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없을 봄날은 온다, 정원의 꽃나무 아래로
매달리지 않아도 즐거움이 따르니... 이래서 시골에들 사는 걸까요
봄맞이에 적당한 것은 더딘 발걸음
오랜만의 봄 햇살이 참 좋습니다. 이제 꽃밭의 겨울 솜이불, 낙엽을 걷어내 보기로 합니다. 주로 넓적한 감, 밤, 단풍 그리고 가는 솔잎이죠. 해충이 알을 낳고 유충이 겨울을 나기 딱 좋습니다. 그냥 놔둔다고 낙엽이 썩어 퇴비가 되진 않습니다. 일부는 퇴비장에 쌓고 나머진 소각로에서 태운 뒤 EM(미생물) 용액과 섞어 부숙 시킵니다.
며칠째 이러고 있습니다. 낙엽의 양이 많기도 하지만 귀여운 훼방꾼이 있습니다. 조금 긁어내다가 싹이 난 할미꽃에 멈춰 서고, 다시 매발톱과 작약 순에 탄성을 지릅니다. 이런 식이니 일이 더딥니다.
정원에는 수선화와 동백이 딱 한 송이씩 피었습니다. 그 바람에 또다시 발길이 느려집니다. 겨우겨우 말라붙은 풀을 잘라내고 군데군데 이끼도 걷어냅니다.
신영복 선생은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이라 했지만 내게 그곳은 모종판입니다. 정확히는 씨앗을 심으며 새싹을 상상하는 곳이죠. 햇볕 좋은 곳으로 모종판을 옮겨주고 겉흙이 마르면 물을 줍니다. 감자와 열무, 시금치 파종을 하고 쌈 채소와 완두, 당근 씨앗을 뿌렸습니다. 금잔화, 백일홍 같은 꽃씨도 심고요.
잔디에 숨어 자란 잡초를 솎아내고 있는데 작은 새들이 담장 위에서 종종거립니다. 몸통엔 흰색 반점이 있고 붉은 꼬리털을 들썩이며 연신 재재거립니다. 귀여운 모습에 경쾌한 목소리를 가진 이 녀석, 딱새네요. 검색을 핑계로 이렇게 또 쉬어가지만 찾아서 이름을 알고 나니 더 친숙해진 느낌입니다.
매화 향기 아래서 느긋한 봄
드디어 터졌습니다. 어느새 뒤뜰에 매화가 가득합니다. 다가가니 분내가 은은히 퍼집니다. 그 향기에 취해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의자를 끌어와 앉습니다. 슬리퍼에 편한 차림으로 이래도 되는 걸까요? 아무도 없는 뒤켠이지만 옛 선비들의 매화 예찬이 떠올라 괜스레 몸가짐에 신경 쓰게 됩니다.
그들은 유난히 매화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세한삼우(歲寒三友)에 사군자(四君子)로 옛시조와 서화에 자주 등장합니다. 수중의 전 재산을 투척한 단원 김홍도의 매화음(梅花飮)이 유쾌하다면 퇴계 선생의 읊조림에선 노 선비의 고고한 기품을 엿봅니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으리라, 한데 몇 생애나 수양해야 매화가 될까(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과연 그에게 매화는 어떤 경지였을까요?
매화 꽃그늘에 앉아 새소리를 듣자니 문향관음(聞香觀音: 향을 듣고, 소리를 본다)이 따로 없습니다. 은근하게 배어나는 매향은 고요함 속에서 더 짙게 느낄 수 있다고 하지요. 오죽하면 '귀로 듣는 향기'라 했겠습니까? 그런 경지에 다다르긴 어렵지만 이제 만개하니 코를 바투 들이밀지 않아도 은은한 내음이 주위를 감쌉니다.
어쩌면 잠깐의 호사, 봄바람에 향기가 날아가면 어쩌나 싶어 숨을 깊게 들이쉽니다. 폐부 가득 담아 두고 싶은 욕심이 이네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잎 속에 벌들이 웅성거립니다. 날갯짓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마치 고압선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디 있다가 이처럼 돌연 떼거리로 나타난 것일까요?
알고 보니 매화가 수를 쓴 겁니다.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려 멀리서도 찾아오도록 한 것이죠. 겨우내 굶주린 벌들이 잔칫상을 받았습니다. 매화는 암수 한 그루이지만 자가수분을 싫어해서 꽃가루받이를 곤충에게 시킵니다. 그래서 매화나무를 심을 땐 두 그루를 심죠. 오늘은 그 유혹에 나도 제 발로 걸려든 것이고요.
