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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로 변한 특허기술, 떠나는 기술자들...안타깝고 참담"

[르포] '파산위기' 내몰린 세계최고 설비 제조공장 (주)다리온의 외로운 싸움

등록|2024.03.22 07:09 수정|2024.03.22 07:09

▲ 디스플레이 공장 설비 전문업체인 다리온 파주공장. 지난 2022년 매출 12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세를 보였다가 지난해 LG디스플레이와 자이 C&A 등과의 공사비 인상을 두고 갈등을 빚으며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100여명에 달하던 공장 기술자들은 떠나고, 10여명의 직원들이 남아있다. ⓒ 김종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공장 안으로 발길을 돌렸을 때다. 을씨년스러웠다. 공장 밖 꽃샘추위보다 추웠다. 각종 스테인레스 강판 등 원자재부터 바로 반도체 공장 등에서 사용될 수 있는 완제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 사용했을 것 같은 강철 용접용 마스크는 그대로 걸려 있었고, 철판 위의 목장갑도 그대로였다. 내부는 말끔하게 정리돼 있었지만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을 안내하던 (주)다리온의 조태섭 부사장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관련기사 : "1년 전 끝난 공사, 아직도 정산중... 자금난에 벼랑끝" https://omn.kr/27o0z).

"안타깝죠. 한참 공장 돌아갈 때, 70~80명 직원들이 서로 열심히 일하곤 했는데…"

기술력으로 무장했지만... 대기업과의 외로운 싸움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LCD 국가산업단지 인근 다리온 제2공장. 지난 2002년 설립된 이 회사는 종합기계설비 전문업체다. 반도체나 첨단 디스플레이 제품 생산 공정 과정에서 배출되는 각종 유해 배기가스 등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클린룸 등 에 대한 시설 공사를 맡아왔다.

특히 지난 20여년 동안 구미와 파주 등지의 LG 디스플레이 공장 설계과정부터 참여해 왔다. LCD를 비롯해 OLED 등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의 강자로 올라선 LG 디스플레이 공장에서 다리온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의 다리온 공장내부. 디스플레이나 반도체 공장에 사용되는 다양한 종류의 배관 제품들이 쌓여있다. ⓒ 김종철


크게는 수백억 원에 달하는 첨단 디스플레이 생산설비에 맞춘 공장 설계 기술을 가진 국내 업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제품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각종 화학 물질과 배기가스를 처리하는 것 역시 높은 수준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조 부사장은 "LG와 우리 모두 서로 윈-윈하며 성장해 왔던 셈"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기준 LG 디스플레이는 매출 21조3310억 원을 기록했지만 글로벌 경기침체로 그동안 영업손실이 지속됐다. 대신 작년 4분기부터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다. 다리온은 2022년 매출 1200억 원에 32여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창사이후 최대 실적이었다.

다리온은 파주에 2곳의 공장을 갖고 있다. 제2공장은 지난 2019년에 새롭게 지은 곳이다. LG 디스플레이의 차세대 OLED 제품 설비투자에 발맞춘 투자였다. 사무동 건물과 함께 5개의 공장이 있고, 스테인레스 등 원자재를 들여와 용접 등을 통해 직접 제품을 생산해 왔다.

"첨단 디스플레이 공장 클린룸 시설 설계와 공사는 최고"

지난 2016년 이곳에 합류한 윤여정 팀장은 "국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공장 설비 업체 가운데 다리온의 기술력이 가장 우수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공장 등에 투입되는 생산설비 자체가 수백억원에 달하는 고가 장비들"이라며 "이들 장비들에 맞춘 클린룸 시설 설계부터 제품 공급 등에서 (다리온의)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덧붙였다.
 

▲ 반도체 설비 전문업체인 다리온의 특허기술로 만든 PE 이중관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해당제품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장 설비에 핵심 자재로 불린다. ⓒ 김종철


그는 공장 내부의 각종 자재를 설명해가면서, 한쪽에 비닐로 밀봉 포장돼 쌓여있는 PE 이중관 제품 앞에 섰다. 다리온의 특허기술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윤 팀장의 설명이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제품 공정에서 나오는 유해 배기가스를 얼마나 안전하게 처리하느냐가 클린룸 설계 시공의 핵심이죠. 과거에는 기존 배관 내부에 일본회사로부터 수입한 액체를 덧바르는 코팅 방식을 썼었죠. 하지만 우리는 내부에 폴리에스테르의 또 다른 배관을 만들어 넣었죠. 제품 자체 특허 뿐 아니라 이것을 만드는 기계설비도 특허를 갖고 있어요."

