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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간 조롱 받던 연예인... 결말이 더 씁쓸하다

[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대중문화 예술인들의 직업 환경은 과연 괜찮은가

등록|2024.02.26 18:27 수정|2024.02.26 18:27

▲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의도치 않게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실수를 할 때다. 나 혼자 비판을 받으면 괜찮은데 대부분은 '어느 단체 활동가가 그랬다더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돈다. ⓒ 픽사베이


'활동가 스트레스'라는 게 있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아니고 사실은 나를 비롯하여 소수의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하지만 시민사회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엇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나를 단순히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단체에 소속된 활동가로 인식한다. 예를 들어 내가 SNS로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나와 인맥이 직간접적으로 닿아 있는 사람들은 '신필규가 무슨 말을 했다더라'가 아니라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신필규가 무슨 말을 했다더라'라고 말한다. 대부분 비영리 단체가 가진 주요 자원이 '사람'이고 이들이 외부로 나서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트레스라는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이런 환경이 편하기 보다 압박이 될 때가 많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의도치 않게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실수를 할 때다. 나 혼자 비판을 받으면 괜찮은데 대부분은 '어느 단체 활동가가 그랬다더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돈다.

사실 양심 고백을 하자면 나조차도 그렇게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래서 어느 자리를 가든 긴장을 하게 된다. 활동가들끼리 편하게 술이나 마시자고 모여도 사적으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 섞이면 언행에 신경 쓰게 된다. 윤리적인 부분 만이 아니라 단체의 이해가 엮인 일에 대해 경솔하게 말을 하는 건 아닌지 계속 주의하게 된다. 매우 피곤한 일이지만 이 일을 계속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일과 전혀 무관한 사람을 만날 때는 이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기도 하다.

단순한 말실수가 1년 간의 조롱으로 이어지다

이런 스트레스를 다시 떠올린 건 약 한 달 전 그룹 뉴진스의 멤버 민지가 사과문을 발표한 일을 보면서였다. 한 달이나 지난 이슈를 왜 이제야 이야기하느냐고 질문할지 모르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이 일을 이해하는데 정확히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발단부터 전개와 결말까지 상식적인 부분이 하나도 없다.

민지는 작년 초에 출연한 방송에서 '칼국수가 뭐지?'라는 발언으로 1년 동안 놀림을 받았다. 때로 대중들이 대수롭지 않은 일로 밈(meme)까지 만든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게 그럴 일인가 싶었다. 기상천외한 말실수는 누구나 한다. 가령 나는 직장 동료가 임시 보호 중이던 강아지 이름을 두 번이나 잘못 부르는 대형 실수를 한 적이 있다. 한 번은 '짱구'라고 그랬고 나머지 한 번은 '여포'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강아지의 이름은 '앤디'였다.
 

'뉴진스' 민지 ⓒ 이정민


한 번이면 웃어 넘길 수 있는 깐족거림도 영겁으로 반복되면 분노를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이 '칼국수 조롱'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실은 이 말도 안 되는 조롱이 1년이나 지속된 것을 생각하면 민지의 반응은 상당히 평이한 편이었다. 민지는 라이브 방송을 통해 이 놀림을 언급하며 '여러분 제가 칼국수를 모르겠어요?'라고 응수했다. 솔직히 나라면 '이제 지겨우니까 주접 좀 그만 떨어라'고 했을 텐데 1년이나 놀림을 받은 사람치고 민지는 담담하게 조롱을 맞받아쳤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일은 정말 비상식적이었는데 팬 소통 플랫폼에 민지의 사과문이 올라왔다. 이유는 라이브 방송에서 보인 자신의 언행이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대체 누구에게? 1년 동안 칼국수를 가지고 자신을 조롱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는 아이돌의 사과문이란 개인이 혼자 결정해서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며 여기에는 소속사의 판단이 깊게 개입함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연예인은 늘 대중에게 고분고분 해야 할까

