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삭감' 직격탄 맞은 벤처기업 직원입니다
지원금 깎더니 200% 대출 지원하겠다는 정부... 이게 말이 되는 정책인가
▲ 대통령에 항의하다 입 틀어막힌 KAIST 졸업생2024년 2월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할 때 R&D 예산과 관련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을 향해 항의를 하던 중 제지를 당하고 있다. 2024.2.16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카이스트 학위 수여식 도중 R&D 예산 복원 발언을 하는 졸업생의 입을 틀어 막아(입틀막) 강제로 끌고 나간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폭력적인 언행도 아니었고 정부 정책에 대한 부당함을 토로하는 국민을 '입틀막' 하고 강제 퇴장 시킨 초유의 사태였기 때문이다. 'R&D 예산 삭감'이라는 정부 정책은 입틀막까지 해야할 만큼 비합리성, 비논리성의 결정판이었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R&D 예산 삭감의 직격탄을 맞았다. 우리 회사는 벤처기업으로 환경분야 R&D에 강점이 있는 회사다 보니 R&D 지원사업을 2개 수행중이다. 각각 5년, 4년짜리 과제로 작년에 협약을 끝냈다.
이렇게 이미 정해져 있는 예산, 연구내용, 연구목표를 변경하느라 꼬박 한 달을 서류작업에 매달렸다. 그렇게 3월 초쯤 되니 변경 요청한 협약 내용이 승인되었다는 안내를 받았다.
지원하던 예산 빚내서 쓰라고?
그렇게 그간의 억울함과 분노가 잠잠해질 즈음, 이번에는 'R&D 혁신스케일업 이차보전 사업 안내'라는 메일이 날아왔다. 그 내용인즉, R&D 예산이 삭감된 과제에 한하여 삭감된 금액의 200%만큼 대출이 가능하며 그 이자를 최대 5.5%까지 지원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 R&D지원과제를 수행중인 기업에 보낸 이차보전사업 안내문 ⓒ
언뜻 보면 이자를 5.5%까지 지원해준다니 거의 거저 쓰는 자금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엄밀히 말해 원래 정부가 지원해 주어야 하는 예산을 기업이 빚 내서 쓰라는 것이다. 정부가 이권 카르텔이라며 R&D 예산을 삭감해 놓고는 이자보전해 줄 예산은 4000억 이상을 잡아 놓은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기업은 당장 삭감된 예산 때문에 재정이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싼 이자 대출 받아서 그간 부담이 되던 비싼 이자 대출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업으로선 안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빚 내서 연구해 매출이 올라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빚 갚느라 기업은 또 어려움에 직면해야 한다. 약속을 깰 때는 언제고 왜 이제 와서 연구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는가?
무책임한 정부, 국민 신뢰 얻기 힘들어
▲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R&D 혁신방안 및 글로벌 R&D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2023.11.27 ⓒ 연합뉴스
애초 정부가 R&D지원 사업을 통해 예산을 주며 연구하라고 한 이유는 당장 연구성과가 나오기는 어렵지만 국가 산업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연구해야 하는 분야기 때문이다. 기업이 빚 내서 연구하고 못 갚으면 망해야 한다면 국가산업의 미래를 저당잡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현장에서 R&D 과제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담당자로서 이런 글을 올린다는 것이 매우 부담되고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뉴스 어디서도 다루지 않아 국민 대다수가 이런 정부의 행태를 모르고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 기사를 쓰게 되었다.
무책임한 정부,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여 국민을 힘들게 하는 정부는 더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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