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시금치, 중국 무, 모로코 애호박으로 명절 보내요
영국 소도시에서 명절 기분 내기... 각자의 방식으로 설을 보내는 이주민들
나는 영국 남서부 도시에 5년째 살고 있다. 시내 중국계 마트가 두세 곳 있는데, 이곳에서 한국 식품들을 구매하고는 한다. 명절인데 기분을 좀 내자 싶어 장바구니를 들고 나선다. 구정 때라 그런지 마트 안에는 사람들로 평소보다 붐빈다.
한국 대기업 브랜드 떡국떡을 팔기에 넉넉히 두 봉지 준비한다. 좀 부족한가. 중국산 냉동 만두피를 사다가 집에서 만두도 좀 빚어봐야겠다. 오래간만에 한국산 배를 팔기에 얼른 하나 장바구니에 담는다. 한국산 건나물들을 팔기는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차마 손이 가지 않는다.
매년 설 명절이면 이렇게 떡국도 끓이고, 몇 가지 전류와 나물들을 만든다. 오호라 오래간만에 냉동 순대를 발견했다. 물건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가격이 좀 있는 편이지만 나에게 주는 설 선물로 두어개 챙긴다.
계산대 뒤에 아시안 주류들이 쭈욱 진열되어 있는데, 정종을 살까 하다가 제사 지낼 것도 아닌데 싶어 소주를 한 병 골라 담는다. 한 병에 만 오천 원 정도 하니 이슬 한 방울도 금방울처럼 아껴 마신다. 남은 소주로 부엌 청소하시는 분들 유튜브에서 보면 무척 부럽다. 아시안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면 지역 상점에도 간다. 영국산 쇠고기에 스페인산 시금치, 중국산 무, 모로코산 애호박이 나를 반긴다.
영국에서 명절 나기
영국 지역별로 한글학교가 운영 중에 있다. 금요일 저녁마다 줌으로 한국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재미있게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에는 산적 만들기와 붓으로 청룡 그려보기 활동을 한다. 두 아이도 한글 선생님 말씀 따라 이렇게 저렇게 따라 해본다. 아무래도 문화 체험이 부족한 딸들에게 이 또한 귀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아, 혼자 명절 기분을 내려니 아직 뭔가 부족하다. 구정 일주일 전, 성당 국제 미사가 있어 참여했다. 각국 국기들이 행진하며 들어오는데 그 숫자가 60여 개국에 이른다. 우크라이나 합창단과 홍콩 합창단이 미사 중간 공연을 하는데 모두 인권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다. 빵과 포도주를 단상으로 모셔오는 신도들은 아프리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들어오기도 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영국 땅에 모여 살고 있다. 신부님은 함께 함에 감사하고 축복한다는 메시지를 나누신다. 미사 후에는 나라별 음식들을 모아 놓고 파티를 한다. 중국을 비롯해서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출신의 구정 문화가 있는 나라 사람들은 새해와 관련 있는 음식들을 가져 왔다. 모인 사람들과 음식 나누며 "Happy New Year~" 인사한다.
이젠 추억이 된 명절
어릴 때 우리가 장손집이다 보니 기 제사에 명절 차례까지 장 보러 갈 일은 수시로 있었다. 엄마는 딸 둘을 좌청룡 우백호 마냥 옆에 딱 붙여서 장 보기를 좋아하셨다. 미리 써 온 구매 목록에 따라 가게들을 도는데, 제사상에는 크고 빛깔 좋은 음식을 조상께 올리는 거라고 하셨다. 정종에 향까지 고르고 나면 엄마는 딸들에게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고르라 하셨다. 장 보는데 쫓아다니느라 애썼다는 엄마의 포상이었다.
집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바빠진다. 제기를 닦고 굽고 찌고 볶고 삶고… 4구 가스레인지로 모자라 가스버너까지 내어 놓고 반나절 지지고 볶는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예쁘게 한 상 차려놓고 나면 뿌듯하기는 하다. 품이 들어 좀 피곤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조상님들이 새해 복 가득 안겨 주실 것 같은 멋진 제사상이다.
만든 음식을 가족들과 나눠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이제부터는 노는 시간이다. 어려서는 윷놀이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할머니 좋아하시는 고스톱이 명절 고정 레퍼토리가 되었다.
할머니는 치매 안 걸리려고 한다 하셨다. 백 원짜리 동전을 가득 챙겨 오셨던 걸 보면 자식들이랑 치는 고스톱을 정말 재밌어 하셨던 것 같다. 설 다음날 조상님 모셔놓은 묘소에 다녀오면 새해 받을 복을 다 받아 온 기분이었다.
