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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많은 동네가 기업 사냥터... 기막힌 일 벌어지고 있다"

[현장] 산업폐기물 처리 공공성 확보 요구 SK, 태영 앞 상경집회

등록|2024.03.15 10:29 수정|2024.03.22 08:58

▲ 산업폐기물 문제로 전국에서 올라온 고령의 주민들이 SK 본사 사옥 앞에서 산업페기물 처리 업체들을 거느리고 있는 SK에 책임을 묻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돈벌이 수단으로 산폐장(산업폐기물매립장)을 운영하는 SK 규탄한다!"
"주민의 피눈물이 보이지 않는가, 쓰레기 팔아 잇속 채우는 SK 규탄한다!"
"마을주민 다 죽이는 산업폐기물 처리장 결사 반대한다!"
"니들이 싼 똥은 니들이 다 치워라!"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대표가 표효하듯 선창하자 전국 농어촌지역에서 올라온 200여 명의 주민들이 화답하듯 외쳤다. 서울 종로 SK 본사 앞이 쩌렁쩌렁 울렸다. 거대한 빌딩이 빼곡히 둘러싼 빌딩숲이라 해가 들지 않은 시멘트 바닥은 차가웠다. 지역에서 올라온 고령의 주민들이 이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목청을 높인 것이다.

전국 농어촌지역 주민들 산업폐기물 문제로 상경집회
 

▲ 이정현 대표가 선창하자 200여 주민들이 SK와 태영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들은 농어촌지역에 난립하고 있는 산업폐기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주민들로, 산업폐기물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 SK와 태영을 규탄하기 위해 새벽부터 상경한 것이다. 이정현 대표는 이렇게 주장했다.

"똥 싼 놈이 치워야 할 것 아닌가? 자기들은 돈을 벌어먹어가면서 거기서 나오는 쓰레기는 제값으로 치우려고 생각하지 않고 땅값이 싸다는 이유로 다 어디로 오는가? 농촌으로 오고, 산촌으로 오고, 어촌으로 온다.

이거 그냥 놔두면 되겠나? 사람은 서울에서만 사는가. 경향 각지에서 사람이 살아야 국토가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가꿔지는 것 아닌가? 기후위기 탄소중립으로 농촌 시골마을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농촌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 농촌이 살아야 SK가 산다."

 

▲ 경북 고령에서 올라온 곽상수 위원장이 발언 후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경북 고령 온 곽상수 '난개발과 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고령군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6개 사업중 네 개를 막아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대책위를 하면서 나름 분석을 해봤다. 딱 공통되는 현상이 3개가 있다. 뭐냐하면 지자체 선거에서 군수 표가 가장 많은 곳이 사냥터가 된다. 또 하나 노인들이 가장 많은 동네가 사냥터가 된다. 또 하나는 군청 공무원 중에 과장이 제일 많이 나온 면이 사냥터가 된다. 결국 지역 주민이 알 수 있는 정보를 차단시키고 공무원과 업자들이 한통속이 되어버리면 속수무책이 된다.

그래서 작년 6개의 공동대책위가 만들어지고 정보를 찾고 지역에서 공동으로 대응하니까 막는 데까지는 막을 수 있었다. 여러분 지역으로 돌아가시면 열심히 하시고, 농본과 같은 전문가 그룹과 철저하게 연대하셔야 난개발 또는 폐기물이 없는 지역을 주민들 힘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 SK 본사 사옥 앞에 전국에서 올라온 200여 주민들이 "대기업들이 주민피해는 나몰라라 하고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있다"라고 규탄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전국에서 올라온 200여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전명수 평택 시민환경연대 공동대표는 "SK가 무슨 회사인가? SK가 통신하는 회사다. 통신을 해가지고 엄청 돈을 벌었다"라면서 "근데 SK가 왜 그런 폐기물 처리하는 데 뛰어드는가? 돈이 되니까 뛰어드는 거다. 근데 폐기물 처리를 돈 버는 수단으로 이렇게 활용을 하면 되나? 안 된다"라며 SK를 강하게 규탄했다.
    
황성렬 충남환경운동연합 상임대표는 "기업들이 들어서는 곳마다 지역공동체가 깨지고 있다. 갈등만 일으키고 있다. 이 갈등이 3대까지 간다. 3대까지 이게 해결되지 않는다"라며 "SK는 충남에 예산, 서산, 공주, 당진 곳곳에 폐기물을 매립하겠다 한다. 이거 여러분들뿐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분들과 함께 국가가 책임지는 정책을 만들어서 기업들의 폐기물 정책을 막아내도록 하겠다"라고 주장했다.
 

