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와해된 가족, 잔인한 현실에 먹먹

[리뷰] 영화 <여기는 아미코>

등록|2024.03.06 09:46 수정|2024.03.06 09:46
 

▲ 영화 <여기는 아미코> 스틸 ⓒ (주)슈아픽처스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아미코(오사와 카나)는 유일한 친구 노리를 만나는 게 가장 즐거운 아이다. 가족, 동네, 학교에서도 유별난 아이로 불리지만 주변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라난다. 장난기가 과한 걸까, 숨김없는 마음인 걸까. 종종 과격한 행동과 말에 기분이 상하는 일이 생기지만 다들 그러려니 이해해 주는 분위기다.

그러던 어느 날 아미코의 순수한 마음이 오히려 해가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평소에도 기르던 동물이 죽으면 앞마당에 작게 무덤을 만들어 추모하던 아이는 유산 후 슬퍼하는 엄마를 기쁘게 해주려고 동생의 묘를 만들어 자랑했다.

아이의 순수한 행동은 아직 아물지 않은 어른의 마음에 또다시 상처 낸 격이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지만. 간신히 버티고 있던 가느다란 희망을 잘못 건드린 탓에 가족은 와해되어 버리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엄마(오노 사치코)는 모든 의욕을 잃고 세상과 단절된 자신만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빠는 불량해지다 못해 탈선했고, 아빠도 무기력해져 버렸다. 한 가족이 갑자기 붕괴되어 버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미코는 무엇을 잘못한 건지, 밝고 상냥했던 엄마가 왜 자기만 보면 숨는지 알 수 없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스스로도 묻지 않았다. 아미코의 가족은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리게 된다.

응답하지 않는 벽 앞의 소녀
  

▲ 영화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 (주)슈아픽처스


영화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아미코의 닫힌 세계를 영상으로 구현했다. 마치 벽과 이야기하고 있는 듯 대부분 아미코의 말은 일방적이다. 학교는 가고 싶을 때만 가지만 누구도 노리를 혼내지 않는다. 동문서답은 물론이고 하지 말라는 일은 기어코 하며, 공부나 운동 뭐하나 집중하지 못해 들떠 있다. 상대방과 대화가 어렵고 제멋대로 행동해서 무례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미코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조금은 달리 보인다. 영화는 자폐증 혹은 ADHD를 앓고 있거나, 영혼을 볼 수 있는 아이의 전지적 시점으로 그려진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보여준 우영우의 성향과 어느 정도 공통점이 보이기도 한다.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파고든다. 엄마 얼굴의 점, 친구 노리를 좋아하는 마음, 달콤한 초콜릿을 좋아하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 그대로다. 조금 괴팍할 뿐 생기발랄한 시선과 음악이 시종일관 계속된다. 혼자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처럼 겉돌던 아미코 곁에 이제 유령 친구들도 함께 한다. 아미코의 세계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영화는 꾸준히 강조한다.

작은 관심이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 영화 <여기는 아미코> 스틸컷 ⓒ (주)슈아픽처스


이마무라 나쓰코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여기는 아미코>는 점점 존재감을 상실해 가는 한 아이의 일상을 환상동화처럼 그려낸다. 가족에게 버림받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순수함 때문에 가슴이 아릴 정도다. 마치 혹독한 현실을 잊기 위해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낸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가 생각날 정도로 잔인하다. 인생 첫 연기를 보여준 아미코 역의 오사와 카나는 아미코 자체가 되어 관객의 시선을 강탈한다. 올해 기억할 만한 데뷔작이자 캐릭터로 남을 것 같은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이쯤 되면 가족은 알고도 무관심으로 방관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죽은 동생이 내는 소리일지 모른다고 말해도 묵묵부답이다. 대꾸해 주는 데도 지쳤는지 아예 무반응이다. 부모, 형제, 친구 누구도 아미코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급기야 죽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태연하고 씩씩하게 행동한다.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무서움을 이겨내려 한다.

아미코는 외롭지만 도와 달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어떻게 도움을 청할지 모른다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적막함만 감돈다. 답변을 받지 못하는 무전기만 붙들고 연신 외친다. '여기에 아미코가 있다'라고. 아미코는 여느 아이들과 다른게 아니라, 아픈 아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아이, 감당할 수 없는 부모, 이해하지 않으려는 주변의 태도 등이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을 수 있다.

한 사람이라도 아미코의 외침을 귀 기울여 주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점점 외톨이가 되어간다. 가족보다는 슈퍼 아줌마, 지나가던 아저씨, 양호 선생님, 밤톨머리 동급생이 괜찮냐고 물어봐 주는 게 다다. 그때마다 아미코는 머쓱해서인지, 괜찮은 건지 씩씩하게 대꾸한다. '정말 괜찮다고..' 그 말에 더욱 가슴이 먹먹해질 뿐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