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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그후, 일본은 유임, 중국은 교체, 한국은 혼돈

등록|2024.02.25 12:29 수정|2024.02.25 12:29
나란히 '악몽의 아시안컵'을 겪었던 한·중·일 동아시아 축구 3국이 대회 이후 대표팀 재정비에 돌입했다. 하지만 방향은 엇갈린다. 일본은 실망스러운 성적에도 불구하고 자국 감독의 재신임을 결정했고, 중국은 다시 한번 외국인 감독을 교체했다. 반면 한국은 클린스만을 경질했지만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후임자 인선을 놓고 아직까지 확실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표류중이다.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한중일 3국은 모두 지난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기대에 못미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 '양강'으로까지 거론됐던 한국은 4강에서 요르단에게, 일본은 8강에서 이란에게 각각 패하여 탈락했다.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 연이어 8강 진출에 성공했던 중국은 조별리그에서 2무 1패 무득점으로 3위에 그치며 일찍 짐을 쌌다.

대회 직후 한중일 3국 대표팀 모두 공통적으로 자국 언론과 팬들로부터 엄청난 비판 세례를 피하지 못했다. 아시안컵 통산 5번째 우승에 실패한 일본 대표팀은 일본 선수들의 지나친 '개인주의'가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받았다. 선수단 대부분이 유럽파로 구성된 일본은 압도적인 전력에도 불구하고 대회 내내 선수들이 아시안컵에 임하는 절실함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본의 핵심선수였던 구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나 도미야스 타케히로(아스널) 등이 아시안컵이 유럽 시즌 중에 개최되는데 "내게 급여를 주는 것은 소속팀이다. 이런 토너먼트 대회에 불리면 강제적으로 참가할 수밖에 없다"고 했던 발언 등은 아시안컵 우승에 대한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되어지 않았던 일본 선수단의 인식을 잘 보여줬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 참여한 일본의 유럽파 선수들은 모두 소속팀에서 보여준만큼의 퍼포먼스를 재현하지 못했다. 선수단 내에서 어려울 때 팀을 독려하며 하나로 끈끈하게 뭉치게 할 만한 리더십을 보여준 선수도 없었다. 사령탑인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 역시 유럽파가 넘쳐나는 선수단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는 평가여서 대회 직후 경질 여론이 높아졌다.

하지만 일본축구협회는 모리야스 감독에 대한 재신임을 결정했다. 일본이 아시안컵에서 탈락한 지 5일 만이었던 지난 2월 8일, 일본축구협회(JFA)는 이날 기술위원회를 열고 "협회는 모리야스 감독을 전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그의 지도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앞으로 더 많은 지원을 통하여 월드컵을 준비해 가기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히며 2026 북중미월드컵까지 모리야스 체제를 유지할 것을 확인했다.

일본이 좋지 않은 여론 속에서도 모리야스 감독을 재신임한 이유는 역시 카타르월드컵에서 보여준 성과 때문으로 추정된다. 모리야스 감독은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서도 예선 초반까지는 저조한 경기력으로 우려를 자아냈으나 결국 본선진출을 확정했고, 월드컵에서는 세계적인 강호인 독일과 스페인을 연파하고 16강에서 크로아티아에게 승부차기 끝에 석패하는 등 놀라운 반전을 이뤄냈다. 또한 아시안컵 직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A매치에서 10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모리야스 감독은 일단 자리는 지켜냈지만 아시안컵에서 크게 흠집이 난 리더십과 선수단의 신뢰를 어떻게 복원할지가 숙제로 남았다. 일본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유럽에서 높은 수준의 전술과 코칭을 경험한 일본 국가대표 선수들이 모리야스 사단의 지도력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성범죄 스캔들에 연루된 이토 준야 사건에 드러난 국가대표 선수들의 인성과 기강해이, 스즈키 자이온의 부진에서 드러난 골키퍼 세대교체 문제 등도 골치 아픈 난제가 될 전망이다.

중국은 감독교체와 함께 또다시 외국인 감독 카드를 선택했다. 중국축구협회(CFA)는 지난 24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중국 축구대표팀이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면서 알렉산다르 얀코비치 감독과의 계약을 해지했다"라고 발표하며 후임으로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브란코 이반코치치 감독을 선임했다"고 알렸다.

