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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감독의 사후약방문, 아시안컵 4강 유효슛 0

[2023 AFC 아시안컵 4강] 한국 0-2 요르단

등록|2024.02.07 09:22 수정|2024.02.07 09:22
주장 손흥민은 종료 직후 인터뷰 첫 마디 입을 좀처럼 열지 못했다. 감독의 처방이 상대 팀에게 안 먹힐 수는 있지만 너무 늦었다는 것을 모두가 보았다. 후반 추가시간 6분 왼쪽 옆줄을 따라 홀로 드리블하며 요르단 수비수들을 따돌리는 선수는 손흥민 뿐이었다.

교체 선수로 들어간 포워드 조규성은 요르단 수비수 뒤에서 기다리기만 했고, 페널티킥을 얻어내겠다는 시뮬레이션으로 경고 기록만 남기고 고개를 숙였다. 유효슛 기록 하나도 없이 종료 휘슬 소리를 들어야 하는 우리 선수들 모두가 쓸쓸해 보였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6일(화) 밤 12시 카타르 알 라얀에 있는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3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4강 게임에서 요르단에게 0-2로 완패하며 64년 만의 우승 꿈을 접고 말았다.

'네가 해줘' 축구의 한계 실감

이번 대회 요르단 선수들이 보인 장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코칭 스태프의 대응은 환상에 그쳤던 것으로 보인다. 상대 팀 에이스 무사 알 타마리의 왼발 역습 드리블과 킥 수준을 처음 겪은 것도 아닌데 어설프면서도 늦은 대처는 선수들이 안쓰러워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웠다.

가운데 미드필드가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것이 전반부터 눈에 띄었는데 하프 타임을 이용하여 효율적인 대처 방안을 내놓지 못한 것은 코칭 스태프 입장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다.

결국 후반 시작 후 8분도 안 되어 바로 그곳 미드필드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나오는 바람에 알 나이맛에게 첫 골(53분)을 내줬다. 이런 아찔한 순간은 이미 전반에 몇 차례 예고되었기에 더 허망하게 보였다. 27분 센터백 김영권의 패스 미스로 밀린 우리 선수들은 요르단 에이스 알 타마리에게 왼발 중거리슛을 내준 것이다.

42분에도 알 타마리의 패스를 받은 야잔 알 나이맛이 우리 수비수 셋을 따돌리고 골문 바로 앞에서 오른발 아웃사이드 유효슛을 날렸고, 조현우 골키퍼가 바로 앞에서 얼굴로 막아내야 할 정도였다.

요르단의 핵심 공격 방법인 '무사 알 타마리'의 드리블 돌파, '야잔 알 나이맛'의 공간 침투가 눈에 확 띄는 첫 골이 나왔다. 이 둘은 전반처럼 결정력 실수 없이 완벽한 작품을 53분에 만들어낸 것이다. 알 타마리의 기막힌 어시스트를 받은 야잔 알 나이맛의 오른발 찍어차기 골은 타이밍이나 강도가 완벽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가운데 미드필더 박용우가 센터백 김영권을 향해 준 패스 미스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보여준 셈이다. 이러한 미드필드 쪽 문제가 53분에 분명히 드러났는데 한국 벤치에서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다. 여전히 에이스라 불리는 핵심 선수들 몇에 의존하는 '네가 해줘' 축구 뿐이었으니 요르단 필드 플레이어들은 이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는 그들이 준비한 공간 압박, 맨투맨 수비 방법을 흔들리지 않고 펼쳐냈다.

클린스만 감독은 실점 후 3분만에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를 빼고 원 톱 스트라이커 조규성을 들여보내는 무리수를 뒀다. 아무리 핵심 수비수 김민재가 경고 누적 징계로 나오지 못했지만 심각한 구멍이 생긴 곳은 미드필드였는데 그 자리를 그나마 지켜야 할 핵심 선수를 빼고 맨 앞 공격 라인에만 변화를 준 것이다.

황인범도 모자라 손흥민, 이강인도 2선으로 내려와 공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지만 원 톱 한 선수만 올려 세워놓고 크로스를 시도하는 변화는 요르단도 충분히 예상했던 수순이었다.

