
이 가게는 '피자는 뜨거워야 제 맛'이라는 피자에 대한 나의 상식을 뒤엎은 곳이었다. 식은 피자도 맛있었고, 생치즈나 연어, 앤초비, 새우가 올라간 피자는 데울 필요도 없었다.
이탈리아 피자의 세계는 무한했다. 넓적하게 반죽한 도우에 먹을 수 있는 것을 올려 구우면 피자가 되고 구운 도우에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식재료든 올리면 그 자체로 창의적 피자의 탄생이다. 피자가 세계인의 음식이 된 데는 이런 확장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 동네 피자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도 못하고 로마를 떠나온 게 마음에 걸린다. 해질 무렵이면 나타나 조각 피자 한 상씩 먹고 가던 동양인 부부가 왜 안 나타날까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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