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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가는 길에 유명인들을 만날 줄이야... 운수대통했다

[부부 둘이 용감하게 배낭여행] FC 바르셀로나 우승 축하 퍼레이드의 현장, 꿈이냐 생시냐

등록|2024.03.14 14:45 수정|2024.03.14 15:05
2023년 4월부터 42일 동안 스페인(바르셀로나, 산세바스티안, 빌바오, 마드리드, 세비야, 그라나다), 포르투갈(포르투, 리스본), 모로코(마라케시, 페스, 쉐프샤우엔, 탕헤르)의 12개 도시에서 숙박하며 여행했습니다. 단체관광 마다하고 은퇴한 부부 둘이 보고 듣고 느꼈던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 몬세라트산 꼭대기의 수도원에서 내려오는 노란 케이블카 ⓒ 김연순


목이 따끔거리고 코가 막혀 숨쉬기가 어렵다. 입도 바싹 타고 온몸이 쑤신다. 감기 몸살이다. 여행 기간이 길어지며 피로가 쌓여 그런지 며칠 전에도 몸살이 났었다. 가지고 간 약은 다 먹어 이젠 없다.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 약국을 찾아 감기약을 사 왔다. 우리 돈으로 무려 2만 원. 비싼 약 먹고 좀 쉬어서 괜찮아졌는데 다시 며칠 움직이니 감기가 도진 것 같다. 따끈한 수프를 먹고 오전 내내 누워 쉬었다. 내리 쉴까 하다가 그러기엔 아쉬워 점심 무렵 일어났다. 계획했던 몬세라트에 가기로 했다.

에스파냐 광장 근처 플라사 데 에스파냐역에서 몬세라트행 기차를 탔다. 약 한 시간 걸려 몬세라트 역에 내리니 저 멀리 어마어마한 바위산이 보인다. 기괴한 바위산의 모습은 가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바위산 끝자락에 손톱만큼 작게 수도원이 보인다. 저 수도원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케이블카도 있고 산악열차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하며 둘 다 타보기로 했다. 올라갈 땐 케이블카, 내려올 땐 산악열차를 타는 걸로 정하고 편도 티켓을 구매했다. 가격 차이는 별로 없다.

케이블카 역에서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부터 노란 케이블카가 점점 다가온다. 케이블카에 올라 산으로 올라가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저 위에 자그마하게 보이는 수도원이 점차 가까워 오는데, 설마 줄이 끊어지는 건 아니겠지 살짝 떨었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케이블카는 5분 만에 도착했다. 아래에서 본 손톱만 한 수도원은 막상 입구에 들어서니 어마어마한 규모다. 거대하고 기괴한 모양의 커다란 바위산을 배경으로 들어선 건물 하나하나는 세련되면서도 아름답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기암절벽의 바위산, 그 바위산을 배경으로 들어선 수도원은 지상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있어 그런지 마치 인간의 세상에 속한 곳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 몬세라트수도원 광장 ⓒ 김연순


몬세라트 수도원은 1236미터 높이의 몬세라트 산 중턱에 자리해 있다. '몬세라트'는 톱니 모양의 바위산을 뜻한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본래 십자군 전쟁 당시 무슬림 세력의 공격을 피해 은신해 있던 위프레도 백작의 은신처였다고 한다. 11세기 경 그의 증손자 리폴 신부가 수도원을 지었고 나폴레옹 전쟁 당시 파괴되었다가 19세기~20세기 무렵 재건을 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수도원 광장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수도원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정적이면서 차분하다. 성당에 들어가기 전, 광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각의 돌들로 쌓인 벽에 사람의 형상을 한 음각 형태의 조각상이 있다. 성 조르디 조각상이고 바로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의 작품이다.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는 가우디의 뒤를 이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파사드 중 수난의 파사드를 만든 작가이다. 수난의 파사드 조각품들이 그렇듯이 이 조각상도 단순하고 간결한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성 조르디의 눈길이 희한하다. 우리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오른쪽의 우리를 쳐다보고, 왼쪽으로 움직이면 또 왼쪽의 우리를 쳐다본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해봤는데 진짜 그렇다. 어느 각도에서 보건 성 조르디의 눈이 항상 따라다닌다.
 

