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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권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한 전공의의 '의견제출서'

[주장] 공익 목적 달성하기에 적절하지 않고, 전공의 기본권 과도하게 침해해

등록|2024.03.23 08:28 수정|2024.03.23 08:28

기자회견 연 사직전공의 류옥하다씨대전성모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하다 사직서를 제출한 류옥하다 씨가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소통 창구 통일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분노'가 의료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제약회사에게 받은 것이라고는 제품 설명회에서 나눠주는 '삼색 볼펜' 밖에 없는 전공의들에게, 간첩의 여섯 배에 달하는 30억 원의 리베이트 현상금이 걸려있습니다. 출산을 앞둔 임산부 전공의에게 복귀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동료들은 이러한 범죄자 취급에 지치고 상처받았으며 모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적 자본'은 무너졌습니다. 정부가 무너뜨린 의료시스템보다 우리 사회에 더 뼈아픈 손실입니다. 정부의 '갑'질에 '을'인 환자와 '을'인 의사의 신뢰 관계는 무너졌습니다. 환자들이 의사를 더이상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밥그릇만 챙긴다며 환자를 볼모 잡는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들도 상처가 깊어졌습니다. 밤을 새우며 사명감 하나로 최선의 치료로 사람을 살리던 열정을 과연 앞으로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불통'의 정부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윤석열 대통령님은 '2000명은 필수이며, 타협은 안 된다' '의대 정원 확대, 협상과 타협은 불가하다'고 하십니다. 소아청소년과 문제를 다루는 민생 토론회에서 소아청소년과회장의 입을 틀어막아 끌고 나갔습니다. 그 와중에 환자는 전세기로 해외로 보내겠다고 하고, 실습을 위한 해부용 카데바(시신)는 수입하겠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입니다.

'불신'이 만연합니다. 정부는 이미 2020년의 합의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에게 월 100만 원을 지급하겠다지만, 이미 몇 년 전 응급의학과 전공의에게 주던 수련 보조금도 깎았던 정부입니다. 10조를 투입해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에 투입하겠다지만, 이미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수가를 인상했다가 파업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삭감했던 정부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저와 동료들은 '업무개시명령'을 통보받았습니다. (*의료법 59조 2항: 보건복지부 장관, 시ㆍ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하여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 개시 명령을 할 수 있다.) 

▲ 류옥하다 사직 전공의가 2.16 수령한 '업무개시명령' ⓒ 류옥하다



이에 아래의 의견제출서를 공시(公示;공개적으로 게시하여 일반에게 널리 알림)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바입니다.

1. 위 처분의 위헌성 

대한민국 헌법 제15조는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직업 선택뿐만 아니라 '직업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이며, 직업의 선택과 변경의 자유, 직업을 포기할 자유, 직업을 가지지 않을 자유, 직장 선택의 자유 등이 포함됩니다.

물론 모든 자유와 권리는 공공 복리를 위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권 제한에 관한 헌법 37조는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제한이 정말 '필요한 경우에 한한'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직업을 포기하거나 직업을 가지지 않을 자유는 '직업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공공 복리를 위한다고 할지라도 '업무개시명령'을 통해 이를 제한하는 것은 직업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써 위헌에 해당합니다.

또한 기본권을 제한할 경우, '과잉 금지의 원칙'을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과잉금지의 원칙(비례의 원칙)이란, 행정을 행할 때 1. 목적을 달성하는 데 유효하고 적절해야 하며, 2.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고, 3. 국민의 이익 침해가 의도하는 공익보다 크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업무개시명령은 '정당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것을 통제할 목적으로 업무의 개시를 명한 것입니다. 이는 시민의 정당한 의사 표현을 억압하고, 부당하게 관철하기 위한 목적으로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위헌에 해당합니다.

