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성소수자 청소년의 죽음... 극우 정치인들이 한 짓을 보라
[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넥스 베네딕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어른들은 누구인가
▲ 지난 2월 26일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집단 폭행을 당해 사망한 넥스 베네딕트를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뉴욕시 '스톤월 인' 밖에서 추모와 철야 집회를 열고있다. ⓒ AFP/게티이미지=연합뉴스
지난 2월 8일 미국 오클라호마주 오와소 고등학교의 재학생인 넥스 베네딕트가 사망했다. 넥스는 올해 16살이며 논 바이너리(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에서 벗어난 종류의 성별 정체성)이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넥스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왔다.
사망 하루 전인 2월 7일에도 넥스는 화장실에서 세 명의 학생들이 자신을 조롱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고 이에 분개해 그들에게 물을 뿌렸다. 누적된 괴롭힘에 결국 터져버린 넥스의 울분은 불행히도 집단 폭행으로 되돌아왔다. 세 명의 학생들은 넥스가 쓰러져 정신을 잃을 때까지 폭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넥스는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었고 응급구조대가 도착하기 전에 결국 사망했다.
넥스 베네딕트의 사망은 미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넥스를 기리는 추모 집회는 그가 살아가던 오클라호마주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열리고 있으며 휴먼 라이츠 캠페인(HRC),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을 비롯한 인권단체들의 관련 성명도 이어지고 있다. 동요하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위로하기 위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담화를 발표했다. 그런데 미국 시민 사회가 이처럼 기민하게 움직이는 데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논 바이너리 청소년의 죽음이 미국에 파장을 불러일으킨 이유
▲ 지난해 12월 오클라호마주 오와소에 있는 집 밖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넥스 베네딕트의 모습. ⓒ AP=연합뉴스
넥스 베네딕트가 살아온 오클라호마는 미국에서 출생증명서에 성별을 논 바이너리라고 표시하는 걸 금지한 첫 번째 주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 극우 정치인들이 논 바이너리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라 출생 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하도록 법안을 발의했는데 오클라호마주가 최초로 통과까지 시킨 것이다.
오클라호마주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 아니라 출생 시 이분법적으로 지정된 성별에 따라 화장실과 공공시설을 이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당사자가 실제로 어떤 성별이건 간에 자신이 작성하지도 않은 서류의 분류에 따라서만 공공시설을 이용해야만 했다.
또한 오클라호마주에서는 미성년자가 성별 재지정 의료 행위를 받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그리고 언급한 이 모든 법과 규정은 트랜스젠더와 논 바이너리 청소년을 목표물로 삼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급진적인 젠더론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미명 아래에 트랜스젠더와 논 바이너리 청소년들은 자신이 모습 그대로 살아갈 권리를 박탈당했다.
이런 식으로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은 2023년 한 해 동안 오클라호마주에서 40건이나 발의되었다. 2024년에는 이 숫자가 56건으로 늘었고 이는 미국의 어느 주와 비교해도 가장 높은 건수다. 정치만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인 게 아니다.
다른 사회 영역도 마찬가지다. 오클라호마주의 교육감인 라이언 월터스는 성소수자에 대해 차별적인 인식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반영하듯 월터스는 학생들이 학교 기록에서 자신의 성별을 변경하는 것을 막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리고 원래 임시 승인으로 처리되었던 이 규정은 오클라호마주의 한 학생이 정책에 반대하는 소송을 진행하자 아예 영구적으로 변경되었다. 그 규칙이 법원의 판단도 피해야 할 만큼 시급하고 엄중한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성소수자 청소년을 벼랑으로 밀어버린 사회
▲ 오클라호마주 교육감 라이언 월터스 ⓒ AP/연합뉴스
오클라호마주 교육감 라이언 월터스의 반(反) 성소수자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월터스는 트랜스젠더 혐오 선동가이자 극우주의자로 유명한 차야 라이치크를 학교 도서관 시스템의 미디어 자문위원회에서 일하도록 임명했다. 라이치크는 단순히 정치적 성향만이 아니라 소셜 미디어 채널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혐오를 선동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런 행위의 일환으로 라이치크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고 당사자인 학생들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던 교사들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조장하기도 했다.
매우 슬픈 사실은 라이치크의 목표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오와소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던 타일러 린이라는 점이다. 타일러 린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성소수자 학생들을 지지하는 영상을 올렸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근무하는 교사로서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긴 했지만 이러한 타일러의 행보는 곧바로 라이치크의 목표물이 되었다. 라이치크의 선동 끝에 타일러 린은 결국 교사직에서 사임했다.
그를 향하여 살해 협박과 학생들을 세뇌한다는 비난도 쇄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타일러 린은 오와소 고등학교에서 넥스 베네딕트가 존경하고 의지하던 교사였다. 소수자인 한 학생의 버팀목이 되었던 교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편견이 아이들을 죽인다
▲ 지난 2월 25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열린 넥스 베네딕트 추모를 위한 촛불집회에 참여한 주민들 ⓒ AP=연합뉴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바로 넥스 베네딕트의 사망이 미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또 다른 이유다. 넥스의 죽음은 단순히 한 10대 청소년이 괴롭힘과 폭력 끝에 사망한 일만이 아니다. 오클라호마주는 넥스 베네딕트와 같은 논 바이너리나 혹은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았다. 이는 존재의 당위를 박탈하는 일이기도 하여서 법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넥스 베네딕트가 겪은 집요한 집단 괴롭힘이 그 결과다. 또한 넥스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와 이들을 관장하는 교육 당국 또한 소수자 학생들을 보호하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오클라호마주에 사는 논 바이너리 청소년이 넥스 베네딕트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차별적으로 변하는 제도적 환경과 이에 따른 사회의 적대성은 다른 논 바이너리와 트랜스젠더 청소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성소수자 정신 건강 보호 및 자살 예방 단체인 레인보우 유스 프로젝트(Rainbow Youth Project)는 오클라호마 출신으로 분류되는 사람들로부터 매주 약 87통의 상담 전화를 받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넥스 베네딕트의 사망 사건이 보도된 이후 평균의 세 배가 넘는 349건의 전화가 단체로 들어왔다. 그만큼 위기감을 느끼는 당사자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랜스젠더와 논 바이너리 청소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존중받으며 사는 걸 막는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 것이라 설명했다. 미국 극우 정치 인사들이 사용하는 이러한 수사는 한국의 성소수자 혐오 진영에도 널리 퍼져 있다. 아주 끔찍한 역설이 아닐 수가 없다. 넥스 베네딕트의 죽음은 정치와 제도가 혐오에 편승했을 때 당사자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잔혹할 정도로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남을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편견에 골몰한 어른들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클라호마주만의 그리고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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