세르비아 출신인 얀코비치 전 감독은 지난 2018년 U-19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으며 중국 축구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중국 U-20 국가대표팀과 U-23 국가대표팀을 거쳐 2022년부터 A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얀코비치 감독은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2차예선과 평가전, 2023 카타르 아시안컵 등에서 연이어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결국 1년여 만에 낙마하게 됐다. 무엇보다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무승에 한 골도 넣지 못하는 저조한 경기력으로 중국 팬들의 경질 여론이 빗발친 상태였다.

중국의 후임 감독으로는 카를로스 케이로스, 위르겐 클린스만 등 여러 유럽 감독들이 물망에 올랐고, 중국리그 내 한국 감독인 최강희 산둥 타이산, 서정원 청두 룽청 감독 등도 후보군으로 언급되었으나 본인들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중국이 선택한 카드는 또다시 동유럽 출신의 감독인 이반코비치였다.

1954년생으로 올해 칠순의 노장인 이반코비치 신임감독은 유럽에서 하노버 96(독일), 디나모 자그레브(크로아티아) 등의 클럽을 지휘했고, 이란, 오만 대표팀 등 아시아팀을 지도한 경력도 풍부했다. 2010년 산둥 루넝을 이끌고 중국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중국축구와도 이미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한국은 중국과 북중미월드컵 2차예선에서 같은 C조에 속해있어서 오는 6월 11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이반코비치호' 중국을 홈으로 불러들여 상대하게 된다.

하지만 새 외국인 감독에 대한 대륙내 민심은 시큰둥하다. 중국은 이전에도 마르첼로 리피, 파비오 칸나바로(이상 이탈리아),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스페인),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올림픽대표팀) 등 여러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으나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중국은 해외파 선수들이 거의 전무하고 귀화선수들까지 떠나며 전력이 더욱 악해진 상태다. 체계적인 코칭시스템의 부재로 연령대별 대표팀의 경쟁력도 저조하다. 외국인 감독이 온다고 해도 단기적으로 대표팀의 전력을 급격하게 끌어올리기는 어렵다는 데 대부분의 전망이 일치한다.

반면 한국축구는 아직까지 아시안컵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한국은 아시안컵 직후 클린스만에 대한 경질 여론이 쏟아진 가운데, 선수단 내분 사태까지 폭로되며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다.

여론에 쫓긴 축구협회는 결국 지난 16일 클린스만을 전격 경질했다. 선수단 내분사태의 중심에 있었던 이강인과 손흥민은 최근 런던에서 만나 화해하며 직접 갈등을 풀면서 다행히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정작 후임 감독을 정하는 문제는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축구협회는 최근 후임으로 국내파 감독을 선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시즌을 코앞에 둔 'K리그 현직 감독의 차출설'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면서 K리그 팬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K리그 팬들은 트럭시위 등을 통하여 현직 감독 차출을 반대하며 축구협회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당황한 축구협회는 지난 24일 열린 2차 회의에서 3월 A매치 태국전(북중미월드컵 2차예선)까지는 '임시 감독'에게 일단 지휘봉을 맡기고 6월까지 정식 감독을 영입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하며 한발 물러섰다. 이렇게되면 외국인 감독까지 후보군을 넓혀서 좀더 신중하게 차기 감독을 모색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하지만 K리그 현직 감독 차출의 가능성이 아직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일단 임시 감독이라는 형식으로 K리그 감독을 데려와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만일 태국전에서 결과와 내용이 좋아서 여론이 바뀌게 되면 이를 명분으로 결국 정식 감독까지 선임하는 식으로 우회하려는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직이든 재야이든 어느 감독이 1~2경기만 잠시 지휘봉을 잡는 시한부 감독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할지도 미지수다.

무엇보다 축구팬들은 차기 감독 선임 이슈에 묻혀 이번 아시안컵 사태를 둘러싼 축구협회의 책임론이 묻혀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축구협회는 클린스만의 의문스러운 영입과 지난 1년간 대표팀 운영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하여 아직까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손흥민-이강인의 화해로 선수들끼리 알아서 내부 갈등을 수습하는 동안, 정작 중재와 관리 역할을 해야 할 축구협회는 아무 것도 하지못했다. 여기에 클린스만 경질로 인한 위약금 문제, 후임 감독 인선과정을 둘러싼 방향성과 절차 문제도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모습이다. 중국과 일본에 비하여 혼란한 상황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한축구협회가 과연 어떤 대안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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