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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언니의 죽음, 당황스러운 사람들의 반응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서바이벌 택틱스>

등록|2024.02.26 18:39 수정|2024.02.26 18:39

▲ 영화 <서바이벌 택틱스>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우리가 독립영화에 주목해야 할 이유를 풀어주는 작업

우리는 흔히 영화를 평가하거나 선택할 때 관객 수를 절대적 척도로 인식한다. '천만 영화'는 다 이유가 있어서이고, 개봉하지 못하거나 극히 소수의 상영관밖에 얻지 못해 소리소문없이 명멸해가는 숱한 영화들은 아무래도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인정되는 것이다. 물론 흥행작은 그만큼 대중적인 평판과 함께 특출한 장점 혹은 이유를 지닌다. 하지만 반드시 관객 스코어에 비례해 영화의 가치가 평가될 순 없다. 물론 반편향으로 영화의 수준이 너무 높아 대중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자기위로도 썩 바람직한 건 아니긴 하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영화는 상업 흥행을 우선과제로 놓고 모든 게 맞춰진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여전히 타 예술 장르에 비해 거대한 예산이 필요하고 그만큼 성공할 경우 경제적 가치는 물론 거대한 사회문화적 파급효과를 지니기 때문에 산업적 측면에서 가장 대중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겠다. 상대적으로 감당 가능한 비용을 대가로 지불하고 향유할 수 있는, 그리고 선택폭이 넓은 영화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상업적 성공을 최우선에 두고 만들어지진 않는다.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딱 그을 순 없지만 해당 작품의 중심이 어디에 놓이는가에 따라 개별 영화에 대한 판단과 척도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상업적으로 친절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지는 영화에 비해 난해하거나 거칠고 불편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독립예술영화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영화를 오직 산업의 이점으로만 보고 평가한다면 무의미한 자폭 혹은 예술 한답시고 자의식 과잉인 소수의 '그들만의 리그'로 폄하할 수 있겠지만, 흥행을 쫓아 획일화될 수밖에 없는 상업영화가 다양성을 잃어버릴 때 '안전망' 역할을 소화함은 물론, 여러 결로 주류사회가 놓치는 지점을 표현해주기도 한다. 사회과학적 접근법과는 다른 형태로 동시대 사회문화에 대한 발언을 작가적 입장으로 드러내기에 특정 시기와 세대, 지역에 대한 소중한 사료 역할도 담당한다. 활자보다 영상이 더 익숙해질수록 영화작가들의 활동은 더 특정한 시공간의 기록이자 상징으로 유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독립영화가 상업영화 대안으로 일정 부분 주목을 받으면서 마치 '산업예비군'화 되어가는 것 아니냐는 일말의 불안 가운데 여전히 평범하지 않은 주제의식과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섬세하고 파격적인 형식을 겸비한 작업은 대중에게 평가될 기회가 지극히 제한된 가운데에도 이어지고 있다. <서바이벌 택틱스> 또한 그렇게 흥행보다는 검증과 반향을 기대하며 날을 벼린 신진 작가의 결기가 돋보이는 새로운 흐름의 일부일 테다.

양파껍질처럼 갈수록 모호해지는 언니의 죽음
 

▲ 영화 <서바이벌 택틱스>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성령'은 죽은 언니 '성희'의 흔적을 정리하는 중이다. 성희가 유학가기 전 다녔던 대학을 방문해 사물함의 유품을 수거하고 학적을 정리하려 한다. 그런데 자매는 쌍둥이라 타인이 쉽게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닮았다. 학과 사무실 조교나 언니를 기억하는 학과 사람들은 성령을 보고 나서 성희가 죽었다는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불신하며 언니를 관심병 환자 취급하는, 말 그대로 '고인 드립'을 일삼는 이에게 상처를 받기도, 쭈뼛거리지만 반가움과 호감을 표시하는 이에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성령이다. 성령은 사실 너무 닮은꼴이라 일상에서 불편한 나머지 성희와 거의 왕래를 하지 않고 살아온 사이다. 언니는 죽었지만 성령이 고인의 생전에도 꺼리던 것처럼, 죽고 나서도 쌍둥이 자매의 숙명은 불편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그와 함께 자신이 언니의 성인이 된 이후 떨어져 산 시간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다는 것을 자각한다.