▲ 성 조르디 상으로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의 작품 ⓒ 김연순


광장 한쪽으로 길게 벽이 둘러쳐 있다. 거대한 외벽은 여러 개의 아치가 있고 아치와 아치 사이에는 하나씩 흰 조각상이 있다. 크게 뚫려 있는 아치를 통해 하나 가득 보이는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파랗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흘러간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계단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화가 일렁인다. 머릿속에 저장한 장면이 사진보다 오래간다고 했던가, 파란 하늘을 품고 연이어 늘어선 커다란 아치들은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그 어느 장면보다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수도원에서 몬세라트 산 정상까지는 푸니쿨라(산악 전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초록색 작은 푸니쿨라를 타고 꼭대기에 도달했다. 거기서부터는 트래킹 코스고 실제 트래킹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푸니쿨라에서 내려 우리는 전망대로 갔다. 수도원은 다시 저 멀리 자그마하게 보인다. 전망대에는 머무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참을 마치 우리만의 공간인 양 자유롭게 보냈다. 간식으로 가져간 과자도 꺼내 먹고 커피도 마셨다.
 

▲ 몬세라트 수도원의 아치 벽 ⓒ 김연순


넋 놓고 경치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 젊은 두 명의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 달란다.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두어 컷 찍어주고 내가 보기에 더 좋은 곳을 배경으로 또 두어 컷 찍어 주었다. 확인하더니 매우 흡족해한다. 그러더니 이번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내민다. 그것으로도 찍어 주었다. 갑자기 폴라로이드로 우리 부부를 찍어 주겠단다. 몇 번 사양하다가 응했다. 몬세라트 산 꼭대기에서 폴라로이드 필름 사진이 생기다니, 고맙고도 신기했다. 여행 잘하라고 서로 인사 나누고 헤어졌다.

다시 푸니쿨라 타고 내려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푸니쿨라 창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이 그 공간을 한층 더 운치 있게 만든다. 수도원에 도착하니 하늘은 먹구름이고 비 젖은 광장은 썰렁하다. 으슬으슬 추워져 카페로 들어갔다. 꼬르따도 한잔 마시니 그윽한 커피 향과 함께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상 정상까지 운행되는 푸니쿨라 ⓒ 김연순


입장권을 구매하고 이제 바실리카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정문의 정교한 조각상이 눈에 띈다. 예수와 열 두 제자다. 마치 성당에 들어서는 모든 이들을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입구 바닥엔 커다란 원형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람들이 원 앞에 줄을 서 있다. 이 원 안에 서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단다. 우리는 일단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내부는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중앙의 제단 위로는 금빛 장식의 높고 둥근 돔 구조다. 긴 의자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데 제단 위로 뭔가 움직임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검은 성모상'이다. 사람들이 한 명씩 차례로 지나가다 성모상 앞에 멈추어 기도한다.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중에 안내 책자를 확인하니 성모상 한 손에는 예수가 안겨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구슬이 있다. 사람들은 그 구슬을 만지며 기도한다.

광장에서 느껴지는 흥분감, 알고보니 
 

▲ 몬세라트 산 배경의 수도원 전경 ⓒ 김연순

 

▲ 몬세라트 수도원 성당 안에 있는 검은 성모상 ⓒ 김연순


검은 성모상은 880년 무렵 몬세라트 산 동굴 안에서 발견되었다.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교황 레오 13세는 이 성모상을 카탈루냐의 수호성물로 지정했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뭔가 꼭 바라는 게 있으면 몬세라트 수도원을 찾아 검은 성모상 앞에서 기도한단다.

성당에서 나오며 다른 사람들처럼 입구 바닥의 원 안에 들어가 섰다. 그리고 기도했다. 남편도 그리 한다. "뭐 빌었어?" 물었더니 안 알려준단다. 나도 안 알려줬다. 뒤편으로 돌아 나오니 동굴 아래로 초를 봉헌하는 곳이 있다. 수많은 초들이 있다. 우리도 초를 사 불을 켰다. 지금은 다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과 남편의 부모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양가 부모님들이 우리를 보고 기특하다고 하실 것 같다. "그 나이에 영어도 잘 못하면서 긴 시간 동안 둘이 잘 다니고 있네" 하실 것 같다.
 