봄이 해마다 나를 찾아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똑같은 봄은 아니겠죠. 지금 이 봄이 다시없을 거라는 생각은 꽃나무 아래 느긋한 여유를 가져왔습니다. 덕분에 매화 향기를 발견하고 딱새의 지저귐을 듣습니다. 붙잡고 매달리지 않아 즐거움이 따르니 이래서 시골 사는 걸까요?
오랜만의 봄 햇살이 참 좋습니다. 이제 꽃밭의 겨울 솜이불, 낙엽을 걷어내 보기로 합니다. 주로 넓적한 감, 밤, 단풍 그리고 가는 솔잎이죠. 해충이 알을 낳고 유충이 겨울을 나기 딱 좋습니다. 그냥 놔둔다고 낙엽이 썩어 퇴비가 되진 않습니다. 일부는 퇴비장에 쌓고 나머진 소각로에서 태운 뒤 EM(미생물) 용액과 섞어 부숙 시킵니다.
정원에는 수선화와 동백이 딱 한 송이씩 피었습니다. 그 바람에 또다시 발길이 느려집니다. 겨우겨우 말라붙은 풀을 잘라내고 군데군데 이끼도 걷어냅니다.
신영복 선생은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이라 했지만 내게 그곳은 모종판입니다. 정확히는 씨앗을 심으며 새싹을 상상하는 곳이죠. 햇볕 좋은 곳으로 모종판을 옮겨주고 겉흙이 마르면 물을 줍니다. 감자와 열무, 시금치 파종을 하고 쌈 채소와 완두, 당근 씨앗을 뿌렸습니다. 금잔화, 백일홍 같은 꽃씨도 심고요.
잔디에 숨어 자란 잡초를 솎아내고 있는데 작은 새들이 담장 위에서 종종거립니다. 몸통엔 흰색 반점이 있고 붉은 꼬리털을 들썩이며 연신 재재거립니다. 귀여운 모습에 경쾌한 목소리를 가진 이 녀석, 딱새네요. 검색을 핑계로 이렇게 또 쉬어가지만 찾아서 이름을 알고 나니 더 친숙해진 느낌입니다.
매화 향기 아래서 느긋한 봄
▲ 매화나무 꽃 그늘 아래서 ⓒ 김은상
드디어 터졌습니다. 어느새 뒤뜰에 매화가 가득합니다. 다가가니 분내가 은은히 퍼집니다. 그 향기에 취해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의자를 끌어와 앉습니다. 슬리퍼에 편한 차림으로 이래도 되는 걸까요? 아무도 없는 뒤켠이지만 옛 선비들의 매화 예찬이 떠올라 괜스레 몸가짐에 신경 쓰게 됩니다.
그들은 유난히 매화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세한삼우(歲寒三友)에 사군자(四君子)로 옛시조와 서화에 자주 등장합니다. 수중의 전 재산을 투척한 단원 김홍도의 매화음(梅花飮)이 유쾌하다면 퇴계 선생의 읊조림에선 노 선비의 고고한 기품을 엿봅니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으리라, 한데 몇 생애나 수양해야 매화가 될까(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과연 그에게 매화는 어떤 경지였을까요?
매화 꽃그늘에 앉아 새소리를 듣자니 문향관음(聞香觀音: 향을 듣고, 소리를 본다)이 따로 없습니다. 은근하게 배어나는 매향은 고요함 속에서 더 짙게 느낄 수 있다고 하지요. 오죽하면 '귀로 듣는 향기'라 했겠습니까? 그런 경지에 다다르긴 어렵지만 이제 만개하니 코를 바투 들이밀지 않아도 은은한 내음이 주위를 감쌉니다.
어쩌면 잠깐의 호사, 봄바람에 향기가 날아가면 어쩌나 싶어 숨을 깊게 들이쉽니다. 폐부 가득 담아 두고 싶은 욕심이 이네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잎 속에 벌들이 웅성거립니다. 날갯짓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마치 고압선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디 있다가 이처럼 돌연 떼거리로 나타난 것일까요?
알고 보니 매화가 수를 쓴 겁니다.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려 멀리서도 찾아오도록 한 것이죠. 겨우내 굶주린 벌들이 잔칫상을 받았습니다. 매화는 암수 한 그루이지만 자가수분을 싫어해서 꽃가루받이를 곤충에게 시킵니다. 그래서 매화나무를 심을 땐 두 그루를 심죠. 오늘은 그 유혹에 나도 제 발로 걸려든 것이고요.
봄이 해마다 나를 찾아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똑같은 봄은 아니겠죠. 지금 이 봄이 다시없을 거라는 생각은 꽃나무 아래 느긋한 여유를 가져왔습니다. 덕분에 매화 향기를 발견하고 딱새의 지저귐을 듣습니다. 붙잡고 매달리지 않아 즐거움이 따르니 이래서 시골 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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