▲ 충남환경운동연합 황성렬 상입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들은 11시 종로 SK 서린빌딩 앞 집회 후, 1시 30분에는 여의도 태영빌딩 앞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그리고 여의도를 행진해 워크아웃 선언한 태영의 채권단은행인 KDB 산업은행 앞에서의 요구서를 발표하고, 민주당사와 국민의힘 당사로 가서 정책요구안을 전달했다.

정책요구안에서 주민들은 ① 산업폐기물처리의 공공성 확보, ② 발생지 책임 원칙 확립, ③ 주민감시 보장과 실태조사, ④ 환경영향평가제도 개선, ⑤ 정책전환을 위한 국회 주관의 정·민·관 합동 TF 구성이라는 5가지 해결 원칙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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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기업이 벌고, 피해는 주민이 입고, 뒤처리는 국가가 하는 이상한 구조
 

▲ 태영건설 사옥 앞에서 규탄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주민들 ⓒ 김미선

 

▲ 전국에서 올라온 200여 주민들이 여야 정당 당사가 있는 여의도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 김미선

  

▲ 국민의힘 당직자에서 대책위가 마련한 정책요구안을 전단하고 있다. ⓒ 김미선


이들은 사전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정부는 전체 폐기물 중에서 산업폐기물(건설폐기물, 사업장폐기물, 지정 폐기물, 의료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산업폐기물 처리를 대부분 민간업체들에게 맡겨 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로 인해 민간업체들이 무분별하게 전국의 농어촌 곳곳에서 매립장, 소각장, SRF소각시설과 유해재활용 시설을 추진하고 있다"며 현 실태를 고발했다.

이어 "인·허가만 받으면 막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SK, 태영 등 대기업들과 사모펀드들까지 산업폐기물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 결과 이익은 기업들이 가져가고, 피해는 지역주민들이 입고, 사후관리나 피해대책은 세금으로 책임져야 하는 기막힌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특히 "SK, 태영 등은 겉으로는 친환경, ESG경영을 내세우지만 전국 곳곳에서 무분별하게 산업폐기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태영그룹은 KKR이라는 사모펀드와 손잡고 '(주)에코비트'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여러 곳에서 산업폐기물 사업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강릉시 주문진읍에서 태영동부환경(주)라는 자회사를 별도로 설립하여 대규모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 천안시 동면에서도 천안에코파크(주)라는 업체를 설립하여 대규모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또한 "SK그룹도 기존 산업폐기물 업체를 인수하는 한편, 충남의 5군데 지역(서산시 대산읍, 아산시 선장면, 예산군 신암면, 공주시 의당면, 당진시 합덕읍·순성면)에서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매립장을 패키지로 추진하고 있다. 경남 사천시에서도 기존에 추진되던 대진일반산업단지를 산업폐기물매립장을 포함한 산업폐기물처리 단지로 통째로 바꾸려는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 주민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2012년 충북 제천에서는 산업폐기물 매립장 에어돔이 붕괴해 침출수가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고, 국비와 지방비 98억 원을 들여서 복구했지만, 지금도 주변 지하수에서 페놀 등 유해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고 있다. 또 2021년 충남 당진 현대제철 자가 매립장에서 맹독성 물질인 '시안'이 유출된 사건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후관리가 안 되어서 지방자치단체가 세금으로 사후관리를 해야 하는 매립장(당진시 고대부곡 매립장,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매립장, 성주군 성주일반산업단지내 매립장 등)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산업폐기물 소각장이 3개나 밀집한 청주시 북이면의 경우 소각장이 들어선 뒤 암으로 60명(폐암31명)이 숨졌고, 호흡기·기관지 질환자 45명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시멘트소성로, SRF(고형연료) 소각시설과 납2차제련업체들로 인한 주민피해도 끊임없이 호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생활폐기물 처리시설의 경우 공공이 운영하면서 지역 주민들이 직접 시설 운영을 감시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갖춰져있지만 산업폐기물은 운영 주체가 민간업체이고, 처리시설이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이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위험성이 더 큰 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감시권리가 생활폐기물 시설만큼도 보장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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