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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먼저 벌고 행복은 나중에? 아빠는 거꾸로 할거야

[아들 손잡고 세계여행] 부자 나라 모나코에서 다시 깨달은 진짜 부(富)의 기준

등록|2024.03.18 18:45 수정|2024.04.29 17:02
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 지난 기사 '반 고흐가 봤던 별 가득한 밤하늘, 여기였구나'에서 이어집니다.

백만장자 넘치는 나라, 모나코

프랑스에서 지중해 연안을 따라가다 보면 이탈리아 국경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세계에서 2번째로 작은 나라인 모나코(Monaco)가 있다. 이 나라의 면적은 1.95㎢로 길이는 약 3km, 폭은 넓은 곳이 약 1km, 좁은 곳은 300m도 채 되지 않는다.

이런 작은 땅에 약 4만 명의 국민이 살고 있는데 그 중 약 1/3이 백만장자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한화로 약 1억 5천만 원(2022년 기준)이나 한다. 부자(富者)들의 나라인 셈이다. 전라도 시골에서 온 우리 부자(父子)는, 작지만 부유한 나라 모나코로 향했다.

프랑스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모나코로 들어가면 작은 표지판 하나로 프랑스와 모나코의 국경이 나뉜다. 그런데 모나코 국경 부근의 프랑스 지역에도 도심지가 발달해 있어,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가 모나코인지 프랑스인지 국경을 알 수 없는 비슷한 풍경의 거리가 자주 나온다. 아마도 모나코의 비싼 물가 때문에, 프랑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노동자나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모나코모나코는 면적이 좁고 땅값도 비싸 고층 건물이 많다 ⓒ 오영식


모나코는 땅이 좁아 유럽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고층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덧붙여 모나코에서는 1929년부터 매년 F1 경기(포뮬러 자동차 경기)가 일반 도로에서 개최된다. 그런 큰 행사가 있을 때는 하룻밤 숙박료가 보통 300만 원이 넘는다고 하니, 정말 부자들만 모여 사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모나코에 들어왔는데 주차장을 찾기가 어려워 시내를 돌다 프랑스 국경으로 다시 나갔다 들어오길 3번 만에 간신히 노면 주차장에 주차했다. 차에서 내려 바닷가를 걷는데 대충 보기에도 아주 값비싸 보이는 요트가 선착장마다 수두룩했다.
  

모나코 대공궁매일 낮 11시55분에 이 광장에서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 오영식


모나코의 남쪽 언덕 위로 올라가면 과거 모나코의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결혼식을 하고 사후에 묻힌 모나코 대성당이 있고, 가까운 곳에 대공이 살고 있는 모나코 대공궁이 있다. 궁전의 크기는 작지만, 이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모나코의 모습은 아주 아름답다.

모나코는 인구수가 너무 적어 군대에 대한 투자를 이미 수백 년 전에 중단하고 프랑스에 위임했다고 한다. 대신 대공궁을 지키는 근위병을 두고 있는데 그 숫자도 100여 명에 불과하다. 이 근위병들의 교대식이 매일 낮 11시 55분에 대공궁 앞 광장에서 열린다.

마침 시간이 맞아 광장으로 가 근위병 교대식을 지켜봤다. 실제 대공을 지키는 근위병들의 교대식을 보니 아들도 신기했는지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봤다.
  

모나코 대공궁의 근위병정식 군대가 없는 모나코는 100여 명의 근위병이 있다 ⓒ 오영식


교대식을 보고 점심을 먹으려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음식 가격을 보니 너무 비싸, 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8천 원짜리 샌드위치 하나를 포장했다. 아들의 손을 잡고 대공궁 옆으로 나 있는 산책로를 걷다 모나코 항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태풍아, 여기서 샌드위치 먹자."
"응, 아빠. 근데 여기는 배가 왜 이렇게 많아?"

"저게 요트라는 아주 비싼 배야. 여기 국민은 세 명 중 한 명이 백만 장자래."
"진짜? 엄청 부자 나라네? 그래서 다 비싼가 보다."

"그래. 그래서 땅값도 비싸니까 건물을 다 저렇게 높게 지은 거야."

 

모나코 항의 요트모나코 항은 선착장마다 고급 요트가 정박해 있다 ⓒ 오영식

 
람보르기니, 페라리... 슈퍼카들 즐비한 몬테카를로

모나코에는 작은 행정구역이 몇 개 있는데 대공궁이 있는 언덕 위의 구시가지는 모나코 빌(Monaco Ville)이고, 항구 근처에는 몬테카를로(Monte Carlo)란 지역이 있다. 모나코는 부유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만큼 도박 산업이 발전했는데 바로 이 몬테카를로에 카지노가 있다.

카지노 앞에 도착하니 건물 입구엔 일명 '슈퍼카'들이 주차되어 있어, 아들에게 설명해 줬다.

"태풍아, 이게 '람보르기니'야."
"람보르기니? 나도 알아."

"너도 들어봤어?"
"응, 엄청 비싼 차라고 들었어."

"그리고 저건 '페라리'란 차고"
"아빠, 여긴 엄청 좋은 차가 왜 이렇게 많이 있어? 한국에선 한 번도 못 봤는데."

