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배우는 직업" 너무나 인간적인 최민식의 진솔한 고백

[리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록|2024.02.15 16:03 수정|2024.02.15 16:03
"신구, 이순재, 나문희, 김영옥 선생님처럼 죽을 때까지 연기하는 게 꿈이다. 사람과 세상을 관찰하고 연기하는 게 배우라는 직업이다. 사람과 인생에 답이 있나? 변화하는 세상을 알아가 야하는 배우에게 '졸업'이란 없다. 평생 배우라고 해서 배우인가 싶다. 나이먹을수록 오히려 궁금한 것도, 해보고 싶은 작품도 더 많아진다."

친근하고 인간적인 '민식이 형'의 진솔한 고백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자아냈다. 2월 14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명배우 최민식이 출연하여 자신의 인생과 연기철학을 전했다.

신작 <파묘>로 돌아온 최민식은 1990년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로 데뷔한 이래 30여 년이 넘도록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대표작 <올드보이>를 함께한 거장 박찬욱 감독은 최민식을 가리켜 "'배우'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 배우 그 자체인 사람"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한 장면. ⓒ tvN


카리스마 넘치는 작품 속 이미지와 달리 최민식은 현장에서 소탈하고 후배들과도 격의없이 지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 시상식장에서 만난 유재석이 뜬금없이 팬심을 고백하자 최민식이 웃으며 손키스를 날려주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민식은 "워밍업을 하는거다. 분위기가 부드러워야 현장도 유연해지고 덜 긴장한다. 특히 처음 만나는 배우들은 연장자가 다가가서 분위기를 풀어야 한다. 제가 가만히 있으면 다가오니 힘드니까"라고 자신만의 배려 노하우를 밝혔다.

소속사가 없는 최민식은 지금도 촬영장을 손수 운전해가며 매니저없이 혼자 다닌다고 소탈한 면모를 밝혔다. 촬영지가 멀면 하루 전날 일찍 도착해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유를 즐긴다고. 출연료 협상도 직접 한다는 최민식은 "처음엔 조금 불편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별거 아니더라"고 밝히면서 "출연료가 내 생각과 차이가 있을때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고 이야기하면 된다"고 쿨하게 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최민식의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1994년 MBC 드라마 <서울의 달>을 빼놓을 수 없다. 전작 <야망의 세월>의 반항아 '꾸숑'역으로 청춘스타로 등극했던 최민식은, 후속작 <서울의 달>에서는 순박한 시골청년 '춘섭' 역으로 완벽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며 연기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최민식은 "처음부터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 학교가 다니기 싫어서 방황하는 최민식은 당시 의정부 중앙극장에서 하루종일 영화를 보거나 잠을 자는 것으로 소일하다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연스럽게 영화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나도 저런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대표작 <올드보이>의 제작비화

대표작 <올드보이>의 제작 비화도 전했다. 최민식은 당시 임승용 프로듀서를 만나 영화 기획 소식을 듣고 원작인 일본만화를 받았지만 처음엔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 중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과 셋이서 미팅을 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15년 동안 통제한다'는 설정에 동시에 꽂혀서 일사천리로 영화 제작이 결정됐다고.

박찬욱 감독은 한달여의 시간을 가지고 스토리를 완전히 각색했다. 다시 모인 자리에서 최민식은 대본을 읽자마자 "기가 막히더라"고 감탄했다고. 하지만 한편으론 근친 등 파격적인 설정과 결말에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로 투자가 가능할까"라는 걱정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올드보이>가 개봉한 후 '지나치다'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또한 최민식은 <올드보이>에서 롱테이크로 유명한 '장도리 액션 신'을 이틀 동안 17번이나 찍으면서 체중이 무려 5kg나 빠질 정도로 고생했다고 한다. 최민식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런 현장이 다시 있을까 싶다. 몸은 정말 힘들었지만,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미쳐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어"작품 결과도 좋으면 좋지만, 우리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질감의 작업을 했느냐가 진짜 남는 것이니까. 함께한 과정이 좋을 때 그 포만감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한 장면. ⓒ tvN


개봉 후 <올드보이>는 해외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후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데 크게 기여한 작품으로 꼽힌다. 칸 영화제에서는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최민식은 당시 심사위원장이자 한국영화의 광팬으로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참 말이 많더라. 식사 자리에서 입에 거품이 물 정도로 이야기를 하는데, 오죽하면 내 접시를 (침이 튈까봐) 손으로 가려야 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최민식은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가장 중요한건 대본을 많이 봐야 한다. 그리고 대본을 쓴 감독과 수도 없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감독이 어떤 인간인가' '이 작품을 통하여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최민식은 "대본은 그저 외운다고 외워지지 않는다. 이 시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말투는 어떨까. 배역에 이입하여 그 사람과 자꾸 가까워질수록 저절로 그 말이 외워진다"며 자신만의 노하우도 밝혔다.

최민식은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내가 하고싶은 일을 지금까지 하면서 밥벌어 먹고 살고 있구나. 이게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담담하게 평했다.

요즘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몰입해 있는 현장을 보면서 최민식은 "살아있다는 게 느껴지고 지금 이 현장에 내가 있다는 게 고맙다"라며 "그럴 때마다 문득 새삽스럽게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지, 내가 어릴때부터 좋아했던 일이지'라는 걸 자각하고 감사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최민식은 "죽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 최민식은 신구, 이순재, 김영옥, 나문희 등 아직도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대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분들이 정말 큰 가르침을 주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최민식은 배우의 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우리의 작업은 죽어야 끝나는 작업이다. 배우는 사람과 세상을 관찰하는 직업이다. 힘들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다. 이건 죽을 때까지 하는 공부다. 아직도 만져보고 냄새맡고 맛보고 싶은 작품들이 너무 많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더 즐기고 더 느끼면서, 더 제대로 하고 싶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