▲ 몬세라트 수도원 성당 밖 초를 봉헌할 수 있는 동굴 ⓒ 김연순


내려올 때는 산악열차를 탔다. 산악열차는 높고 장대한 산을 S자 형태로 돌면서 내려온다. 산악열차를 타고 내려오다 보니 이 길을 내기 위해 수많은 나무들과 뭇 생명들이 훼손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사람들이 편하게 오가는 대신 상처 입고 훼손되어 복구되지 못하는 생명체들도 있다는 게 마음 한쪽을 무겁게 한다.

기차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카탈루냐 광장 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광장으로 올라오는 계단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인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을뿐더러 분위기가 뭔가 들썩들썩한 게 심상치 않다. 뭔 일이지, 하며 광장으로 나온 순간 깜짝 놀랐다. 그 넓은 광장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유니폼을 걸치고 손에는 깃발을 들고 있다. 눈에 익은 유니폼이다. 바로 FC 바르셀로나다.
 

▲ 카탈루냐 광장에서 라리가 우승팀인 FC 바르셀로나를 기다리는 시민들 ⓒ 김연순


불현듯 떠올랐다. 바로 어제가 FC 바르셀로나(라리가)가 우승을 거머쥔 날임을. 오늘 이 광장에서 축제가 열리는구나 싶었다. 카탈루냐 광장은 이미 흥분의 도가니다. 뭔가를 보려는 듯 사람들은 가로등과 길가의 동상, 가판대를 타고 올라가 있다. 주변 건물의 몇몇 창문들은 활짝 열린 채 사람들이 나와 서 있다. 흥분은 전염성이 강하다. 분위기에 빠르게 젖어든 나의 흥분도는 급상승했다. 어제 에스파뇰 홈구장에서 축구 보느라 맘 놓고 응원도 못했는데, 이 자리는 완전 반전의 분위기다.

뒤에서 갑자기 한국말이 들린다. 돌아보니 FC 바르셀로나 깃발을 가진 한국 청년들이다. 절로 말이 나왔다. "나도 갖고 싶다, 깃발" 깃발을 구하진 못해도 잠깐 빌려서 인증샷은 남겼다. 이 청년들, FC 바르셀로나 팬이란다. 어제 TV로 봤는데 바셀팀이 우승해서 너무나 기쁘단다. 그래서 슬쩍 흘렸다. 우린 어제 RCDE 축구장에서 직접 봤다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는 다시 되묻는다. 천천히 정확히 말해줬다. 어제의 라리가 우승 현장, 직관했다고. 이 청년들 놀라서 입을 못 다문다. "아니 어떻게(그럴 수가)"를 연발한다. 대놓고 뻐기는 게 이렇게 신나는 일인 줄 몰랐다.
 

▲ 라리가 우승팀 FC 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 광장을 지나며 축하 세리머니 하는 모습1 ⓒ 김연순


시간이 갈수록 함성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모두가 한쪽으로 시선을 두고 기다리는 건 바로 FC 바르셀로나의 축하 세리머니 버스 행진이다. 잠시 후 귀청을 찢을 듯한 함성과 함께 선수단이 탑승한 긴 오픈버스가 나타났다. 감격에 찬 선수들이 손을 크게 휘저으며 기뻐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는 시민들은 그야말로 감격에 겨워 소리치고 있다. 나도 심장이 쿵쾅쿵쾅거린다.

이게 뭔 일이람. 꿈에도 생각 못한 FC 바르셀로나 선수단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머릿속에 '꿈이냐 생시냐'가 뱅뱅 돌고 있다. 몬세라트 수도원 갔다가 숙소로 돌아가려고 그저 카탈루냐 광장에 내렸을 뿐인데 이 광경을 맞이한다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는 그저 운수대통했을 뿐이다.
 

▲ 카탈루냐 광장에서 라리가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FC 바르셀로나와 환호하는 시민들 ⓒ 김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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