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총선 앞두고 의사 반발 예상 못했겠나... 윤 정부 포퓰리즘"

[인터뷰] 정기현 전 국립중앙의료원장 "2000명 증원 숫자에만 매몰... 공공 확대 없인 실패"

등록|2024.02.29 18:01 수정|2024.02.29 18:06

▲ 정기현(68) 전 국립중앙의료원장이 28일 전남 순천에 위치한 현대여성아동병원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성욱


정기현(68) 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선거를 앞둔 시기에 2000명 증원 숫자에만 매몰돼있다"라며 "의료 개혁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정 전 원장은 "국민 불안만 계속 키울 게 아니라 힘 있는 의료계와 정부가 서로 반 발짝씩 물러서는 '휴전'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정 전 원장은 지난 28일 전남 순천 현대여성아동병원 사무실에서 진행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 전 원장은 "과연 2000명 증원 발표 시 의사들이 지금처럼 집단행동을 할 거란 예상을 정부에서 못했겠나"라며 "정치적 의도와 포퓰리즘 성격이 커 보인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국립중앙의료원장(2018~2022)과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의료발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낸 인사로, 임기 후에는 순천으로 돌아가 소아과 진료를 보고 있다.

정 전 원장은 종전부터 의대 증원을 주장해왔지만, 의대 증원 하나만으로는 지역 의료를 살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는 마치 총원만 늘리면 '낙수효과'처럼 의사들이 알아서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로 밀려내려 갈 거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면서 "공공의료 비중이 10%도 안돼 이미 시장논리에 완전히 종속된 한국 의료 시스템 하에선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너진 지역·필수 의료를 살릴 대안은 공공 개입을 늘리는 것뿐"이라며 "윤 정부는 의대 증원만 얘기하지 '공공'이란 말 자체를 금기시하고 이념 색칠을 해 성공하기 어렵다"고 했다. 아래는 정기현 전 국립중앙의료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총선 앞두고 의대 증원 '2000명'… 의사 반발 예상 못했겠나"
 

▲ 정기현(68) 전 국립중앙의료원장이 28일 전남 순천에 위치한 현대여성아동병원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성욱

- 지난 6일 정부가 올해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향후 10년간 1만명 증원)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의대 정원 늘리는 것 자체는 찬성이다.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모습을 보면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그간 국민들에게 충분히 물어봤다고 할 수 있을까? 공론장에서 충분히 숙성되지도 않았는데 덜컥 2000명이란 숫자를 내놓고 싸우고 있다. 정부가 의사들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고 본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소비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실제 정부가 문제를 끌고 가는 방식도 굉장히 억압적이고 대결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나."

- 윤 대통령은 27일 2000명 증원 규모와 관련해 "협상이나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포퓰리즘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2000명'이란 숫자에만 매몰됐지 당장 교육·실습 준비조차 안 됐다는 의료계 얘기도 듣지 않고 있다. 2025학년도 입시 일정 때문에 의료 백년대계를 급조한다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다. 의료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의료를 포함한 국민 건강은 가장 근본적인 국가 통치에 해당한다. 전체 비전 제시가 없는 것도 문제다. '정부가 앞으로 의료 구조를 어떻게 개혁할 구상이니, 이런 부분은 좀 따라와 달라'는 설명이 있어야 의사들도 설득이 될 것 아닌가."

- 정부는 의사를 늘려 붕괴된 지역·필수의료를 되살린다는 입장이다.

"의대 증원만으로는 안 된다는 게 문제다. 대한민국 의료는 공공 비중이 10%도 안 돼(의료기관수 5.2%·병상수 8.8%·의사수 10.2%) 이미 철저히 시장논리로 작동되고 있다. 쉽게 말해 지역 인구 감소로 수요가 줄어드는데 누가 거기서 장사를 하겠냐는 거다.

특히 의료 공급은 실제 수요가 감소하는 시점보다 더 빨리 끊긴다. 수요 감소 전망만으로도 공급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탓이다. 이러면 자연히 의료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료는 경우에 따라 한 과목 의사만으로 안 되고 여러 과목의 의사가 동시에 필요한 소위 '규모의 경제'가 작동되기 때문이다. 질이 낮아지면 순천에 있는 환자들은 세 시간 동안 KTX를 타고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간다. 지역 병원들은 하나 둘 폐업한다. 악순환이다. 그럼 이 싸움의 최종 승자는 누굴까? 서울의 빅5 병원들(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뿐이다."

"붕괴된 지역의료, OECD '꼴찌' 공공의료… 최종 승자는 '빅5' 대형병원 뿐"
 

▲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사흘째인 22일 오전 서울의 한 공공 병원에 설치된 TV에 전공의 이탈 관련 정부의 대응 방안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 그럼 의대 증원뿐 아니라 무엇이 더 필요한가.