사실 서두에서 언급한 활동가 스트레스를 내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일단 그 강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큰 이유는 거기에는 어느 정도 합리적인 면도 있다. 시민사회 단체 종사자로서 나는 주로 사회 정의를 추구하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기 위한 노력을 한다. 윤리적인 가치와 매우 밀접한 일을 하는 셈인데 이런 사람이 실제로는 매우 부당한 일을 일삼고 다닌다면 그건 매우 모순적이고 표리부동하다. 그래서 다른 직군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을 요구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만약에 의사가 건강에 매우 해로운 음식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추천하고 다녔다고 생각해보라. 두 배의 배신감이 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이돌은 어떨까. 물론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이들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윤리를 져버리지 않고 교양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건 맞다. 그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니까. 여기에 그게 진짜건 아니건 이들이 선량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 좋을 것이다. 왜냐면 나쁜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상할 정도로 아이돌들에게 높은 수준 윤리를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 사실 윤리조차도 아니다. 대중은 연예인들이 매사 반듯하고 흐트러짐이 없으며 늘 친절하고 때로는 고분고분하기를 바란다. 1년이나 말도 안 되는 놀림을 받은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차도. 그들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순간이라면 어느 때든.

대중문화 예술인들의 직업 환경은 과연 괜찮은가
 

▲ 내가 찍혔는지도 몰랐지만 굉장히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나온 사진이 누군가의 SNS 피드에 올라가 있는 건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그들이 상상도 못할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리란 건 뻔한 일이다. ⓒ 픽사베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대중문화 예술인들, 특히 아이돌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직업환경이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생활 필수품으로 가지고 있는 모바일 기기에 카메라가 장착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을 24시간 아무 때나 배포할 수 있는 플랫폼이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이런 시대에 속해 있으니까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과거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는 개인이 자기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노출될지를 통제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찍혔는지도 몰랐지만 굉장히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나온 사진이 누군가의 SNS 피드에 올라가 있는 건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 가진 직업 자체가 거대한 익명의 대중을 마주하는 사람은 어떻겠는가. 그들이 상상도 못할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리란 건 뻔한 일이다.

아이돌 가수의 삶은 겉보기에는 화려하다. 하지만 이 직군에서 버티기 위해선 고강도의 노동을 견뎌야 한다. 나는 예전에 한 아이돌 가수의 브이로그를 보고 경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음악방송 하나에 출연하기 위해 이들은 새벽부터 메이크업을 받고 아침부터 리허설을 하고 사전영상을 찍고 늦은 오후에서야 무대에 올랐다. 그 사이사이 이들은 SNS에 올라갈 사진과 영상을 찍거나 쪽잠을 자고 이 모든 게 끝난 다음에는 팬미팅을 하러 갔다.

노래 하나가 발표되면 이 일정이 계속 이어진다. 당연히 힘들다. 이런 환경에서 24시간 내내 웃고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구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장소에서건 특히 대중을 마주했을 때, 이들이 조금이라도 굳은 표정을 보이면 그건 예상치 못한 누군가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다. 그런 표정을 지은 맥락과 정황은 깔끔하게 증발해버린다. 그리고 그 아이돌이 약간에 구설에라도 휘말리면 사진 속 모습은 그가 '애초에 싸가지가 없는 인간'이라는 증거가 되어 각종 SNS를 떠돌게 된다. 이런 일을 한두 번 마주한 게 아니다.

이 글에서는 뉴진스의 민지만 언급했지만 사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연예인들을 태도를 둘러싼 사람들의 입방아는 꾸준히 이어졌다. 이제는 그런 일이 발생하는 주기가 확연히 짧아지는 느낌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와 시대의 변화가 만나 만들어진 어쩔 수 없는 흐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다시금 진지하게 질문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대중문화 예술인들이 처한 직업적 환경이 정말로 괜찮은 상태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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