"여기 이 건물은 '카지노'라고 하는 어른들이 돈 가지고 게임 하는 데야. 그래서 엄청 부자들이 많이 오거든."
"돈으로 게임? 카지노? 우와~"

  

몬테카를로 카지노 앞에 주차된 람보르기니몬테카를로에선 고성능 자동차를 쉽게 볼 수 있다 ⓒ 오영식


아들은 슈퍼카와 카지노란 단어가 신기했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동차 구경을 했다. 슈퍼카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던 나도 신기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리고 카지노 바로 앞에 있는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와 케이크를 먹었다.

"아빠, 근데 저기가 주차장이야? 우리도 아까 흰둥이(자동차 이름) 여기다 주차하면 되는 거 아냐? 괜히 한참 돌아다녔네."
"저 건물 앞에는 아무나 주차 못 해. 카지노에서 돈 많이 쓰는 사람만 저기다 주차하고. 돈 없는 사람들은 다른 주차장에 해야 해."

"왜? 그건 불공평하잖아. 왜 돈 없다고 차별해?"
"원래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돈 많은 사람은 조금 차별해서(?) 줘."

"그럼 돈 없는 사람은 뭐야? 불편하잖아."
"그래. 원래는 돈이 있으나 없으나 공평하면 좋은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 많은 사람들한테 더 좋은 기회를 줘."

 

몬테카를로 카지노모나코의 몬테카를로 지역은 카지노와 고급 상점이 모여있다 ⓒ 오영식

   
한참 내 얘기를 듣던 아들이 반문했다.

"근데, 그러면 아빠는 부자야? 우리 이렇게 여행하잖아."
 

아들의 질문을 듣자, 한국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 주변의 지인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들과 한국에서 타던 자동차를 가지고 러시아를 지나 아프리카까지 여행하겠다는 얘기를 들은 지인들은 하나같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 그동안 돈 많이 모았구나? 몰랐는데 알부자였어!"
 

아들과 둘이 며칠도 아니고 반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어찌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늘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돈 없어요. 지금 사는 곳도 전라도 시골이고, 게다가 오래된 아파트에 임대로 사는데 무슨 돈이 있어요. 아시잖아요. 혼자 공무원 생활하면서 애 키우는데 어떻게 돈을 모아요."
 

사실 처음부터 통장에 여유가 있어 즐기자고 계획한 여행은 아니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라도 아들이 어릴 적 오랫동안 함께 여행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의 이런 생각을 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설명해 봐야 다 이해하기는 힘들 것 같아 짧게 대답했다.

"아니, 아빠는 부자 아니지. 그래도 아빠는 태풍이랑 이렇게 여행하는 데 쓰는 게 안 아까워. 돈은 나중에 태풍이한테 사춘기가 오거나 아빠를 싫어할 때, 그때 벌면 돼~"
"에이~ 내가 아빠를 싫어한다고? 그럴 일 없을 거 같은데. 계속 아빠랑 붙어 있을 건데?"

"안 돼~ 그럼, 아빠 돈 못 벌잖아. 아무튼 네가 크기 전에 같이 재밌게 놀고, 나중에 다 크면 아빠도 그땐 열심히 돈 벌 거야."
 

남들과는 거꾸로 살겠다는 청개구리 아빠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있는 공원을 걷는데 회전목마가 있어 아들을 태워줬다. 아직 아홉 살밖에 안 된 아들은 무서운 놀이기구보다는 천천히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좋아한다. 들뜬 아들은 회전목마가 한 바퀴 돌아 내 앞을 지날 때마다 해맑게 웃으며 장난을 쳤다. 그런 웃음이 끊이지 않는 아들의 얼굴, 그리고 저 멀리 몬테카를로 카지노 건물을 함께 보니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저런 슈퍼카를 타고 카지노에 내려 돈을 펑펑 쓸 정도 돼야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동심을 간직한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런 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소중하다.'
  

몬테카를로 회전목마아들은 아빠랑 놀 때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 오영식


보통의 부모들은 자녀가 어릴 때 열심히 돈 벌고 또 자녀는 학원에 다니느라 서로의 모습을 지켜보지 못한 채 보낸다. 그러다 부모가 어느 정도 부를 쌓고 여유가 생기면 자녀는 성인이 돼 취업 준비로 바쁘고, 운 좋게 바로 취업하면 이번엔 결혼생활과 육아로 바빠 부모와 함께 시간 보낼 여유를 갖지 못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자녀에게도 여유가 생기면 그땐 오히려 부모가 연로해 아프거나 체력이 달려, 부모와 자식 사이임에도 명절이나 가끔 하루 이틀 얼굴 보고 마는 사이가 된다.

나는 돈 버느라 바빴지만, 아들이 한 살 한 살 자라며 배우게 될 사랑스러운 말과 행동을 오로지 학교와 학원의 선생님에게만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돈을 많이 못 벌어 생활이 조금 어렵더라도, 아이가 어릴 때 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돈은 나중에 벌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나는 그런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아이의 행복한 표정과 말투 그리고 행동까지 온전히 두 눈과 가슴에 담아두고 있으니, 남들이 뭐라 해도 그런 면에서 나는 아주 부자란 생각이 들었다.

'태풍아! 다시 생각해 보니 아빠는 부자가 맞다. 그것도 만수르다, 만수르!'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여행 기간 내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나,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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