언니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것인지, 물려받은 것인지 단서만 제시되는 또 다른 유품이 있다. 성령의 거처 방 하나를 차지한 열대어 어항이다. 거의 미니 수족관 급의 규모다. 분명히 생명이 가득한 공간이지만 이상하게 무기물 느낌이 든다. 그저 풍경으로만 존재할 뿐, 성령이 그공간에서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진 않다. 그는 강변을 산책하던 중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는 전단지를 무심코 확인하던 중, 광고에 표시된 사진과 딱 들어맞는 개를 만난다. 개는 천변 건너편에서 성령을 응시하는 중이다. 개를 데려온 다음 전단지에 적혀 있던 주인의 연락처로 연락해 보지만 답은 오지 않는다. 임시보호를 맡은 성령은 개를 돌보며 함께 산책하곤 한다. 연락이 올 법한 시간이 지나도 아직 답은 없고, 성령 또한 초조해하지 않고 자기 반려견처럼 취급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역시 흔히 반려동물과 주인 사이라기보단 무심한 모양새다.

한 남자가 차 안에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고, 블랙박스와 CCTV를 유심히 관찰한다. 보험조사원이 '나이롱' 환자를 감시하고 사고 경위를 뒷조사하는 풍경이다. '우호'는 편집증으로 보일 만큼 집요하게 조사 활동을 이어간다. 정보원을 만나고 조사대상을 미행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대상자가 헬스장에서 호흡곤란에 처하자 그를 구해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얼마 후 그는 성령의 집을 방문한다. 낯선 타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으려는 성령에게 우호는 언니의 편지를 내민다. 그는 성희의 사망사고를 담당하던 중 발견한 유품을 뒤늦게 전달하러 온 것이다. 보험 처리 문제로 모호한 구석이 많은 편지를 사건 당시에 입수해 놓고도 공개하거나 유가족에게 전달하지 않았던 사후 처리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호의 태도는 그저 보험조사원이 잔업 처리를 하러 왔다기엔 통상적인 범주를 뛰어넘는다. 성령이 들어보니 우호는 보험조사원도 얼마 전 그만뒀다고 한다. 원활한 업무를 위해 편지를 은폐하긴 했지만 유가족에게 죄송한 마음이라 사죄 겸 어렵게 찾은 것이라 한다. 성령은 그런 우호가 잘 이해되진 않지만, 자신도 모르는 게 대부분인 언니의 최근 시간과 죽음의 이유에 대해 알고자 그가 제안한 비밀 찾기에 동행하게 된다. 언니 성희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탐문을 이어가지만,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기 쉽지 않다. 편지를 대체 누가 썼는가, 이 편지의 내용은 도대체 어떤 의미와 맥락인지 실체를 추적하면 할수록 더 모호해지는 느낌이다. 배경 정보만 늘어날 뿐, 교차대조를 해봐야 속 시원한 진실은 더 멀어진다. 그들의 여정은 과연 어떻게 끝을 맺게 될까?

이상한 사람들과 불확실한 사건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

 

▲ 영화 <서바이벌 택틱스>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영화는 물리적 상영시간의 거의 2/3 동안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모호한 등장인물들의 행적을 선보인다. 개별 캐릭터의 동선이 나열되는 게 아니라 서로 조응하거나 교차되면서 마치 자석이 끌었다 밀어냈다 하는 것처럼 섞이거나 혼합되는 방식이라 관객은 어디까지가 객관적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상상 혹은 가상의 영역인지 온전히 파악하기 힘든 구조를 전제한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기본적인 설정 판을 얼핏 혼란스럽게 펼쳐낸 뒤 좀 더 전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구조를 취하는 후반 1/3 또한 장르적 특징, 즉 수수께끼를 풀어내어 뭔가 후련한 결말을 마치고 싶은 관객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지점으로 흘러간다. 주인공들이 쫓는 실체적 진실은 이들이 어긋나고 만나는 과정에서 도구적으로 활용되지만 결정적 요소로 고려되는 것 같아뵈진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허탈해하다가도 이들이 비밀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여정과 막간에 툭툭 새어 나온 것처럼 들리는 대화를 곱씹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일반적인 상업영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영화의 주제와 의도를 비로소 발견하는 셈이다.

