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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화성시는 무엇인가? 이 질문의 답은...

[100만 화성시에 바란다 ⑨] 김민환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부교수

등록|2024.02.08 15:30 수정|2024.02.08 15:30

▲ 김민환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부교수 ⓒ 화성시민신문

  지난 1월 9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도시사회센터의 초청으로 한 학술심포지움에 참석하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학술심포지움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매우 이론적이고 추상적이며 쉬운 내용도 어렵게 말하는 현학적인 특성을 띠는 경향이 있다.

그 자리에서도 불평등, 기후 위기, 민주주의의 후퇴, 투기적 도시화 등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난제와 위기를 도시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방안으로 '포용 도시(inclusive city)', '스마트 도시', '공평한 도시(equitable city)', '회복력 도시(resilent city)', '역량강화 도시(enabling city)', '공유 도시', '커먼즈 도시(city as commons)' 등 대안적 도시 모델들이 현란하게 이야기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추상적인 이야기의 끝에 구체적인 대상으로서 화성시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물론 경기 화성시가 앞에서 말한 대안적 도시 모델의 모범적 사례로서 언급된 것은 아니며 지금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주목받은 것도 아니다. 단지 어떤 궁금함이 한 참석자로부터 제기되었고, 그로부터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캐나다의 명문대학인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화성시의 반도체 산업과 도시 발전을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 중인 한 연구자가 "도대체 화성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한 것이다.

화성시는 무엇일까

반도체 산업과 직접 관련 없는 저 거대한 지역이 존재하는 화성시를 마치 반도체 산업에 의해 움직이는 도시라고 오해받을 만한 제목을 쓰는 것이 계속 부담된다고 했다. 자기 박사논문과 상관없이 화성시는 알면 알수록 도시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도시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가 이런 질문을 던진 계기는 지금 돈과 사람, 인프라가 경기남부 지역으로 몰리고 있고 그 중심에 화성시가 있다는 어느 참석자의 발언 때문이었다.

화성시민인 나는 당연하게도 이 주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도시를 연구하는 다른 많은 학자들도 화성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드러냈다. 어느 행정학자는 인구 100만 이상의 특례시가 될 화성시 거버넌스(governance) 체제의 변화를 눈여겨 볼 것이라고 했다. 이분께 나는 화성시가 특례시가 되면 시장이나 정치인, 공무원이 아닌 내 삶에 과연 어떤 변화가 있을지를 물어 보았다. 작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길거리에 무수히 걸려 있는 인구 100만 달성 축하 플랭카드를 보면서 들었던 의문이었다. 화성시민들이 이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을 들었다.

경제지리학자와 도시공학자는 각각 수도권의 1기 신도시 건설 이후 모든 신도시가 갖고 있던 문제, 즉 서울의 '베드타운화'라는 문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기능을 갖는 도시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화성이기 때문에 여기를 주목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떤 학자 한 명은 자신이 '화성시 대중교통정책 고도화 연구용역'팀의 일원으로 참여했다며 화성이 독자적인 기능을 갖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도시의 '구심력'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른 도시, 특히 서울과 연결되는 교통수단을 늘리고 편의성을 높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화성 내부를 연결하는 교통인프라의 획기적인 개선이 없다면 화성은 통합된 하나의 도시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는 화성시가 '고향'인 아이들의 관점에서 화성시를 바라볼 좋은 기회라고 덧붙였다.

연구용역을 위해 청소년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자의 55.1%가 화성에서 태어나 계속 거주하거나 화성에서 10년 이상 거주했다고 답을 했다고 한다. 표집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긴 하지만 이것은 주목할 만한 수치이다. 화성시의 교통에 대해 그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직접 들어 보자.

"대학에 진학하는 순간 교통격차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하게 되고 결국 자가용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화성을 둘러보는 활동을 하고 싶다", "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이 청소년들이다", "고등학교 통학노선 만들어 주세요."

화성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있는, 곧 '고향'이 화성인 아이들에게 이런 교통시스템을 갖고 있는 화성은 어떤 도시일까?

화성이라는 지명을 이용해 누구나 알만한 농담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학원가, 자동차 중심 도로,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학군, 대규모 아파트 단지, 대형 복합 상업단지, 부동산 가격 인상 등을 중심으로 화성이라는 도시의 삶이 배치될 경우, 화성은 그 어떤 대안 혹은 고유한 특성을 가진 도시가 될 수 없다.

이 화성은 '지구 위의 화성'일 뿐이다. 그럼 '지구 밖의 화성'은? 혹은 지구에는 없는 화성은? 쓰레기 제로 카페, 공유 공간, 자전거 전용도로, 대안적 에너지 시스템, 지역 화폐, 지역 순환 경제/사회적 경제 기반, 사회 주택, 공동체 토지 신탁, 공동체 돌봄 네트워크 등을 중심으로 도시의 삶이 배치되는 화성이다.

'지구 위의 화성'이라는 농담이 야유를 동반한 실소로 끝났다면, '지구 밖의 화성'이라는 농담은 도시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해 짧지만 강력한 침묵의 순간을 만들어 내었다. 학술심포지움의 목적이 대안적 도시 모델을 검토하는 것이었는데, 이 농담만큼 이 목적을 달성시킨  논문이나 발표는 없었다.

화성시 인구가 100만이 되었다고 축하하는 많은 플래카드를 보면서도 왜 축하해야 하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지구 밖의 화성'에 대한 상상과 기대를 100만 인구 달성 축하와 간신히 연결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시점이 혹시 화성이 지구 밖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아닐까? 그렇다면 화성시 인구 100만 달성을 축하할 수 있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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