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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수록 의심하는 남녀, '뇌 과학'이 알려준 비밀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98] tvN <세작, 매혹된 자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공격성

등록|2024.02.21 14:35 수정|2024.02.21 14:35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사랑할 땐 살기를 바라고, 미워할 땐 죽기를 바라는 그 변덕스러운 모순!'

tvN 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의 임금 이인(조정석)은 선왕이었던 형 선(최대훈)이 남긴 이 말을 늘 기억하며 지낸다. 그리고 드라마는 곳곳에서 이런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극의 큰 줄기인 인과 희수(신세경)의 사랑조차 커다란 모순을 품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세작, 매혹된 자들>의 인과 희수의 사랑은 여느 드라마들처럼 헌신적이지도, 마냥 애틋하지만도 않다. 둘은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고 공격하며 때로는 상대가 죽기를 바란다. 그런데 나는 이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사랑이 무척이나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지고지순한 사랑보다 더 현실적인 '진짜 사랑'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랑과 공격성은 서로 반대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하기 때문이다.

<세작, 매혹된 자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공격성, 그 매력에 대해 탐구해본다.
 

▲ 사랑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 ⓒ tvN

 
사랑과 존경이 분노로

청나라와의 전쟁 후 여전히 고통이 남아 있던 시절. '바둑 천재' 희수는 남장을 한 채 내기 바둑을 두어 바둑판을 획득하고 이를 팔아 청에 끌려간 조선인들의 속환금을 마련하며 지낸다. 그 무렵, 청에 볼모로 가 있던 진안대군 인이 돌아오고 희수는 청에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애쓴 인을 마음속으로 흠모한다. 그러다 우연히 인을 만나 바둑을 두게 되고, 그를 연모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인 역시 희수를 남성으로 인식하면서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둘은 우정을 가장한 사랑을 쌓아간다. 그러던 중 인의 형인 임금 선이 세상을 떠나고 인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왕의 죽음과 관련해 희수와 그의 절친한 벗 홍장(한동희)은 인이 '세작'이라고 거짓 고변을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이에 희수는 왕이 된 대군에게 "망형지우로서 청이라며 홍장만은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하지만, 인은 "임금에겐 충신과 정적만이 있을 뿐 친구는 없다"며 매몰차게 대한다. 결국 홍장은 세상을 떠나고 희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 그 후 3년을 희수는 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버틴다. 그러던 중 임금이 부를 때마다 바둑을 두는 '기대령'을 선발한다는 소식에 희수는 응하고, 기대령이 되어 다시 인과 조우한다. 둘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면서도 이번에도 묘하게 끌린다. 희수는 역심과 애정을 동시에 품고 인을 대하고 왕이 된 인은 "너를 죽이는 건 숨 쉬는 것 보다 쉽다"고 겁박하면서도 곁에 둔다.

마침내 희수가 여자임을 알게 되고 서로에게 연모하는 마음을 고백한 8회 이후에도 둘은 끊임없이 경계한다. 희수는 "연모하는 마음까지 반정에 이용할 것"이라 다짐한다. 인은 희수에게 마음을 열면서도 희수가 자신 몰래 행한 일들이 알려질 때마다 분노하고 다시금 긴장한다.

사랑과 공격성은 공존한다

도대체 이들은 왜 사랑하면서도 온전히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분노하며 상대를 경계하는 걸까?

뇌과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랑할 때 느껴지는 기분, 특히 성애와 관련된 부분에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깊이 관여한다. 그런데 남성 호르몬으로 알려진 이 호르몬은 '공격성'을 갖게 하는 호르몬이기도 하다. 이는 사랑과 공격성이 생물학적으로도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별 감정이 없는 사람이 우리를 배신했을 때는 그다지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가 배신했을 때는 심한 분노를 느낀다. 사랑할수록 분노도 커지는 법이다.

심리학적으로 봐서도 그렇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빠져들어가며' 사랑을 시작하고, 그러면서 스스로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사랑에 빠졌을 때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어이없어 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감정은 황홀하고 기분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저 사람에게 빠져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도 한다. 그래서 사랑하면 좋으면서도 두려워 지고, 두려움은 경계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가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인간 심리의 양대 에너지로 꼽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여기서 로맨틱한 사랑을 연상시키는 '에로스'는 생의 에너지를, '타나토스'는 죽음을 향한 에너지 혹은 파괴적인 충동을 뜻한다.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도 이 두 에너지는 늘 함께한다. 즉, 사랑과 공격성은 우리 삶에 언제나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희수와 인의 모순되어 보이는 사랑은 매우 현실적이고 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줬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말로 낭만적 사랑에 대한 우리들의 환상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 희수는 왕과 바둑을 두는 '기대령' 되어 인의 마음을 살핀다. ⓒ tvN

 
취약성을 인정하고 솔직해질 때

그렇다면, 사랑을 하면 늘 긴장하고 모순된 채로 혼란스럽게 지내야 하는 걸까? 그래야 한다면 사랑은 너무나 힘든 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 모순을 잘 다스리고 긴장의 끈을 늦추고 사랑의 나긋한 매력을 느끼며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이 긴장과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걸까. 드라마는 이 지점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인은 희수가 여인이며 서로가 연모하고 있음을 확인한 후, 태도가 달라진다. 자신의 취약한 부분들을 드러내고, 희수에게 처한 조치들에 대해서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10회).

"힘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용상을 지키는 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보다 언제나 먼저여야 했다."

"내가 말없이 환궁하고 근신의 벌을 내린 이유는 조정에서 너를 공격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고, 행동의 이유를 희수에게 솔직하게 설명하자, 희수는 자신의 인에 대한 연모의 마음을 비로소 받아들인다. 이후 희수 역시 솔직함으로 응답한다. 11회 인 몰래 예친왕과 혼인해야 할 장령공주(안세은)와 나인을 바꿔치기 했을 때, 희수는 이것이 알려질 위험에 처하자 인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한다. 인은 희수의 말을 믿고 공주의 안전을 도모한다. 그러자 이제 희수는 자신이 복수하려고 했던 인이 진짜 인의 모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는다. 경계와 의심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하지만, 인의 진심을 보기 위해 애쓴다.

이처럼 사랑과 공격성의 팽팽한 끈은 취약함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이를 드러내며,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때 느슨해진다. 그리고 이럴 때만이 사랑의 나긋함에 긴장을 풀고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희수와 인이 서로에게 마음을 연 후에도 줄곧 다시 긴장하듯, 그 끈은 언제든 다시 당겨질 수 있겠지만 말이다.
  

▲ 희수와 인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에 빠져든다. ⓒ tvN


책 <마음의 여섯얼굴>에서 정신과 전문의 김건종은 '사랑'을 성욕, 낭만적 끌림, 애착의 세 가지 뇌 회로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성욕은 공격성, 낭만적 끌림은 중독과 우울, 애착 시스템은 불안과 공황과 연결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바탕으로 '분노하지 않고, 중독될 수 없고, 우울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고 결론 짓는다. 이처럼 사랑은 모순되고 양면적인 감정들의 집합체이다. 결국, 취약함을 받아들이고 상처받고 공격받을 각오를 해야지만 우리는 사랑의 긍정적인 측면 또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세작, 매혹된 자들>엔 이런 역설을 품은 대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내게는 역심이 곧 충심이니." (7회, 인)
"임금은 힘이 있지만 힘이 없다." (10회, 인)


사랑이 그렇듯, 우리의 삶도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것 아닐까? <세작, 매혹된 자들>을 통해 이런 삶의 양면성을 성찰해 볼 수 있기를, 그래서 모순된 감정들을 조금 더 수용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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