당황스러운 상황 전개에 혼란해 하다 모호한 결말에 당혹해졌을 관객은 이 영화가 전하려는 게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다 답을 찾게 될 테다. 즉 영화 속 숨겨진 함의와 주제를 관객이 머릿속에서 자신이 체험한 근거와 상상을 통해 (마치 영화 속 주인공들이 수행하는 것과 동일한 절차로) 여정을 수행하는 식이다. 언니이자 조사 대상이던 '성희'의 석연찮은 죽음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출발한 여정에서 '성령'과 '우호'는 동일한 고민을 풀어내고자 도전하는 동업자로서, 마치 홈즈와 왓슨처럼 (남녀 사이의 사적 감정과는 무관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와 공감에 닿게 된다.

그 이전까지 영화 속 인물과 상황은 내내 어긋난다. 풍자로서의 '삑사리'라기보다 타인에 대한 이해 불가능 상황에 초점이 맞춰진 서술이다. 고인인 성희는 물론, 성령이 구조해 임시보호 중인 검정색 리트리버, 전혀 자신에게 도움이 될 리 없는 그만의 '잔업'을 수행하는 '우호' 모두 평범하고 전형적인 척도로 평가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성희는 여러 개의 이유로 미움과 원한을 샀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딱히 사고를 쳤거나 악의를 갖고 타인을 괴롭힌 것 같진 않다. 그가 지녔던 특유의 분위기나 주변 사람들과의 조합에서 묘하게 어긋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별로 미운 짓 한 것도 아닌데 기묘하게 엇나가는 이물감 때문에 고인을 혐오하고 원한을 품었다고 한다. 혹은 이상할 만큼 집착하기도 했음이 드러난다. 그저 평범한 개인의 죽음을 파헤치는 와중에 그가 얼마나 다양한 단면으로 개별의 타인들에게 이미지화되었는지 관객은 하나둘 확인하게 된다.

'우호'는 한쪽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다. 그는 아마 본인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 처리과정에서 독학한 지식과 경험으로 생계를 해결할 겸 보험조사원이 되었을 테다. 영화 내내 그의 업무능력이 탁월한 게 화면을 통해 관객에게 증명된다. 하지만 정작 업무처리에 탁월한 실력을 지녔음에도 보험조사원의 숙명을 소화하기엔 그는 마음이 여리다. 그래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수고를 감수한다. 성령도 왜 이렇게 자기 언니 일에 마음을 쓰냐며 물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우호는 동시에 자신이 조사해 불이익을 줬던 교통사고 당사자에게 지속적으로 공격을 당하는 처지다. 너 때문에 신세 망쳤다며 그 당사자는 집요하게 스토킹하듯 우호를 뒤쫓으며 괴롭힌다. 그리고 식물인간 상태의 부친을 수발하는 스트레스는 우호로 하여금 관객이 보기엔 위태로운 행태를 연상하게 만드는 경우를 거듭 노출한다.

그렇게 영화는 한 길 사람 속을 투시하고 평가한다는 게 지극히 난해한 일이라는 것을 표본추출하듯 관객 앞에 선보인다. 죽은 성희건, 조력자 우호건, 주인공이라 할 성령이건 그들이 보이는 행태는 일관되지 않고 산만해 보일 만큼 울퉁불퉁하다. 관객은 대체 이 캐릭터들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쉽사리 확신하기 어렵다. 그런 표상의 결정체라 할 건 성령이 돌보는 개의 존재다. 전단지를 보고 딱히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던 성령이 개를 구조하지만 나중에 개 주인에게서 온 문자는 그를 당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대체 자신이 데려온 개의 정체는 무엇일까? '맥거핀' 효과처럼 이 검정색 리트리버는 비현실적 존재감으로 변환된다. 사회적 통념으로 규정하는 객관적 진실이란 무엇일까 질문은 계속된다.

결국 '다정함'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 영화 <서바이벌 택틱스>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영화는 20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모더니즘 문학'의 세계관과 묘사를 시각화한 풍경과 전개를 펼친다. 역사책 혹은 미디어에서 '공식'적으로 확립된 객관을 수용하기보다는 대도시의 '시민' 개개인이 단독자로서 자신이 접한 체험에 입각해 각자의 주관으로 품어내는 개별적 시선이 세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수많은 평행세계 혹은 소우주의 시공간이 화면을 점유하는 것이다. 근래 한국독립영화에서 꾸준히 시도되는 영상문학 혹은 에세이 스타일의 접근법과 궤를 같이 하지만 장편 전체를 그렇게 구현하는 건 특기할 만한 도전이다.

