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도 할 수 있지요, '마음'을 잃지 않으면
그림책 <작은 빛 하나가>를 읽고... 작은 빛엔 빛다움이 다보록다보록
'이 작은 것이 뭘 할 수 있을까?'
작은 것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그런데 25층 아파트보다 더 크다는 미국삼나무 씨앗이 새끼손톱에 두어 개나 올라갈 만큼 작다는 걸 알고선 생각이 달라졌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씨앗이 어찌 그리 커다랗게 자랄 수 있을까? 씨에 미국삼나무다움이 차려있기 때문이다.
밥과 국, 김치를 비롯한 찬과 간장 따위가 고루 갖춰져야 제대로 된 상차림이듯이, '갖출 것이 하나도 빠지지 않아야' 옹근 차림이다. '차리다'란 말은 그대로 '넋을 차리다'라는 뜻이란다. 아무리 많은 것을 두루 갖췄다 하더라도 '넋'이 빠져서는 차림이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넋'은 곧 '뜻'이고 '마음'이며 '다움'이니 저다운 넋을 갖춰야 비로소 아름답다는 얘기이다. 사람 넋은 사람 됨됨이로 나무 넋은 나무 됨됨이로 드러난다.
<작은 빛 하나가>란 그림책을 만났다. "어둠 속에 머물고 있나요?"란 물음으로 문을 여는 이 책에선 어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만날 수 있다고 우리를 흔들고, 작은 빛 하나가 온 하늘을 밝힐 수는 없어도 작은 첫발은 뗄 수 있도록 한다면서 힘을 돋운다.
놀랍게도 작은 빛이 커질 수 있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작은 빛 하나면 나아갈 길은 너끈히 밝힐 수 있다고 흔들 뿐이다. 크게 외치지 않고 가만히 흔드는 <작은 빛 하나가>를 연주하다가 삼나무에 넋이 있듯이 빛에도 '넋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누구도 아는 척하지 않을 만큼 작은 빛일지라도 저다운 넋을 갖췄기에 움츠러들지 않고 딱 제 빛살만큼 둘레를 밝힐 수 있다는 말씀이다. 책이 가만가만 속삭여서 좋다고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뭉클했다.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이 타박타박 내디딘 작은 발걸음이 돌아 보여서였다. "작으면 어때. 작디작아서 모래 틈에라도 끼어들 수 있으니 좋지 않아?"라고 우리 스스로 다독이며 내디딘 걸음걸이였다.
서른 권 남짓한 책을 모아 문을 연 꼬마평화도서관에는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이 여섯 달에 한 번 평화 책을 뽑아 도서관마다 대여섯 권을 보내준다. 이렇게 한두 해 모이면 서른 권만 남기고 나머지는 이웃에 나눠 이어달리기처럼 꼬마평화도서관을 더 열자고 다짐했다.
덩치를 키우지 말자고 뜻을 모은 것이다. 애써 커지려고 하지 않는 작은 그대로 좋다면서 어둠을 헤치며 가만가만 살살 나아가는 작은 빛에 마음을 끌린 까닭도 여기에 있다.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겠다는 뜻을 세운 지 올해로 꼭 열 돌을 맞는다. 2014년 12월 9일 파주 도서출판보리 1층에 있는 카페 보리와 철새에 첫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을 연 게 엊그제 같은 데 그새 열 해나 흘렀다.
둘레 사람들과 마음 모아 평화 책을 몇십 권만 모으면 누구나 평화도서관을 차릴 수 있다고 뜻을 세워 둘레 사람을 흔들었을 뿐인데 이제까지 꼬마평화도서관을 쉰한 개나 열었다.
밥집과 반찬가게, 학교 복도나 다세대주택 현관을 비롯해, 카센터와 옷방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곳에 문 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꼬마평화도서관에 들어있는 '평화'란 낱말을 스치기만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한두 번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머리에 박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꼬마평화도서관이 빠뜨리면 안 되는 일이 있는데 이웃들과 한 달에 한 번은 책을 읽고 뜻을 나눠야 한다. 그런데 읽기로 한 책을 다 읽지 못하면 멋쩍어하며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둘 생겼다.
그래서 미리 책을 읽을 것이 없이 만난 자리에서 그림책을 함께 소리 내어 읽고 느낌을 나누면 되지 않겠느냐고 뜻을 모았다. 짐을 던 사람들이 한결 가볍게 모임에 나왔다. 이렇게 해서 꼬마평화도서관 물꼬가 그림책으로 돌려졌다.
그림책을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는 걸 목소리 연주라고 하는데, 잔치 마당이 아니라면 여럿이라 해봤자 열서너 사람이다. 오붓한 연주마당에선 서로 눈 맞추며 느낌 나누기가 알짬이니까 두루 하면 여러 결을 알아 좋고, 적으면 깊어질 수 있어서 좋다. 조붓하니 둘러앉아 그림책에서 받은 느낌을 조용조용 나누는 마음은 발밤발밤 나아가는 작은 빛과 닮았다.