그러다보니 13분 후에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추가골까지 얻어맞았다. 이번에도 황인범이 버티고 있는 가운데 미드필드가 무너진 것이다. 그 틈을 타 니자르 알 라쉬단의 짧은 패스를 받은 요르단 에이스 알 타마리가 마음대로 공을 몰고 들어오다가 왼발 중거리슛 골을 우리 골문 왼쪽 구석으로 정확하게 차 넣은 것이다. 센터백 김영권이 뒷짐을 지고 스탠딩 태클을 시도했지만 거리도, 타이밍도 맞지 않았다.

울타리가 처참하게 무너져 소들이 다 도망간 외양간 꼴로 변한 한국 팀은 두 번째 골을 내준 뒤 15분이나 지나서야 교체 카드 두 장을 겨우 내밀었을 뿐이다. 양현준과 정우영이 들어갔지만 호주와의 8강 게임처럼 흐름이 바뀌기를 기대할 수준이 아니었다. 요르단 선수들이 좀처럼 공간 압박 수위를 풀지 않은 것이다.

70분에 한국 특유의 '네가 해줘' 축구가 통하는 것처럼 손흥민과 2:1 패스를 주고받은 이강인이 결정적인 슛 기회를 골문 바로 앞에서 잡았지만 요르단 수비수 아부 하쉬쉬의 슈퍼 태클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88분에도 조규성은 상대 골키퍼 야지드 아부라일라와 1:1로 맞서는 기회를 잡았지만 결정적인 슛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바라아 마리의 태클에 공 소유권을 잃어버리며 넘어지고 말았다. 이에 모하메드 하산 모흐드(아랍에미리트) 주심은 조규성에게 시뮬레이션에 따른 옐로 카드를 꺼내들었다. 추가 시간이 8분이 공지됐지만 우리 선수들은 더이상 요르단 골문을 위협하지 못하고 공만 돌리다가 물러난 것이다.

요르단이 17개의 슛을 날리며 7개의 날카로운 유효슛(적중률 41.2%)을 기록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의 슛 기록은 초라한 수준이었다. 8개의 슛 기록 중 유효슛은 1개도 없었다. 전반 손흥민의 로빙 슛이 요르단 골문으로 바운드되어 들어갔지만 차이가 눈에 띄는 오프 사이드 포지션이었고, 황인범의 오른쪽 낮은 크로스를 받은 이재성의 헤더슛(32분)은 상대 골문 오른쪽 기둥을 때리고 나왔다. 후반 교체로 들어가 4분만에 조규성의 결정적인 헤더슛이 이강인의 오른쪽 코너킥으로 나왔지만 마침 비어있던 요르단 골문 크로스바를 넘기고 말았다.

'한국 69.6%, 요르단 30.4%'의 볼 점유율 차이는 형식적으로 넘겨도 크로스 숫자에서 거의 세 배의 차이(한국 29개, 요르단 11개)를 보였지만 실제 크로스 적중률(요르단 46.5%, 한국 27.6%)은 완패 결과를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했다.

이렇게 4만2850명 대관중 앞에서 한국을 상대로 역대 최초 승리를 거둔 요르단(A매치 1승 3무 3패)은 10일(토) 밤 12시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결승 무대에 처음 올라가는 새 역사를 쓴 것이다.

2023 AFC 아시안컵 4강 결과
(2월 6일 밤 12시,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 알 라얀)

한국 0-2 요르단 [골-도움 기록 : 야잔 알 나이맛(53분,도움-무사 알 타마리), 무사 알 타마리(66분,도움-니자르 알 라쉬단)]

◇ 한국 선수들(4-3-3 포메이션)
FW : 황희찬(81분↔양현준), 손흥민, 이강인
MF : 황인범, 박용우(56분↔조규성), 이재성(81분↔정우영)
DF : 설영우, 김영권, 정승현, 김태환
GK : 조현우

결승 일정
요르단 vs {이란 - 카타르 승리 팀} (2월 10일 밤 12시, 루사일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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