"공공 개입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국가가 의료에 돈을 써야 한다. 한국은 정부가 의료에 투자한 경험과 역사가 없는, 전세계적으로 아주 예외적인 나라다. 영국처럼 공공의료 비중이 100%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일본도 20%가 넘는다. OECD 꼴찌로 10%도 안 되는 우리도 이젠 미국·일본 수준까진 공공 의료기관을 늘려야 한다.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은 그 기로에 섰다는 임계 신호다. 기존 공공의료원에 대한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공공의료원은 낙후됐다'는 낙인과 인식은 공공의료원을 구조조정 대상으로만 치부해온 국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 정부도 의대 증원뿐만 아니라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나 수가 인상 등을 제시했다.

"말장난일 뿐이다. 이미 지역엔 시장 매커니즘이 무너진 상태인데, 수가 좀 올려준다고, 지자체와 계약해서 지원 좀 더 받는다고 의사들이 지역으로 내려갈까? '지역 내 건강보험 진료비 비중' 데이터를 보면, 영호남 많은 지역들이 30% 선에 머물러 있다. 70% 가까이가 자기 지역을 벗어나 진료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절망적인 수치다. 국가가 직접 나서서 시설·인력·재정·관리 등 의료이용 전달체계 전반을 다 바꿔도 될까 말까 한 상황이다. 의대 증원이 개혁의 시작점은 될 수 있지만, 모든 의료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간단히 말해, 의대 증원만으로 지역의 '소아과 오픈런'이 사라지진 않는다."

- 지역에 의사가 얼마나 부족한가.

"순천 인구가 28만 정도 되는데 순천에 있는 전체 소아과 의사가 30명 정도다. 그나마 이 정도면 지역 치고 사정이 아주 좋은 편에 속하지만, 우리 병원에서도 의사 구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중앙정부가 이 문제를 잘 와닿지 않아 한다는 것이다. 이건 문재인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역에도 사람이 있는데 오로지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그들의 건강권이라는 국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지경이 되도록 국가가 책임을 외면할 수 있었던 한국만의 특수한 이유가 있는데, 바로 건강보험제도라는 착시다. 사회보험 형식으로 잘 정착된 건강보험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은 국가가 마치 의료를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거대한 착각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시스템 없는 시스템'이었다. 손이 모자란 응급·중증환자들을 어떻게 할지, 쓰러지는 지역·필수 의료를 어떻게 할지 국가는 그저 민간에서 알아서 하라고 떠넘겼다. 책임은 안 해놓고 의사 수만 쥐고 흔들려 하니 반발이 커지는 것이다."

"2020년 '문재인' 때리던 의협, '윤석열' 아닌 정부 공격… 의료계-정부, 일단 휴전해야"
 

▲ 정기현(68) 전 국립중앙의료원장이 28일 전남 순천에 위치한 현대여성아동병원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성욱


- 지난 20일부터 의대 증원에 반발한 의사들의 파업이 이어지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이야 빅5를 중심으로 전공의 파업 여파가 크겠지만, 지역은 조용하다. 일부 대학병원 이송 환자가 차질을 빚는 경우는 있어도 일상 의료는 평소와 똑같다. 기본적으로 어떤 직종이든 단체 행동을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표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료는 공적 가치가 중요한 영역이다. 파업이 끝났을 때 사회적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성패와 상관없이, 당사자들은 그 책임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의사들은 무엇보다 국민들과 시민들, 대중을 친구로 삼는 방식은 없었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학생들을 싸잡아 '공부만 잘 했지 이기적이고 나쁜 놈들'이라고 몰아가는 건 선배 의사로서 마음이 아프다. 잘못은 그런 체계를 만든 어른들과 기득권이다. 의료계 입장을 속되게 요약하면 '나는 내 돈 내고 학교 다녀서 면허 딴 자영업자인데 국가가 왜 나한테 뭐라고 하냐,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다. 각자도생인 것이다. 보건의료에서 공적 가치를 세우지 못한 국가 실패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현 의사 교육 체계 안에도 공적 가치를 강조하는 내용이 약하다. 모델이라고 할 게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이라는 기대수익뿐이니 학생들이 거기 따라가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 문재인 정부 때 국립중앙의료원장과 공공보건의료발전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재임 당시인 2020년에도 의대 정원 문제로 의사 단체들이 파업을 벌였다.

"당시는 400명 증원 규모였고, 공공의대 신설 등 공공의료 강화가 큰 줄기로 제시됐다. 정권 초기부터 의료개혁 흐름은 있었지만 코로나19로 논의가 끊기고 말았다. 아쉽다. 복지부 등 정부 의지가 약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단, 당시와 지금 의사단체들의 반발 양상은 매우 다르다고 본다. 당시 의협(대한의사협회)은 '정부'가 아닌 '문재인'을 타깃으로 극렬하게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윤석열'이 아닌 '정부'만 표적으로 삼고 있다. 강성 발언이라고 해 봤자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정도를 향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색이 강한 의협이 굉장히 정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 정부와 의료계간 강대강 대치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일단은 휴전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그게 단 한 명일지라도, 환자 생명 아닌가. 양쪽 다 환자를 볼모로 국민 불안만 키워선 안 된다. 정말 지역·필수의료를 위한 의료 개혁에 진정성이 있다면, 힘 있는 의료계와 힘 있는 정부가 서로 반 발짝씩 물러나 생산적인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미 많이 늦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