나도 그랬지만 그림책을 아이들이나 읽는 책이려니 하며 떠들어보지 않는 어른이 적지 않다. 그러나 몇 줄기 되지 않는 작은 빛에 빛다움이 다보록하듯이 몇 쪽 되지 않는 그림책에 그림책다움이 소복한 줄 알고 나면, 그림책이 새록새록 다가온다. 사람 맛(인간미)처럼 그림책 맛이 난다고나 할까? <작은 빛 하나가>를 맛보며 든 생각이다.
작은 것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그런데 25층 아파트보다 더 크다는 미국삼나무 씨앗이 새끼손톱에 두어 개나 올라갈 만큼 작다는 걸 알고선 생각이 달라졌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씨앗이 어찌 그리 커다랗게 자랄 수 있을까? 씨에 미국삼나무다움이 차려있기 때문이다.
▲ 작은 빛 하나가 나를 흔든다 ⓒ 불광출판사
<작은 빛 하나가>란 그림책을 만났다. "어둠 속에 머물고 있나요?"란 물음으로 문을 여는 이 책에선 어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만날 수 있다고 우리를 흔들고, 작은 빛 하나가 온 하늘을 밝힐 수는 없어도 작은 첫발은 뗄 수 있도록 한다면서 힘을 돋운다.
놀랍게도 작은 빛이 커질 수 있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작은 빛 하나면 나아갈 길은 너끈히 밝힐 수 있다고 흔들 뿐이다. 크게 외치지 않고 가만히 흔드는 <작은 빛 하나가>를 연주하다가 삼나무에 넋이 있듯이 빛에도 '넋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누구도 아는 척하지 않을 만큼 작은 빛일지라도 저다운 넋을 갖췄기에 움츠러들지 않고 딱 제 빛살만큼 둘레를 밝힐 수 있다는 말씀이다. 책이 가만가만 속삭여서 좋다고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뭉클했다.
▲ 작은 빛 하나면길을 밝힐 수 있어요 ⓒ 불광출판사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이 타박타박 내디딘 작은 발걸음이 돌아 보여서였다. "작으면 어때. 작디작아서 모래 틈에라도 끼어들 수 있으니 좋지 않아?"라고 우리 스스로 다독이며 내디딘 걸음걸이였다.
서른 권 남짓한 책을 모아 문을 연 꼬마평화도서관에는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이 여섯 달에 한 번 평화 책을 뽑아 도서관마다 대여섯 권을 보내준다. 이렇게 한두 해 모이면 서른 권만 남기고 나머지는 이웃에 나눠 이어달리기처럼 꼬마평화도서관을 더 열자고 다짐했다.
덩치를 키우지 말자고 뜻을 모은 것이다. 애써 커지려고 하지 않는 작은 그대로 좋다면서 어둠을 헤치며 가만가만 살살 나아가는 작은 빛에 마음을 끌린 까닭도 여기에 있다.
▲ 꼬마평화도서관 평사리 ⓒ 변택주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겠다는 뜻을 세운 지 올해로 꼭 열 돌을 맞는다. 2014년 12월 9일 파주 도서출판보리 1층에 있는 카페 보리와 철새에 첫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을 연 게 엊그제 같은 데 그새 열 해나 흘렀다.
둘레 사람들과 마음 모아 평화 책을 몇십 권만 모으면 누구나 평화도서관을 차릴 수 있다고 뜻을 세워 둘레 사람을 흔들었을 뿐인데 이제까지 꼬마평화도서관을 쉰한 개나 열었다.
밥집과 반찬가게, 학교 복도나 다세대주택 현관을 비롯해, 카센터와 옷방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곳에 문 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꼬마평화도서관에 들어있는 '평화'란 낱말을 스치기만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한두 번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머리에 박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 연립주택현관 꼬마평화도서관에서도그림책연주를 펼쳐집니다 ⓒ 변택주
꼬마평화도서관이 빠뜨리면 안 되는 일이 있는데 이웃들과 한 달에 한 번은 책을 읽고 뜻을 나눠야 한다. 그런데 읽기로 한 책을 다 읽지 못하면 멋쩍어하며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둘 생겼다.
그래서 미리 책을 읽을 것이 없이 만난 자리에서 그림책을 함께 소리 내어 읽고 느낌을 나누면 되지 않겠느냐고 뜻을 모았다. 짐을 던 사람들이 한결 가볍게 모임에 나왔다. 이렇게 해서 꼬마평화도서관 물꼬가 그림책으로 돌려졌다.
그림책을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는 걸 목소리 연주라고 하는데, 잔치 마당이 아니라면 여럿이라 해봤자 열서너 사람이다. 오붓한 연주마당에선 서로 눈 맞추며 느낌 나누기가 알짬이니까 두루 하면 여러 결을 알아 좋고, 적으면 깊어질 수 있어서 좋다. 조붓하니 둘러앉아 그림책에서 받은 느낌을 조용조용 나누는 마음은 발밤발밤 나아가는 작은 빛과 닮았다.
나도 그랬지만 그림책을 아이들이나 읽는 책이려니 하며 떠들어보지 않는 어른이 적지 않다. 그러나 몇 줄기 되지 않는 작은 빛에 빛다움이 다보록하듯이 몇 쪽 되지 않는 그림책에 그림책다움이 소복한 줄 알고 나면, 그림책이 새록새록 다가온다. 사람 맛(인간미)처럼 그림책 맛이 난다고나 할까? <작은 빛 하나가>를 맛보며 든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브런치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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