공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적합성'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직한 의사의 수는 대한민국 전체 의사의 7%도 되지 않는 숫자입니다. 또한 전공의들은 모두 분야의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사'이며, 피교육자인 '수련의'입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여전히 환자 진료 업무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공의들의 사직은 국민 건강과 보건이라는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미미하며, 정부에서도 3월 8일 '전공의 사직에도 불구하고 예상되었던 의료대란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사실이 있습니다.

결국 업무개시명령은 국민 건강과 보건이라는 공익 목적을 달성하기에도 적절하지 않고, 전공의의 기본권만 과도하게 침해하는바, 위헌에 해당합니다.

2. 사직의 경위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을 반대하며, 제가 사직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정부는 '2000명' 증원 규모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KDI, 서울대학교,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참고했다고 하지만, 보고서 어디에도 2000명 증원에 대한 제언은 없었습니다. 실제로 동아일보 간담회, 국회 간담회에서도 세 보고서의 저자들은 입을 모아 급격한 증원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습니다.

또한 기존의 연구 결과들은 의료 기술의 발전과 효율성 증가를 담지 못하고 있으며, 노인들이 현대에 오며 갈수록 건강해지며 의료 이용이 감소하는 현실(건강한 노령화 효과)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비합리적인 의료 체계와 의료 이용 행태를 고려하지 않은 '과다 추계 편견(bias)'이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둘째, 정부는 증원의 적절성 등을 주제로 제대로 논의하거나 토론하지 않은 채 일방적이고 무리하게 의대 증원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전에도 복지부는 간담회,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수차례 전공의들을 불렀지만, '논의'와 '대화'는 실종된 정부의 일방적인 '설명회'일 뿐이었습니다.

셋째, 정부는 2020.9.4. 체결된 <보건복지부-대한의사협회 합의문> 1항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 의대 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였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약속과 합의를 휴지 조각으로 만든다면, 앞으로 어떤 국민이 대한민국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는 독재 국가를 연상시키는 정부의 행태에 참담함을 느꼈고,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가 암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련병원 전공의 근무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전적인 자유의사에 따라 사직을 하게 된 것입니다. 

3. 국제기구들(국제노동기구, 세계의사회)의 의견 

업무개시명령은 한국 정부가 비준하여 2022년부터 발효된 국제노동기구(ILO)의 29호 협약 '강제노동 협약'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자발적이지 않은 노동을 강요하고 있으며, 불이익의 위협을 가하고 있고,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에는 '예외상황'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는 < Korea Herald >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강제노동 금지의 예외 상황은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세계의사회(WMA)는 세 차례 걸친 입장 표명을 통해 정부가 '개인적 사직을 저지하고 학교 입학 조건을 규제하려 하는 시도는 잠재적 인권 침해에 해당하고 대한민국에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의사는 다른 전문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역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갖고 있고, 근무 조건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개선을 요구하거나 다른 직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국제 기구들의 이러한 공통된 우려 표명은 대한민국을 넘어 국제사회에서 공통으로 통용되는 '자연법'과 '국제법'을 정부가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세계의사회(WMA)는 지난 3월 1일 한국 정부에 "강압적 조치 중단하라"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 세계의사회



4. 맺음말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이후, 전공의들은 주당 80시간이 넘는 높은 업무 강도와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보상에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 왔습니다. 여러 고난에도 사람을 살린다는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업무개시명령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증진할 수 있는 공익 즉, '일반의사이자 수련의인 전공의들의 업무 복귀로 인하여 국민 건강의 보호와 유지라는 목적'이 달성될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반면 의사 면허 정지와 형사처벌로 인하여 전공의들이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여 입게 되는 우리 사회의 피해와, 개인이 입을 사회경제적 불이익은 심히 중대합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우수한 의료 체계의 붕괴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소위 '필수 의료'에 한 몸 바치려던 동료 전공의들과 후배 학생들이 '이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헌법을 무시하고, 근거가 부족한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며, 자연법과 국제법을 짓밟고, 공익을 침해하는 이러한 정부의 행태는 감히 '보건의료독재'라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업무개시명령'을 철회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바입니다. 
덧붙이는 글 류옥하다 기자는 15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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