해외 이주 첫해, 설날 차례 대신 여행을 가면서 신나는 해방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고향 설이 그리워질 줄이야. 한국 사는 동생들은 "언니는 제사 지내지 않아 좋겠다"고 한다. 난 명절마다 동생들이 부럽다. 가족들끼리 복작복작 음식 나눠먹으며 덕담 나누고, 고스톱 치고, 고속도로 교통 체증에 갇혀 차 속에서 간식 먹으며 나누던 농담도 그립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화상 통화로 덕담 나누면서 아쉬운 마음 달래봐야겠다.
▲ 영국 아시안 마트영국 아시안 마트에서 설 명절 장을 봅니다. ⓒ 김명주
한국 대기업 브랜드 떡국떡을 팔기에 넉넉히 두 봉지 준비한다. 좀 부족한가. 중국산 냉동 만두피를 사다가 집에서 만두도 좀 빚어봐야겠다. 오래간만에 한국산 배를 팔기에 얼른 하나 장바구니에 담는다. 한국산 건나물들을 팔기는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차마 손이 가지 않는다.
매년 설 명절이면 이렇게 떡국도 끓이고, 몇 가지 전류와 나물들을 만든다. 오호라 오래간만에 냉동 순대를 발견했다. 물건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가격이 좀 있는 편이지만 나에게 주는 설 선물로 두어개 챙긴다.
영국에서 명절 나기
▲ 주영 한글학교 구정맞이 수업한글학교를 통해 구정 명절의 의미와 재미를 느껴 봅니다. ⓒ 김명주
영국 지역별로 한글학교가 운영 중에 있다. 금요일 저녁마다 줌으로 한국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재미있게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에는 산적 만들기와 붓으로 청룡 그려보기 활동을 한다. 두 아이도 한글 선생님 말씀 따라 이렇게 저렇게 따라 해본다. 아무래도 문화 체험이 부족한 딸들에게 이 또한 귀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아, 혼자 명절 기분을 내려니 아직 뭔가 부족하다. 구정 일주일 전, 성당 국제 미사가 있어 참여했다. 각국 국기들이 행진하며 들어오는데 그 숫자가 60여 개국에 이른다. 우크라이나 합창단과 홍콩 합창단이 미사 중간 공연을 하는데 모두 인권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다. 빵과 포도주를 단상으로 모셔오는 신도들은 아프리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들어오기도 했다.
▲ 국제미사 태극기 들고 퍼레이드국제미사에서 태극기 들고 퍼레이드 참석하면서 설 명절을 기념해봅니다. ⓒ 김명주
이곳에 모인 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영국 땅에 모여 살고 있다. 신부님은 함께 함에 감사하고 축복한다는 메시지를 나누신다. 미사 후에는 나라별 음식들을 모아 놓고 파티를 한다. 중국을 비롯해서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출신의 구정 문화가 있는 나라 사람들은 새해와 관련 있는 음식들을 가져 왔다. 모인 사람들과 음식 나누며 "Happy New Year~" 인사한다.
이젠 추억이 된 명절
어릴 때 우리가 장손집이다 보니 기 제사에 명절 차례까지 장 보러 갈 일은 수시로 있었다. 엄마는 딸 둘을 좌청룡 우백호 마냥 옆에 딱 붙여서 장 보기를 좋아하셨다. 미리 써 온 구매 목록에 따라 가게들을 도는데, 제사상에는 크고 빛깔 좋은 음식을 조상께 올리는 거라고 하셨다. 정종에 향까지 고르고 나면 엄마는 딸들에게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고르라 하셨다. 장 보는데 쫓아다니느라 애썼다는 엄마의 포상이었다.
집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바빠진다. 제기를 닦고 굽고 찌고 볶고 삶고… 4구 가스레인지로 모자라 가스버너까지 내어 놓고 반나절 지지고 볶는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예쁘게 한 상 차려놓고 나면 뿌듯하기는 하다. 품이 들어 좀 피곤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조상님들이 새해 복 가득 안겨 주실 것 같은 멋진 제사상이다.
만든 음식을 가족들과 나눠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이제부터는 노는 시간이다. 어려서는 윷놀이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할머니 좋아하시는 고스톱이 명절 고정 레퍼토리가 되었다.
할머니는 치매 안 걸리려고 한다 하셨다. 백 원짜리 동전을 가득 챙겨 오셨던 걸 보면 자식들이랑 치는 고스톱을 정말 재밌어 하셨던 것 같다. 설 다음날 조상님 모셔놓은 묘소에 다녀오면 새해 받을 복을 다 받아 온 기분이었다.
해외 이주 첫해, 설날 차례 대신 여행을 가면서 신나는 해방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고향 설이 그리워질 줄이야. 한국 사는 동생들은 "언니는 제사 지내지 않아 좋겠다"고 한다. 난 명절마다 동생들이 부럽다. 가족들끼리 복작복작 음식 나눠먹으며 덕담 나누고, 고스톱 치고, 고속도로 교통 체증에 갇혀 차 속에서 간식 먹으며 나누던 농담도 그립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화상 통화로 덕담 나누면서 아쉬운 마음 달래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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