지난 2013년에 개발한 제품은 철저한 내부 검증을 거쳐 2015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다. 기존 코팅방식보다 원가는 크게 줄이면서, 유해가스 유출 위험도 사실상 없앨 정도였다. 윤 팀장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어느 기계설비 업체들도 갖지 못한 기술"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설비 특허기술과 제품들이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서영진 다리온 사업전략 자문위원은 "현재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그동안 피땀 흘려가며 개발해 만든 제품들은 고철덩어리로 팔려 나갈판"이라고 말했다.

추가공사비 요구에 LG디스플레이·자이C&A "공정위 판단 기다려"
 

▲ 디스플레이 공장 설비 전문업체인 다리온 파주공장. 지난 2022년 매출 12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세를 보였다가 지난해 LG디스플레이와 자이 C&A 등과의 공사비 인상을 두고 갈등을 빚으며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100여명에 달하던 공장 기술자들은 떠나고, 10여명의 직원들이 남아있다. ⓒ 김종철

 

▲ 디스플레이 공장 설비 전문업체인 다리온 파주공장 내부. 지난해 하반기 공장가동이 멈춘 이후 많은 설비들이 그대로 놓여있다. ⓒ 김종철


'현재 같은 상태'라는 조건은 LG디스플레이의 파주 신공장 건설 과정에서 공사비가 제대로 정산되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다. 이 회사는 LG의 사상최대 규모 OLED 신규 공장 건설에 지난 2021년부터 적극 참여해 왔다. 서 위원은 "그동안 LG쪽 현장의 경우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짜리 공사가 많았다"면서 "이번 신규 공장인 P9과 P10을 합할 경우 500억 원대를 넘는 최대 규모였다"고 설명했다.

윤 팀장은 "이번 P10 공사는 정말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공사규모 자체도 과거보다 훨씬 컸고, 그만큼 현장 설계와 제품 납품과정에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는 "포스코 침수사고부터 외부환경이 워낙 불확실하게 움직이다보니 원자재 수급부터 만만치 않았다"면서 "디스플레이 설비에 맞춘 시설 설계와 시공 등에서 돌발적인 공사도 오래동안 이어졌다"고 토로했다.

서 위원은 "공사기간 내내 엄청난 원자재값 상승과 추가공사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을 감내하면서 공사를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 3월에 공사를 마무리한 후, LG쪽과 시공사인 자이 C&A에 추가비용 정산을 요구했다. 추가 비용만 107억 원에 달했다.

자이C&A는 GS건설의 계열사로 주로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 등 LG그룹 회사들의 건설 일감이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22년 매출액만 2조740억 원에 영업이익도 1366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LG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주)LG도 관계사를 통해 자이C&A 지분 40%를 갖고 있다.

공사를 발주한 LG디스플레이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해당 공사비용은 시공사에 지급돼 있는 상태"라며 "추가적인 공사비용에 대해선 시공사와 다리온쪽에서 논의를 하고 있으며, 공정위에서도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자이C&A쪽은 공정위에 낸 의견서에서 다리온쪽의 물가상승 등 비용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공정위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불합리한 관행과 갑질 여전...직원들 고통 극심"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의 다리온 공장내부. 각종 배관 제품을 생산하는 라인 등이 멈춰서 있다. ⓒ 김종철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의 다리온 공장내부. 디스플레이나 반도체 공장에 사용되는 다양한 종류의 배관 제품들이 쌓여있다. ⓒ 김종철


조 부사장은 "대기업들이 불합리한 관행과 갑질로 협력업체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물가상승과 추가공사 비용 등은 LG디스플레이의 공사 수행방식에 따라 진행해 왔다"면서 "사실상 LG계열사 공사로 매출을 올리는 자이C&A는 그쪽(LG) 눈치만 보면서 그동안 정산방식을 무시한 채 물가상승 비용을 거부하고, LG는 1년 전에 끝난 공사의 최종 정산절차를 진행하면서도 나몰라라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과 공사비 분쟁을 겪고 있는 다리온은 그 사이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이후 LG디스플레이로부터 신규 발주 공사는 끊겼고, 기존 공사에 들어간 비용이 고스란히 적자로 남아있는 상태다. 임원들 연봉은 50% 삭감했고, 직원들 임금도 3개월 넘게 미뤄지고 있다. 그 사이 직원들은 일터를 떠나고, 특허 기술로 만들어진 제품은 쌓여만 있다.

윤 팀장이 공장을 나서는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딸을 둔 가장이기도 하다.

"그동안 현장에서 공사를 마치고 나면 보람을 느꼈어요. 거대한 첨단장비에 맞춰 클린룸을 우리 기술로 만들어 놓고, 공장이 잘 돌아가면 뿌듯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보람보다는 '힘들었다'는 생각만 남더라고요. 공사기간에 맞추려고 정말 직원들끼리 밤샘 작업해가며 일했는데... 협력과 상생요? 아직도 말뿐인 것 같은 현실이 너무 답답하네요."
 

▲ 디스플레이 공장 설비 전문업체인 다리온 파주공장 외부 전경.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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