그렇게 구현해낸 <서바이벌 택틱스>는 과연 관객에게 무엇을 전하려는 걸까? 그저 세상에 단일한 객관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소 김빠지고 차가운 확인에 그치거나, 혹은 그런 시각을 차용한 미스터리 분위기 효과를 끝까지 추구하려는 걸까? 어떤 의미와 태도인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뭐가 남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관객은 다시 질문을 던질 테다. 그런 의문을 풀어나가는데 단서는 사건의 극적 전개나 대사로 확인되는 지문이 아니라 영상예술에 맞게 제시된다.

음악이 꽤나 중요한 지점마다 활용되지만 무엇보다 대미를 장식하는 재즈 아티스트 '사선(Saseon)'의 곡 'Care'가 의미심장하다.
 
온전했던 시절에 눈 부셨던 시간이 참 억울할 만큼 짧아
내가 아니면 누가 당신을 이해할까 지금의 당신을
누군가 먼저 가야하면 우리는 함께 떠나야해
미련을 머금고 붙잡혀 있었던 이보단 나은 곳에
힘없는 그대 손을 내 손에 맡기면 돼 이제 다 끝나가

아티스트의 곡 배경설명은 대충 이렇다. 텔레비전에서 장기간 투병생활 중인 남편과 간호하는 아내를 보고 수발에 지쳤고 겉보기엔 건조한 관계이지만 서로 함께 하려는 애절한 감정을 담은 곡이라고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뭔가 실마리를 얻으러 갔지만 원하던 건 알지 못한 채 성령과 우호가 목격한 풍경이기도 하다. 그저 곡의 분위기가 아니라 영화가 그저 무미건조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분명히 주인공들에게 감춰져 있던, 그리고 그들이 계속 갈구하던 게 무엇인지 확인하게 해주던 그 풍경과 엔딩 곡의 배경은 고스란히 겹쳐진다.

미스터리를 증폭시키지만 정작 진실은 저 너머에 묻힌 채인, 우호가 성령에게 전달한 편지-성희가 죽기 직전 받은 것이지만 보낸 이는 알 수 없는- 의 내용 역시 영화의 주제의식을 몰래 간직한 보물찾기의 소재다.

해당 편지 내용의 일부는 홍희정 소설가의 단편 <앓던 모든 것>에서 발췌 수록한 것이라 한다. 평생 근현대 한국사회에서 평범한 여성들이 거쳐온 생애주기를 지나 73세 황혼이 된 주인공이 생의 의미를 찾고자 늘그막에 시를 쓰고 스포츠센터에서 아쿠아 로빅을 배우던 중 병명을 모르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21살 청년에게 사랑을 느끼며 일어나는 일들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남들이 당연히 요구하는 삶이 아니라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화자, 어려움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긍정이 소박하게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그렇게 '생존전략'으로 출발한 영화의 이야기는 비록 뭐 하나 속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은 현실의 삶이지만 다정함과 연민이 그 불투명한 세계 속에서 버티고 나아가는 데 핵심이란 소박한 진심을 전하려 한다. 이 영화가 과잉된 형식 실험에 머물렀다고 단견하는 것보다 감독이 군데군데 보물찾기처럼 대놓고 드러낸 그런 장치들을 하나씩 찾아내며 감독의 진심과 관객의 진심이 조응해 세상을 견딜 온기로 발화되기를 기원하며.
 
<작품정보>
서바이벌 택틱스 Survival Tactics
2021│한국│드라마
2024.02.21. 개봉│114분│12세 관람가
감독 박근영
주연 성령(윤성령/윤성희 역), 최원용(이우호 역)
출연 기윤(정철 역), 계영호(충권 역), 손예원(서이 역), 최중재(우호 부 역),
이재원(헬스남 역), 아인(두부 역), 안영모(안경사 역), 이주용(블랙박스 판매남 역)
우정출연 장준휘(억울한 남자 역)
제작 요지경필름
배급 필름다빈

2021 47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시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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