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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 돌리는 '은퇴' 기술직 공무원... 수상한 그들만의 리그

[이희동의 5분] '일체형 물막이판 제작구매 설치 계약'을 둘러싼 의혹 ④

등록|2024.02.08 11:53 수정|2024.02.08 11:53

▲ 강동구 한 주택에 설치된 일체형 물막이판의 모습 ⓒ 이희동


앞서 3편의 기사를 통해 서울 강동구에서 벌어진 '일체형 물막이판 제작 구매 설치 계약' 관련 이상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번 글은 그 마지막 편으로, 그와 같은 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 배경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번 강동구 치수과 사건은 여러 면에서 의원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강동구청장의 단독 특허 거짓말, 강동구의 비정상적인 특허 취득 과정, 강동구와 A업체와의 이상한 수의계약 등등. 그러나 본의원을 가장 자극한 것은 2023년 강동구 행정사무감사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강동구 B과장은 행감 당시 특허 출원 소유자가 강동구냐는 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며, 출원에 필요한 비용을 본인이 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그 증거자료로 특허수수료 납부확인증을 제출했는데요. 그 서류에는 출원인과 주민등록번호는 물론이요, 납부자를 적는 곳에도 성씨를 제외한 이름이 까맣게 지워져 있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상 가렸다고 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민등록번호야 그렇다 하더라도 출원인은 강동구청이고, 납부자는 B씨 본인인데 왜 굳이 가린 것인가. 그것은 특허 출원 당시 출원인이 A업체의 대표였고, 납부자는 B씨와 성씨가 같은 변리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의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엔 충분한 상황이었습니다.

강동구는 왜 물막이판 설치 주소록을 공개하지 않을까
 

▲ 치수과가 제출한 납부확인증 ⓒ 이희동


기가 막혔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대응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강동구청은 일체형 물막이판이 설치되어 있다는 272군데가 어디인지 의회에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그 주소록만 있으면 강동구와 이상하게 수의계약한 A업체가 제대로 공사를 했는지, 수상한 뒷거래는 없었는지 일정 부분 확인할 수 있는데요. B과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그 주소록을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개인정보보호법입니다. 의회가 지방자치법 48조에 따라 서류제출요구를 해도, B과장은 주소록 제출이 개인정보보호법 18조에 위반된다며 자문 변호사들의 결과서를 들이밀고 있습니다. 이에 의회에서 행안부로부터 유권해석을 받아 단순 주소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적용받지 않음을 고지했는데도 요지부동입니다.

담당 과장이 워낙 완강해서일까요? 행정의 책임자인 이수희 구청장도 주소록 제출에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 건은 현재 행정심판으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도대체 B과장은 왜 그 주소록을 공개하지 않는 걸까요? 과연 물막이판은 272곳에 제대로 설치되어 있을까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본 의원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B과장은 의회의 정당한 자료요구에도 꿈쩍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다 자치구 공무원이 행정직과 기술직으로 분류되고, 기술직 공무원들의 인사권은 구청장이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생각이 멈췄습니다.

행정직은 구청장이 인사권을 갖고 보통 한 자치구에서 계속 근무하는 데 반해, 기술직은 서울시가 25개 자치구를 통합하여 승진과 전보 인사를 실시합니다. 인사권이 서울시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의회와 구청장의 눈치를 덜 보게 되는 건 인지상정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서울시 모든 기술직들이 이렇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네트워크가 현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면 사실입니다. 공무원들에 의하면 기술직의 경우 퇴직하면 1년 정도 관련된 업계에서 일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사이 공직에서의 인연을 매개로 자치구의 사업을 따는 것이지요. 실제로 강동구의 기술직 W과장은 퇴직 이후 곧바로 강남의 종합건축사 사무소에 부사장으로 입사했고, 영업차 의회에 와서 제게 명함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죠.

공무원이 발명가로 등록된 특허 다수 보유한 A업체
 

▲ 시민단체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 최형숙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의원이 기술직 공무원과 특정 업체의 거래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기술직들이 서울시 전체를 옮겨 다닐 뿐만 아니라, 일반 행정직이나 의원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전문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감시와 통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기술직 공무원에 따라 용역업체와 공사업체 등이 특정 업체로 바뀌는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B과장과 A업체는 강동구 이전 S구에 있을 때부터 관계가 있었습니다. A업체가 S구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 뿐만 아니라, B과장이 당시 A업체의 특허에 발명가로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허 문서들을 살펴보면, A업체는 여러 기술직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해당 업체는 S구뿐만 아니라 다른 자치구들에서도 공무원이 발명가로 등록된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럼 공무원이 발명가인데 출원인은 특정 업체인 특허가 정상일까요? 이와 관련하여 특허 출원을 많이 했던 울산시의 한 공무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업무를 하다가 지식을 얻어서 발명했는데, 그 특허를 업체가 가져간다는 것은 안 맞는데요. 직무 발명 조례에도 있어요. 공무원이 발명하면 무조건 신고하는 게 의무 사항이에요. 구청에서 특허 등록을 하고. 그런데 특정 업체가 출원인이라면 제 상식에는 안 맞네요."

요컨대, 강동구의 경우 치수과 B과장은 제품의 아이디어를 내는 순간 법에 따라 구청에 보고하고 구청이 특허 등록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문서상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선 기사에 쓴 것처럼 이후 A업체와 8억이 넘는 무리한 수의계약을 맺었고, 이를 과장 전결로 2번이나 연장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요?

B과장이 A업체와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황을 볼 때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의구심을 확실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일체형 물막이판을 설치한 주소록을 제출하는 것이고, 구청은 그 주소마다 설치된 제품들이 보고서와 견적서에 나와 있는 것들임을 확인시켜주면 됩니다. 최소한 내부감사부터 해야 합니다.

끝으로 강동구청장에게 요구합니다. 사과하셔야 합니다. 과정이 어떻든 단독 특허 거짓말을 하였고, 그릇된 사실을 홍보하였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8억이 넘는 예산이 제대로 쓰였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담당 공무원이 법을 어겼을 가능성이 있는 정황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 주소록이 없어서 무작정 동네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차수막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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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구청의 희한한 '단독 특허'...무산된 행정사무조사 https://omn.kr/276c9
- 10년 전 제품을 8억에?... 강동구청의 '이상한' 수의계약 https://omn.kr/279jc
- "수의계약에선 빈번..." 꼼수 문서 만드는 공무원들 https://omn.kr/27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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